라의 감은 눈 위가 미세하게 떨렸다. 이윽고 조용히 내리는 비처럼 눈물이 흘러나왔다. 잠시 뒤 라가 눈을 뜨면서 말했다.
-이런 말을 처음 들어보고, 처음 해봐요.
나도 그랬다. 가족들한테 한 번도 이 말을 들은 기억이 없다. 잘해! 앞으로 더 잘하란 말이야. 너 이따위로 하면 가만 안 둘 거야! 그러다가 돌연 욕이 쏟아지거나 맞았다. 비난과 조롱과 비웃음을 밥 먹듯이 들어왔다. 그런 탓에 마음은 늘 깊은 감옥에 갇혀있었다. 그곳은 창문도 없었으며 어두컴컴하고 눅눅하기만 했다. 마음 곳곳에 곰팡이가 피어서 엉망이었다. 그러니 삶을 제대로 살 리가 없었다. 예닐곱 살 무렵에 이미 그 감옥에 갇혀 버렸다. 나올 수도 없는 이상한 감옥이었다. 간혹 거기를 벗어난 것 같다는 느낌은 착각에 불과했다. 다음 순간이면 영락없이 그곳으로 돌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자주 벗어나면, 그럴 수만 있다면, 그것은 착각이 아닐 수 있다. 그럴수록 감옥으로 돌아가는 횟수가 줄어들게 되고, 급기야 돌아가지 않은 채 살아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감옥 문을 여는 열쇠는 결국 자신한테 있는 셈이다. 문제는 자꾸만 그 열쇠가 없다고, 아예 열쇠를 가지지 않았다고 스스로 부인하는 것이다. 나한테 하는 세 가지 위로와 격려의 말은 손바닥을 펴고 이미 가진 열쇠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 열쇠로 감옥의 문을 여는 것이다. 자주 자신을 토닥이면서 이렇게 말해주자고 하니, 라가 그러겠다고 했다.
땅을 바라보면서 쓴 과제는 라가 직접 읽었다.
“비가 와서 땅에 꽂힌다. 수도 없이 땅에 투명한 못이 박힌다. 박힌 것 같지만, 속속 뽑혀나간다. 그 못들이 흐르고 흐른다. 땅을 듬뿍 적시고, 물을 머금고 생명들이 자란다. 땅이 숨을 내쉬고 들이마실 때마다 나도 자라난다.”
라의 글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담고 있었다. 어쩌면 이럴 수가 있는지 놀라웠다. 라는 시인의 감수성을 가진 게 틀림없었다. 그동안 못이 박히듯 살아왔다. 겪었던 일들은 온통 무수한 상처로 남았다. 그런데 그 못들이 뽑혀나가고 흐르고 있다. 그렇게 흐르다 보면, 바다에 다 다를 것이다. 그때, 바다가 가진 포용과 너그러움이 라를 감싸줄 것이다.
이루마의 ‘Wait There’를 배경음악으로 들려주면서 루이즈 글릭의 ‘눈풀꽃’을 낭송해 보자고 했다. 라는 차분하게 시를 읊어 나갔다.
눈풀꽃
루이즈 글릭
내가 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가.
절망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은
분명 겨울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나 자신이 살아남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었다,
대지가 나를 내리눌렀기에.
내가 다시 깨어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축축한 흙 속에서 내 몸이
다시 반응하는 걸 느끼리라고는.
그토록 긴 시간이 흐른 후
가장 이른 봄의
차가운 빛 속에서
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
기억해 내면서.
나는 지금 두려운가.
그렇다, 하지만
당신과 함께 다시 외친다.
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
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
루이즈 글릭(1943년~2023년)은 미국 시인이다. 예일대학교 교수였으며 2020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시의 숲에서 마음껏 자유롭게 느낄 수 있도록 안내했다. 시의 제목인 ‘눈풀꽃’은 수선화과의 알뿌리 식물이다. 이른 봄에 20~30cm의 흰 꽃이 핀다고 한다. 추위에 잘 견디며 눈풀꽃은 유럽이 원산지이다.
눈풀꽃이 말하고 있다. 내가 그동안 어땠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가? 절망이 무엇인지 안다면, 그 절망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면, 분명 겨울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을 거라고 한다. 겨울이 닥쳐오면 모든 식물이 그러하듯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언제 꽃을 피웠냐는 듯 땅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럴 즈음에 스스로 생각했으리라. 이제 남은 것은 절망뿐이라고. 바닥으로 내려갔으니 좋아질 리가 없다고. 그렇게 눈풀꽃은 땅속에 처박혀서 숨 죽은 채 있었다. 다시 깨어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제 끝장난 것이라고만 여겼다. 어느 틈엔가 비가 오고, 물기가 스며들어 왔다. 땅속에서 그 물을 나도 모르게 마시고 있었다. 그러면서 웅크린 몸을 점점 펴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다시 반응하고 있다니! 이 놀라움은 쉽사리 닫힌 가슴 안으로 스며들지 못한다. 헛된 희망 따위는 집어치워라지! 이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은 사라지지 않고 파멸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다가도 자신도 모르게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런 과정이 얼마나 반복된 것일까.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마음이 수천 번도 더 왔다 갔다 했다. 그러다가 서서히 기억해 내고 있다. 세상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던 그 기막힌 순간을! 아직은 겨울이고, 차가운 바람이 여지없이 땅을 뒤흔들고 있다. 웅크린 채 땅속에 있지만, 결코 끝장난 게 아닌 걸 깨닫는다. 곧 봄이 올 텐데, 그 봄을 떠올리면 두렵다. 하지만 당신과 함께 다시, 다시 외쳐본다. 세상 밖으로 나오는 모험, 그 파란만장한 순간들을 맞닥뜨려보자! 삶이 슬프고 고단하겠지만, 기쁨에 초점을 맞추자! 아직은 맵찬 바람이 부는 겨울 속에서.
-눈풀꽃이 꼭 저 같아요. 지금, 저는 겨울이고 차가운 땅속에 있어요. 꼭 죽을 것만 같아요. 살고 싶은데, 죽고 싶어요. 아주 오랫동안 그랬어요. ‘나 자신이 살아남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이 구절이 인상적이에요. 저도 그랬거든요. 살아남을 것 같지 않았어요. 지금, 이 나이까지요. 백 번 정도 자살을 생각했고, 열 번 정도는 직접 해봤어요. 그렇게 시도라도 해봐야 내가 살고 있다는 걸 간신히 느끼는 듯했어요. 이미 죽었다면 시도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요. 내가 나를 괴롭혀댔어요. 너는 살 필요도 없는 버러지야. 죽어! 그냥 죽어버렷! 알고 보면, 내가 겨울을 불러들인 것 같아요. 혹독한 추위 속에서 꼼짝할 수 없게 만들어 놓고 나를 괴롭혔던 거지요. 이렇게 구박하며 난폭하게 대했던 내가 아직도 숨을 쉬고 있구나! 그게 놀라울 따름이에요.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살아남았어요. 그러니, 이제 기쁨에 모험을 걸어야 하겠데, 두렵긴 해요.
나도 그랬다. 나를 이루는 시간은 늘 차디찬 겨울밤이었다. 눈이 내리는 고즈넉하고 우아한 밤이 아니다. 여기저기서 우울이 질척이며 다가와서 나를 내동댕이쳤다. 그냥 죽어버려! 라는 말을 어머니로부터 얼마나 많이 들어왔던가. 칭찬과 격려 따위는 없는 겨울밤. 햇빛이라고는 차단된 내 삶. 그렇지만 죽지 않았다. 살아남아서 봄을 기다리고 있다. 봄이든 겨울이든 상황만으로 그렇게 바뀐 것도 아니다. 내가 모든 계절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겨울도 봄도 내 마음이 설정하는 정교한 운영체계였다. 슬픔과 기쁨과 낙담과 좌절이 있다. 하나만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기쁨’을 집어들 것이다. 그 모든 아픔과 어두운 생각들은 내가 선택한 ‘기쁨’을 잘 드러내게 하도록 존재했던 것들이다. 그걸, 지금에야 깨닫는다. 이제, 내 삶의 계절은 만발한 꽃이 피어나고 푸릇푸릇한 싹이 돋아나는, 멋진 봄이 되었다. 실은 그렇게 봄을 맞이한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지금은 초봄인 셈이다. 아직 쌀쌀한 바람이 불지만, 들판을 어루만지는 햇살이 부지런한 초봄.
시 ‘눈풀꽃’ 마지막 연의 네 번째 행을 보자고 했다. ‘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라는 구절에서 이제 라가, 라의 목소리로 외쳐보자고 했다. 그 부분을 괄호 속에 묶어버리고, 라의 이야기를 해보자고 했다. 그 자리에 말을 넣어 마지막 연만 다시 읽어보라고 했다.
나는 지금 두려운가.
그렇다, 하지만
당신과 함께 다시 외친다.
한번 해보자. 끝까지 살아보자. 할 수 있어!
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
라는 ‘할 수 있어!’라고 덧붙이면서 오른손을 주먹 쥐고 힘차게 올리기까지 했다. 허공에 점이라도 찍듯 굳게 쥔 손을 멈췄다가 내렸다. 라가 고쳐 쓴 부분을 우리는 함께 읽고 손뼉을 쳤다. 이제, 눈을 감고 복식호흡을 해보자고 했다. 온몸을 이완하면서도 정신은 또렷하게 집중할 수 있는 상태가 되도록 했다. 그런 다음, 이렇게 상상해 보자고 했다.
나는 눈풀꽃이다. 시리고 차가운 땅 위에 있다. 세차고 거센 바람을 정면에서 맞으면서도 견뎌왔다. 견딜 수 없을 정도의 혹독한 추위를 넘기고 지금, 이렇게 살아있다. 나는 나한테 응원과 격려를 해주려고 한다. 마음 다해 나에게 에너지가 되는 메시지를 들려주려고 한다. 지금, 이 메시지를 나한테 속으로 말해주고 있다.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지 그대로 듣고 있다...... 지금의 느낌을 그대로 간직한 채 눈을 떠보자고 했다.
라는 “괜찮아, 잘했어, 잘할 거야.”라고 했고, 눈풀꽃인 나는 방긋 웃었다고 했다. 외롭고 추운 지옥 같은 시간이었지만, 결국 버텨내고 있어서 감사하다고 했다. 세 번째 만남의 소감을 말해보자고 하니, 라가 방긋 웃었다.
-눈풀꽃 이름에서 처음에는 왠지 글썽거리는 눈물이 떠올랐어요. 그런데 이제는 겨울에 내리는 하얀 눈이 풀풀 날리는 느낌이 들어요. 크리스마스 날에 축복 같이 내리는 눈 말에요!
라의 감수성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나도 덩달아 방긋 웃었다.
다음 주까지 해 올 과제를 알려주었다. “괜찮아, 잘했어, 잘할 거야.”라는 말을 하루 세 번 날마다 해오자고 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밤에 자기 직전에는 꼭 할 것. 그리고 낮 동안은 자유로운 시간에 하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흐르는 물’을 3분 정도 만나고 나서 떠오르는 느낌을 한 줄 이상 적어오자고 했다. 물을 만날 때는 한 자리에 멈춰서 아무 말 없이 응시해 보라고 했다.
잘 해오겠다는 말보다는 그냥 실천해서 보여 드릴 거라고 라가 말했다. 나는 라의 손을 가볍게 두어 번 두드려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