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만남: 신을 만나다 --- 1

by Sia

네 번째 만남: 신을 만나다



라는 환하게 웃으면서 들어왔다.


-과제를 했어요! 하루도 빠지지 않고요.


착한 어린이 표를 받아 든 초등학생 같았다. 아주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처음에는 ‘괜찮아’라고 할 때, 나 안 괜찮은데, 이런 생각이 불쑥 올라왔어요. ‘잘했다’고 할 때도 잘하긴 뭘 잘해? 이런 말도요. ‘잘할 거야’도 마찬가지였어요. 뭐, 내가 잘 되긴 어떻게 잘 되겠어? 이 모양 이 꼴이지. 그런 잡생각이 들더라도 그대로 했어요. 그랬더니 그런 방해되는 강도가 점점 줄어들었어요. 내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그런 잡음도 ‘괜찮다’는 말속에서 스르르 녹는 것 같았어요. 늘 자기 전에는 휴대폰을 보는 습관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과제를 하기 위해서 미리 휴대폰을 놓아두고 누워서 했어요. 그렇게 꼬박꼬박 했더니 잠이 더 잘 오고, 숙면할 수 있었어요. 정말이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했어요. 아침에 눈 뜨자마자, 낮 동안, 자기 직전 이렇게 모두 다요. 엄마 발작은 이번 주에는 세 번 정도 있었어요. 정말 별 것 아닌 것에 고함을 지르고 욕을 하고 그래요. 날마다 여러 번 할 때도 있어요. 정말, 저는 지긋지긋해요. 엄마가 참, 미워요. 내 인생에서 엄마만 없으면 살만하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몰라요. 학교 졸업만 하면 얼른 취직해서 독립하면 좋겠다 하는 생각도 들고요.


시도 때도 없이 하는 발작. 어머니는 자신이 그런 줄 모르는 게 분명했다. 알면 그럴 리가 없을 테니까. 자식한테 욕설하는 텔레비전의 드라마 장면을 보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아이고, 어쩌면 저렇게 사납나? 어떻게 자기 새끼한테 저렇게 험악하게 할까? 나는 한 번도 그렇지 않았지? 그때, 어머니 눈빛은 어디 먼 곳을 헤매다 온 듯했다. 자신이 저질러왔던 끔찍했던 일들은 안개에 휩싸인 채 증발하고 만 것일까? 그것은 단연코 일방적인 실종이었다. 그 일을 당해왔던 나는 너무나 생생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발작할 때면 어머니의 눈빛은 광기에 번뜩였다.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어머니가 죽든 내가 죽든 뭔가 끝장이 나야 한다고 여겼던 시기가 꽤 오랫동안 있었다. 저런 쓰레기 같은 이한테서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싫었다. 내 삶을 쥐어흔들려고 안간힘을 썼던 어머니. 그건 분명히 사랑이 아니었다. 애증이 섞인 집착이고, 숨 막히게 하는 광기였다. 모든 것을 간섭하고 모든 것을 따지려 드는 어머니. 자신의 말을 조금이라도 따르지 않으면 대번에 욕과 폭력이 나왔다.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을 계산하고 있다가 단 십 분이 늦어도 욕을 했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나 욕했다. 욕과 고함과 악다구니는 늘 세트 메뉴처럼 같이 튀어나왔다. 뭔가 기분이 잡치면 친척들한테 일일이 전화해서 내 욕을 해댔다. 내가 옆에 있는데도 일부러 들으라는 듯 그렇게 했다. 한 번은 직장까지 전화해서 내 욕을 했다. 화냥년이고 잡년이라며 있는 사실 없는 사실을 전부 갖다 붙여서 깡그리 욕했다. 출근하니, 직장 상사는 측은한 듯 나를 쳐다보며 한마디 했다. 참, 힘들겠어요.


숱한 세월을 그렇게 살았다. 어머니가 나를 때리고, 거울을 깨버리고, 물건을 부수는 데도 왜 나는 도망가지도 않았을까? 몇 번은 집을 탈출하기도 했다. 무작정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갔다가 그 버스로 돌아왔을 뿐이다. 내가 나가려고 하면 문을 막고 난리를 부렸다. 어느 날은 문을 잠그고 있었는데 칼을 가지고 와서 문을 부수기도 했다. 함께 교회 가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이 사탄아, 문 열어라! 어머니는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그래도 문을 열지 않았다. 얼마간 그렇게 하다가 엄청난 욕을 해대며 교회로 갔다. 그렇게 하고 가서 무슨 기도를 하는 걸까? 어머니는 사람이 아니었다. 따뜻하고 포근한 어머니였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어렸을 때 어머니 품에 안긴 기억이 나기는 난다. 그러다가도 갑자기 언제 돌변해서 때릴지 알 수 없었다. 벼랑 끝을 걷듯이 살아왔다. 어머니의 횡포는 도를 넘었고, 늘 악에 받친 채 화풀이를 해댔다. 날마다 어머니의 새된 고함이 집안의 공기를 갈가리 찢어 갈겼다. 발작이 없는 날에는 혼자서 울곤 했다. 그러다가도 이내 텔레비전을 보면서 시시덕거렸다. 나는 모든 것이 가짜 같기만 했다. 웃음도 울음도 욕도 어머니도. 어머니는 정말 내 어머니가 아닌 것만 같았다. 아니, 아니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미워하니,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내 삶이 꼬일 대로 꼬여서 하나씩 잃어갔다. 자신감도 희망도 용기도 믿음도 사랑도 빛바래지고 삭아갔다.


어머니한테서 독립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다. 그래서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둘러 결혼했다. 어머니를 피하려다가 더 큰 것을 만나고 말았다. 남자는 걸핏하면 나를 때렸다. 남자는 스케일이 달랐다. 어머니가 때리는 것은 멍이 드는 정도였지만, 남자로 인해서는 고막이 찢어지고 다리를 꿰매야 했다. 어머니는 악다구니와 고함을 질러서 질리게 했지만, 남자는 아무 말도 없고 소리도 없이 나를 때렸다. 술, 여자, 도박으로 온갖 기행을 저지르는 남자를 상대로 재판 이혼을 했다. 그럴 돈도 없는 치였지만, 양육비나 위자료를 한 푼도 받지 않았다. 나는 딸과 어머니와 함께 살아야 했다. 내가 벌어서 먹고살아야 했으니 어린 딸을 돌보는 것을 어머니한테 맡겼다. 기껏 피해서 도망쳤는데 도로 돌아오고 만 것이다. 그 후로도 어머니한테 벗어나고자 몸부림을 쳤지만, 소용없었다.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기만 했다. 어린 딸아이를 다른 곳에 맡길 재간도 없었다. 어머니와 아이를 부양하는 것이 전적으로 내 책임이었다. 결혼한 뒤 소식조차 뜸한 언니는 가난에 찌들어 있었다.


어머니가 아이한테 때때로 폭력을 행사한 것을 알면서도 나는 울면서 버텼다. ‘버텼다’라는 말이 맞는지 모르겠다. ‘넘겼다’라고, ‘외면해야 했다’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돈이 없어도 그렇지, 어머니와 같이 사는 것은 절대 하지 않았어야 하는 결정적인 오류가 아니었을까. 어머니와 함께 사는 삶은 지옥 그 자체였다. 아이가 할머니한테 맞았다면서 경찰에 신고하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고작 아이를 안고 속으로 울기만 했다. 천형 같은 어머니. 아무리 벗어나도 벗어날 수 없는 어머니. 나는 나를 지켜갈 힘도 없었다. 속수무책으로 어머니가 휘두를 때마다 이리 당하고 저리 당하기만 했다. 얼마나 많이 무너지고 깨졌는지 셀 수가 없다.


-흐르는 물을 봤어요. 집에서 오 분만 걸어가면 하천이 있거든요.


라는 차분한 음성으로 써온 과제 글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물은 끊임없이 흘러간다. 매 순간 새로운 물이 자리를 바꾼다. 먼저 간 물이 다시 오지도 않는다. 새로 자리를 차지한 물은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물은 아무런 미련이 없다는 듯 서둘러 자리를 뜬다. 매 순간 새로운 물이 뛰어들고, 새롭게 흘러간다. 때가 되면 주저하지 않고 바닥에 떨어지는 숱한 꽃과 잎처럼 흘러갈 뿐이다. 매 순간이 새롭다.”


매 순간이 새롭다! 나도 모르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이걸, 알아차렸다고? 매 순간이 새롭다는 것을? 물은 라한테 대단한 에너지를 준 것이 틀림없었다. 자연 속의 일부인 인간이 자연을 벗어나게 되면 아프다. 자연의 순리와 섭리를 거슬리게 되어도 아프다. 문명의 이기에 빠져서 자연을 무시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하늘을 한 번도 바라보지 않고 살아간다. 자연과 마음을 마주하면 자연은 자연스럽게 알려준다. 마음 깊숙이 숨겨진 지혜를 일깨워준다. 라한테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매 순간이 새롭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늘 열려 있다. 어머니는 어머니고, 나는 나다. 휘두르는 칼에 맞지 않을 수 있다. 그것만이 다가 아니라 그것보다 더 해낼 수 있다. 언젠가 불안장애를 심각하게 겪은 이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제, 더는 나빠지지 않도록 더 내려가지만 않아도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아래로는 내려가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어요.”


그는 불안증이 나타나는 나쁜 선을 마음에 그어 넣고 경계하고 있었다. 그 정도만 그치고 마는 게 삶이 아니다. 더욱 환하게 내 안을 밝힐 수 있다. 마음에 그은 선은 아무 소용이 없다. 그게 뭐란 말인가? 그 선 아래에 빠지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다 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난다. 조금이라도 과부하에 걸리는 마음이 있다면, 바로 선을 떠올리며 불안해지는 것이다. 오히려 선에 집중하지 않을 때 선은 사라지고, 이미 불안을 벗어나 있게 된다. 매 순간이 새로우니 새롭게 살면 된다.


그런데도 잘되지 않는다. 새로운 매 순간이 주어지는데도 새롭게 느끼지 못한다. 자꾸만 과거를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식 때문이다. 그 인식은 너무나 끈질기고 끈적거려서 습성이나 천성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과거의 영향은 자못 심각해서 자꾸만 망령 속에 시달리게 한다. 어머니라는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나는 얼마나 제 자리를 맴돌고만 있었던가. 내 시간은 어머니가 휘두른 극심한 폭력 안에 갇혀있었다. 고인 물이 썩듯이 오랫동안 나는 썩어 문드러져 있었다.


과제를 잘 해온 라. 내가 칭찬하지 않아도 라는 스스로 만족해하며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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