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만남: 신을 만나다 --- 2

by Sia

지오반니 마라디(Giovanni Marradi)의 ‘평화롭게(Peacefully)’라는 곡을 배경으로 해서 라이너 쿤체의 ‘뒤처진 새’를 낭송해 보자고 했다.



뒤처진 새


라이너 쿤체


철새 떼가, 남쪽에서

날아오며

도나우강을 건널 때면,

나는 기다린다

뒤처진 새를

그게 어떤 건지, 내가 안다

남들과 발맞출 수 없다는 것

어릴 적부터 내가 안다

뒤처진 새가 머리 위로 날아 떠나면

나는 그에게 내 힘을 보낸다



-아, 이 철새는... 나예요. 뒤처진 철새요. 나예요. 마음이 아려와요. 그런데 이 세상에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봐요. 나처럼 뒤처진 채 살아온 시인도 철새도 있었군요.


그리고 나도 있어요. 내가 말했다. 나야말로 영락없이 뒤처진 새였다. 그리고 늘 그렇게 무리에서 벗어나 있었다. 지금까지도! 대부분 학교를 졸업하고 막 직장을 잡고 젊음을 과시할 때, 나는 결혼을 했다. 다들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하며 알콩달콩 살아갈 때, 나는 이혼을 했다. 한 번 더 결혼해 봤지만 역시나 실패했다. 카드깡 사기를 당해 엄청난 빚도 졌다. 빚을 거의 갚았을 때 이미 중년에 이르렀다. 다들 모아 놓은 돈으로 재테크를 하고 있을 때, 나는 겨우 집 하나를 건사할 수 있었다. 어디 가면 맛집이 있고, 풍경이 좋고, 가족여행은 어디로 갔고, 명품을 샀다고 떠드는 여자들의 무리에 나는 결코 들어갈 수 없었다. 안락과 사치를 부리는 길을 가고 있는 이들과 나란히 할 수 없었다. 늘 한 달 생활비를 걱정해야 했고, 아껴 써야 겨우 살 수 있었다. 번듯한 직장을 다니는 이들도 많지만, 나는 공부를 한답시고 시간 조율을 해주는 곳으로 이직하곤 했다.


그러다가 결국 간호사 면허증을 서랍 속에 집어넣어 버렸다. 이렇게 개인 치료를 하거나 집단치료, 또 불러주는 학교에 강의를 나가면서 살고 있다. 치료로 돈을 번다는 생각조차 잘 하지 않는다. 심리치료란 너무나 숭고해서 돈만 보며 추구할 게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상담 비용을 과하게 부르는 곳에서 나를 보면 뒤처진 새라고 손가락질할 게 뻔하다. 감성과 감수성을 통해 인간의 영혼을 치유하는 방식인 ‘심상 시치료’는 주류들이 보면 고개를 돌릴 게 뻔하다. 한 학생은 교재에 나오는 인지행동 요법이 제일인데 엉뚱한 이야기를 한다며 강의 평가에서 나를 호되게 비웃기도 했다. 심상 시치료 매뉴얼로 발간된 책을 정신과 환자들한테 직접 적용해 보라고 했더니, 어떤 학생은 교수가 자기 책을 팔려고 한다며 맹비난하기도 했다. 결혼한 딸아이는 아이를 낳아보니 엄마가 원망스러워졌다고 했다. 어떻게 이런 갓난아이를 내버려 두고 일하러 갈 수가 있어? 이렇게 귀여운데! 딸은 심지어 수개월 동안 연락을 끊기도 했다. 화목하고 다정하게 지내는 가족들을 나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딸한테 한 시간 넘게 눈물을 흘리며 사과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수백 번 해도 소용없었다. 누군가 딸은 잘 지내냐고 물어오면 얼버무릴 뿐이었다. 어쩌자고 아이를 낳았고 어떻게 키워냈던가. 가족 간에 화기애애하고 누가 봐도 칭송받을 정도로 반듯하게 살지 않았다. 지금도 내 시간의 절반가량은 어머니를 챙겨주는 일에 보내고 있다. 구순에 이른 어머니는 예전보다는 덜 하지만, 언제 어디에서 갑자기 욕설과 주먹이 날아올지 모른다.


나는 뒤처진 새였고, 앞으로도 뒤처진 새일 것이다. 그런데 뭐 어쩌겠는가. 그렇더라도 이렇게 날고 있지 않은가!


시인 라이너 쿤체는 1933년 구동독 위스니츠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철학과 언론학을 전공하였으나 정치적 이유로 인해 학문을 중단하고 자물쇠공 보조로 일하다가 1962년부터 시인으로 활동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1976년 동독 작가 동맹에서 제명당하고 1977년 서독으로 와서 시작에 전념했다. 시에서 나오는 ‘도나우강’은 영어로는 ‘다뉴브강’이라고도 한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있는 강이다. 부다와 페스트라는 두 지역이 통합되어 이루어진 도시 사이에 도나우강이 흐르고 있다.


시적 화자는 철새 떼가 이동하는 걸 보고 있다. 늘 무리에서 뒤처진 새가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기다리고 있다. 뒤처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남들과 발을 맞출 수 없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어릴 적부터 내가 그렇게 해왔다. 나 역시 남들을 따라 하지 못하고 늘 뒤처진 채 살아왔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다가 뒤처진 새가 내 머리 위로 날아서 떠날 때, 그 새한테 내 온갖 힘을 모아 보낸다.


라는 ‘남들과 발맞출 수 없다는 것’이라는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고 했다. 다른 이들과 유리되어 동동 떠다니는 자신을 줄곧 느껴왔다고 했다.


-나는 좀 달랐어요. 다들 행복한 얼굴로 가족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아니었어요. 서글프고 지치고 아픈 가족들 얘기를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적절하게 얼버무리거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아요. 남친을 열 명 정도는 만났을 거예요. 내가 사랑받을 자격이 되지 않으니 남친한테 매달리고 또 매달렸어요. 뭘 어떻게 해주면 나를 사랑해 줄까 늘 전전긍긍했지요. 그러다가 석 달을 못 넘기고 헤어지곤 했어요. 그러면 그렇지, 내가 좋을 리가 없지. 내 실체를 알면 다들 나를 떠나고 말지. 그렇게 생각해 왔어요.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으니,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잖아요? 나는 늘 불만이 가득하고, 스스로 사랑하지도 않고, 나만 빼고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어요. 친구들이 엄마 얘기를 하면, 제일 싫어요. 엄마랑 쇼핑 갔다. 엄마랑 여행 갔다, 엄마가 다독여 줬다. 그러면 나는 고개를 흔들어요. 엄마와 시장에 간 적은 있지만, 그것은 쇼핑이 아니었어요. 아주 드물게 가족여행을 한 적도 있지만, 어머니는 가기 전부터 짜증 내고 고함을 질렀어요. 집안도 좋고 성적도 좋고 예쁘기까지 한 친구들 틈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 투명 인간으로 살고 있어요.


-그런 엄마를 용서할 수 있을까?


돌연 내가 물었다. 라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어떻게 용서를 해요? 나한테 한 짓이 어마어마한데!


그랬다. 나 역시, 라의 나이일 때 누군가 이렇게 말하면, 나는 그를 뜯어버릴 듯이 쏘아봤을 것이다. 엄마를 용서할 힘이 내겐 없었다. 엄마는 늘 당당했고, 나는 늘 주눅이 들어있었다. 가해자를 용서하라는 말처럼 가혹한 게 있을까?


내가 뒤처진 새라면, 나한테 힘을 주는 이는 누구일까? 시에서 나오는 ‘나’는 누가 될 수 있을까?


-신요. 저는 종교가 없지만요. 신일 거라고 여겨져요. 나는 뒤처진 채 날고 있지만, 그런 나를 기다려주고 응원해 주는 존재는 신이 아니고서는 없을 것 같아요. 신이 있다면, 신일 거예요.


그럼, 신이 내게 전해주는 ‘힘’을 메시지로 적어보자고 했다. 잠시 생각하던 라가 글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라가 적은 글은 이러했다.


“라야, 나는 너를 잘 안다. 네가 뒤처진 이유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도 잘 안다. 라야,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날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박수를 보낸다. 나는 언제 어디서든 너와 함께 할 거란다. 내가 힘을 실어주며 너를 지탱시켜 줄 것이다. 라야, 힘내거라.”


-정말, 신이 있다면 이럴 거라고 믿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렇게 적고 읽어보니, 정말 신이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종교를 가진 이들은 모두 신을 믿잖아요. 도대체 보이지 않는 신을 어떻게 믿나요? 정말 보이지 않는데요.


라처럼 믿는다고 했다. 그리고 라처럼 듣는다고 했다. 라는 갑자기 양어깨를 움츠렸다.


-저처럼요? 저는 아무런 종교에 속하지도 않고, 신앙을 가지지 않은 데도요? 저는 신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신이 존재하는지도 몰랐어요. 그런 쪽으로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아왔어요. 지금은 순간적으로 아주 잠깐, 신이 있지 않을까? 하는데요. 이런 생각이 다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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