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두 번째 순서로 넘어갈 차례였다. 한 장의 종이를 내밀었다. 반으로 접어보자고 했다. 왼쪽 면에 평소에 자주 하는 말을 적어보라고 했다. 속으로 말하든 겉으로 말하든 간에 하루에도 많이 쓰는 말을 적어보자고 했다. 라는 순식간에 이렇게 적었다. ‘힘들어’, ‘죽고 싶다’, ‘살면 뭐 하나?’.
이제 오른쪽 면에는 자신에게 해줄 때 힘이 되는 말을 적자고 했다. 단, 비물질적인 것을 적어야 한다고 했다. 맛있는 것 먹을까? 영화 볼까? 시험이 끝났어! 이런 말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자주 쓰는 말이 ‘신기하다’이다. 정말 신기한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렇게 살아있는 것도 신기하고, 내가 치료사가 된 것도, 라를 만난 것도 신기하기만 하다. 매사에 신기하니, 지루할 틈도 없다. 숱하게 방황하고 심각한 우울의 늪에 빠져있다가 헤쳐 나온 것도 신기할 따름이다. 에너지가 되는 말은 ‘할 수 있어!’이다. 삶 속에서 이 말의 효과를 톡톡히 보기도 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힘에 부치는 일을 할 때 꼭 이 메시지를 내게 보낸다.
라는 “살 수 있어!”라고 썼다. 나는 앞에 ‘잘’이라고 붙이면 어떻겠냐고 했다. 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살 수 있어!” 나는 조금 더 조심스럽게 이렇게는 어떻겠냐고 했다. “잘 살고 있어!”라는 고개를 저으려다가 결심한 듯 끄덕였다. “잘 살고 있어!”로 최종 낙찰되었다. 비슷한 말 같지만, 이 세 말은 각기 다른 의미를 가진다. ‘살 수 있어’는 생존과 결부된 말이다. 죽을 수도 있지만, 살 수도 있다는 말이다. 까딱하면 죽을 수 있다는 쪽으로 넘어갈 위험도 있다. ‘잘 살 수 있어!’는 지금은 잘 못살고 있으니 좀 더 잘 살라고 자신을 채근하는 말이다. 간신히 버티고 있는데 등을 떠미는 꼴이다. 내면의 힘이 막강하다면, 등을 좀 떠민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다. 내면이 약하다면, 그런 재촉마저도 힘겹다. “잘 살고 있어!”는 언뜻 보면, 거짓으로 들린다. 잘살고 있다면 하루에 많이 하는 말이 힘들어, 죽고 싶다, 살면 뭐 하나 따위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뭐, 어떤가. 이렇게 안 죽고 살아왔고 살아있지 않은가! 게다가 이렇게 직접 센터를 찾아와서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가! 라는 참으로 잘 살고 있는 것이다!
왼쪽과 오른쪽에 쓴 말을 함께 살펴보자고 했다. 라가 어이없다며 웃었다. 늘 에너지를 깎아내리는 말을 해대며 살아왔던 것을 비로소 알아차렸다. 이제부터는 자신한테 에너지를 주겠다고 했다.
첫 만남을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라한테 과제를 내주었다. 에너지를 주는 나만의 메시지, “잘 살고 있어!”를 하루에 세 번 자신에게 말해주라고 했다. 아침, 눈 뜨자마자 그리고 낮 동안 자유롭게, 밤에 자기 직전에. 그리고 한 가지 더, ‘하늘’을 3분 정도 가만히, 말없이 혼자 바라보고 떠오르는 느낌을 한 줄 이상 적어오라고 했다. 단 한 줄이라도 좋다고 했다. 단, 밤이 아니라 낮의 하늘, 흐린 날이 아니라 하늘빛이 선명할 때의 하늘을 만나라고 했다. 첫 만남에 대한 참여 소감을 물어보았다. 라는 여전히 내 눈길을 피한 채 말했다.
-생각보다 좋았어요. 생각에는... 좀 엄한 수업 같을 줄 알았거든요. 마음이 편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