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큼 큰 얼음이 있다. 이 얼음은 오래전부터 이곳에 있었다. 오래전에는 크기가 작았지만, 세월을 지내 오면서 부피가 커져갔다. 얼음 주위에 차가운 바람이 일고 있다. 얼음 주위에는 온도가 내려가 있어서 싸늘한 공기가 맴돌고 있다. 아무도 얼음 주위에 얼씬하지도 않는다. 이 얼음이 커지는 과정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얼음은 내 나이만큼 자라왔고, 이제 얼음 근처만 가도 춥고 쌀쌀한 바람이 일 정도다. 나는 이제 이 얼음을 녹이기로 결심한다. 얼음 주위에 따뜻한 난로를 놓아둔다. 난로의 열기가 내 얼굴 위로 옮겨가서 얼음 위로 옮겨지는 것을 나는 바라보고 있다. 난로의 열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 잘 녹지 않을 것만 같던 얼음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녹기 시작한다. 머리 위에서부터 무너지면서 크기가 줄어들고 있다. 나는 다가가서 얼음을 안아준다. 내 품 안에 얼음을 끌어안고 있다. 나는 얼음이 이토록 크게 자랐는지 그동안 결코 상상하지 못했다. 이제 이 얼음을 내 품으로, 또 난로의 열기로 녹이고 있다. 얼음의 크기가 점점 줄어든다. 이제 찬바람 대시 훈훈한 바람이 감돌고 있다. 점점, 점점 얼음이 녹고 있다. 이제 손바닥 안에 한 덩이의 얼음만 남았다. 얼음 위로 다른 쪽 손바닥을 포개어 본다. 얼음이 내 손바닥 안에서 점점 녹고 있다. 이제, 물이 되었다. 손바닥에는 물 자국만 남았다. ...... 지금 문득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를 마음속에 간직해 본다. 이 단어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눈을 뜬다.
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라가 떨리는 음성으로 ‘용서’라고 했다. 동시에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직은 아니에요. 아직, 용서할 수 없어요.
라가 말했다.
-내가 얼음 성안에 갇혀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지금까지는 그런 줄 전혀 몰랐거든요. 성안에서 얼마나 춥고 답답했을까 생각하니, 내가 안쓰럽게 느껴졌어요. 눈을 감고 떠올랐을 때, 얼음이 녹긴 했고, ‘용서’라는 단어가 떠오르긴 했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답일 수는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판단하는 것도 자아이겠지요? 제 자아가 너무 강해서 그런가 봐요.
용서는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해 꾸짖거나 벌하지 않고 덮어주는 것을 뜻한다. 그렇게 따지지 않는 것은 자아가 자신의 역할을 유보하는 것이다. 따질 것은 따져야지! 하고 들쑤셔대는 것이 자아이다.
그런데 정작 용서해 줄 대상은 용서받기에 바람직한, 합리적인 언행을 하지 않는다. 변화는 쉽게 오지 않고, 변화하지 않으면 치유는 없다. 그러니, 인간의 의식은 돌고 돈다. 주어진 그대로 그 속에 휘말린 채 평생 살뿐이다.
사실, 용서는 베풀어줄 대상의 상황에 따라 따져보고 하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거래가 아니라 은혜다. 용서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다. 그래서 용서할 수 없는 대상을 두고 용서라는 말을 하면, 폭력으로 들린다. 아직 따지고 죄를 물어 값을 치러야 하는데 무슨 용서냐며 화가 난다.
용서는 ‘사랑’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사전을 찾아보면, ‘아끼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사랑이다. 나를 괴롭힌 사람한테 그게 가능할 리가 없다. 그렇지만 어떤가. 우리가 배운 것에 의하면, 이 모든 부정조차 나를 성장하기 위해 저 멀리에서 신이 보낸 안내자이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면, 그때 자아는 말랑말랑해진다. 반죽하기 좋을 때가 된 것이다.
라한테 이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았다. 말해줄 수도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마음으로 라를 바라보았다. 라와 눈이 마주치자, 라의 내면의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도와주세요. 저도 용서하고 싶어요!
다음 주까지 힘이 되는 메시지, ‘괜찮아, 잘했어, 잘할 거야’를 하루 세 번 해오라고 당부했다. 매일 해야 하고, 방법은 같다고 했다. 그리고 어떤 꽃이든 가까이 다가가서 그 꽃 한 송이를 3분 정도 바라보며 떠오르는 것을 한 줄 이상 적어오라고 했다.
-지금은 그렇지만 달라질 수도 있겠지요? 용서 말에요.
라가 가방을 둘러메면서 말했다. 분명 그럴 것이다. 그래야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