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만남: 도도새 --- 1

by Sia

여섯 번째 만남: 도도새


-알바하러 걸어가는 길에 만난 꽃이 있어요. 초록 잎에 둘러싸인 하얀 요정 같아요. 향기를 맡아보니, 참 은은했어요. 검색해서 찾아보니 ‘치자꽃’이었어요. 꽃말도 찾아보았지요. ‘한없는 즐거움과 행복’이라고 해요. 새하얀 얼굴로 꽃이 이렇게 말했어요. “너도 나처럼 향기로울 수 있어. 널 응원해!”


정말이지 라도 한송이 치자꽃이었다. 막 세수를 끝낸 순수한 얼굴로 수더분하게 핀 치자꽃. 치자꽃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 향기가 환하게 퍼지고 있었다. 과제도 성실하게 해냈다고 하며 라가 웃었다. 이제 라는 곧잘 웃는다. 그것만 봐도 우리가 잘해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 주 동안의 삶을 단어 하나로 나타내보자고 했다. 라는 ‘득과 실’이라고 했다. 평일, 저녁 늦게까지 알바를 하다 보니 피곤하더라고 했다. 그래도 엄마와 마주할 시간이 없어서 발작을 마주할 틈이 없어서 좋다고 했다.

불현듯 사건 하나가 떠올랐다. 2018년, 일본 시가현에서 일어난 일이다. 의대에 가라는 엄마의 강요에 9년 동안 재수를 한 딸이 있었다. 지역 국립대 의대에 불합격했지만, 엄마는 친척들에게 합격했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의대 입시를 강요했다. 딸은 결국 20대 후반에서야 의대가 아니라 간호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그러다가 졸업할 무렵에 엄마와 갈등이 불거진다. 엄마는 의사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조산사가 되라고 했지만, 딸은 수술실을 고집한다. 사건 당일 딸은 다시 한번 더 엄마한테 자신의 의지를 밝힌다. 엄마는 그런 딸한테 “너 때문에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졌다! 이 배신자!”라고 악담을 퍼붓는다. 그날, 딸 노조미는 엎드려 있는 엄마의 목을 칼로 찔러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집 근처 하천 부지에 버렸다. 1월 20일 새벽, 사건을 저지른 딸은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괴물을 처단했다. 이걸로 안심이다.”


34살 노조미는 끔찍한 존속살인을 저질렀지만, 항소심에서 징역 10년으로 감형된 판결을 받았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극심한 엄마의 간섭과 학대를 받은 만큼 동정의 여지가 있다는 이유였다. 노조미는 사망 당시 58세였던 엄마와 단둘이서 살았다. 아빠는 일 때문에 오랜 시간 떨어져 지냈다. 그녀는 엄마의 포로처럼 지냈던 삶보다 감옥 생활이 더 편하다는 말을 남겼다.


노조미는 엄마를 살해하기 전에 인터넷에서 자살 방법을 여러 차례 검색했다고 한다. 아마도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으리라. 얼마나 숱하게 자살을 품어왔을까. 당해본 사람만이 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너무나 오랫동안, 계속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들면서 오로지 자신만의 방법을 강요하는 어머니. 도무지 벗어날 방법이 없다. 남들은 그저 멀리 떨어져서 살면 되지 않냐고 하겠지만, 그게 쉽지 않다. 정신이든 육체든 지속적인 지배를 당해 왔다면 박차고 떠나기가 쉽지 않다. 어디를 가도 악몽이고, 지옥이다. 그래도 죽이는 것보다 멀리 도망이라도 가는 게 낫지 않냐고 반문한다면, 그렇다. 그게 최선이긴 하다.


그렇게 독립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끈질기게 연결이 되고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독한 마음을 품고 연락하지 않으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얼마 가지 못했다. 연락을 두절했을 때도 어머니의 망령에 시달려야 했다. 끊임없이 귀에서 나쁜 년, 지독한 년, 몹쓸 년이라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마지못해 연락하면 측은한 잠깐의 순간이 지나가고, 또다시 고통이 시작되었다. 일거수일투족을 지배하려는 어머니와 숨을 쉬려는 나. 모든 것을 지시하려는 어머니와 옥죄는 간섭에서 벗어나려는 나가 끊임없이 충돌했다. 그 모든 대립의 각을 보이지 않게 하는 재치가 필요했다. 조금이라도 그런 기색을 눈치채면 가차 없이 발작하곤 했다. 혹은 일부러 가슴을 후벼 파면서 수시로 발작을 일으키곤 했다.


이 모든 기가 막히는 일을 오랫동안 혼자 간직하면서 살았다. 그러다가 자전적 소설을 써서 책으로 낸 적이 있었다. 이후 한 라디오 방송에서 연락이 와서 인터뷰하게 되었다. 방송을 진행하던 변호사는 신기하게도 책을 읽어보지 않은 채였다. 프로듀서가 적어 놓은 각본대로 그저 꼭두각시처럼 말할 뿐이었다. 나는 진솔하게 답변했고,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엄마가요? 친엄마인데 그랬다고요? 허, 참. 그는 말끝을 흐렸다. 잘 믿지 못하겠다는 투였다.


많은 이들이 그럴 것이다. 친엄마가요? 친아빠가요? 친부모가 그랬다는 말인가요? 허, 참.

자신이 당하지 않은 일들은 모르는 법이다. 그렇지만 내가 겪어보지 못한 숱한 일들이 세상에는 무수히 일어난다. 보편성을 벗어나는 일들도 다반사다. 괴물 엄마를 죽여서 괴물이 된 딸 이야기는 노조미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찾아보면, 맥락이 같은 사건들이 엄청 많을 것이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지르는 것은 인간성을 붕괴시키고 만다. 그 엄청난 부정에너지는 걷잡을 수 없이 파멸로 이끈다. 내면에 쌓인 이 어마어마한 부정에너지를 어떻게 해야 할까? 그대로 두면, 자신도 괴물이 되고 만다.


라한테 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새요? 날아다니는 새? 너무나 자유로워 보여서 좋아요. 다시 태어나면 새가 되고 싶어요.


라는 금세 환해진 얼굴로 말했다.


나만의 새를 오늘, 지금 만날 거라고 했다. 이 새는 내 마음에 살고 있는 새다. 내가 잉태되던 순간부터 나와 함께 해왔다. 내 과거와 현재의 삶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고 있을 수도 있지만, 나를 위해 그런 말은 아낀다. 마음의 중앙에서 살고 있어서 육체의 옷을 벗고 난 이후에도 내 영혼과 함께할 새이다. 새는 천사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위로와 격려, 지지와 포옹을 해주는 천사 같은 새이다. 충고나 조언이나 나무람을 하지 않는다. 그런 것이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 새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어느 정도의 몸집을 지녔고, 색깔은 어떤가? 새의 특징도 떠올려보자. 이미지를 고스란히 떠올린 채 이름을 붙여보자. 이름을 지은 이유도 함께 말해보자.


라가 잘 상상할 수 있도록 내 새를 소개해줬다. 나만의 새는 ‘방울새’다. 방울 모양으로 동그랗게 생겼다. 주먹 두 개 정도의 몸집에 꼬리가 엄청 길다. 한 삼십 센티미터 정도 된다. 연하고 분홍빛으로 부드러운 느낌이다. 날갯짓하거나 움직일 때마다 꼬리에서 오색찬란한 빛가루가 뿌려진다. 무척 현명하고 지혜로운 방울새다.


-제 마음의 새는 ‘도도새’ 예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제 키보다 훨씬 더 커요. 이미터 정도 됩니다. 몸은 하얀빛인데 머리에 왕관처럼 동그랗게 금빛 띠가 둘러져 있고, 꼬리는 적당하게 긴데, 꼬리가 무지갯빛입니다. 너무나 아름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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