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새를 만난 것을 축하한다며 박수를 보내주었다. 라가 환하게 웃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라가 웃을 때 라의 주위에 밝은 불이 켜지는 듯했다. 그 말을 했더니 라가 한 번 더 웃었다.
도도새를 직접 만나보자고 했다. 언제 어디서든 무엇을 할 때라도 도도새를 만날 수 있다. 눈을 감거나 떠 있을 때도 만날 수 있다. 이미지를 떠올린 채 이름을 세 번만 부르면 된다. 지금, 현재, 이 순간에 이름을 세 번 부르면 도도새가 다가와서 메시지를 줄 거라고 했다.
-도도새, 도도새, 도도새.
라는 눈을 감은 채 세 번을 불렀다. 잠시 그대로 머물렀다가 눈을 떴다.
-정말 나타났어요. 도도새가 아무 말 없이 나를 안아줬어요. 너무나 포근했어요. 푹신푹신한 솜이불처럼요. 그렇게 하고 있다가 눈을 떴어요. 이게 현실이군요! 도도새가 살아있다니! 내 마음 안에 살고 있다니! 참 신기해요. 이제야 도도새 존재를 알게 되었어요.
이렇게 이름을 불러주면, 나만의 새는 다가와서 나와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이제 라는 도도새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이다. 오늘, 새로운 역사를 기록하는 날이 된 것이다.
에릭 치료쿠(Eric Chiryoku)의 ‘인생 여행 || 겨울 이야기(Life Journey || Winter Story)’ 음악을 배경으로 해서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의 ‘기억이 나를 본다’를 낭송해 보자고 했다.
기억이 나를 본다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유월의 어느 아침, 일어나기엔 너무 이르고
다시 잠들기엔 너무 늦은 때.
밖에 나가야겠다. 녹음이
기억으로 무성하다, 눈 뜨고 나를 따라오는 기억.
보이지 않고, 완전히 배경 속으로
녹아드는, 완벽한 카멜레온.
새소리가 귀먹게 할 지경이지만,
너무나 가까이 있는 기억의 숨소리가 들린다.
시의 숲으로 안내했다. 숲을 온전하게 즐기는 것은 당연히 라의 몫이다.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1931년 4월~2015년 3월)는 스웨덴 시인이다. 2011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유월의 어느 아침이다. 무덥지도 시원하지도 않은 애매한 유월. 일어나자니 너무 시간이 이르고 자려고 하니 너무 늦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모호한 날이다. 순간 밖으로 나가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나는 녹음이 우거진 풍광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문득 기억 하나가 쫓아온다. 눈을 부릅뜨고 나를 향해 달려오는 기억. 평소에는 잘 나지 않는 기억이다. 배경 속으로 녹아드는 카멜레온처럼 잘도 숨겨오던 기억이었다. 거기에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살아왔다. 탄로 나지 않도록 완벽하게 숨었던 그 기억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녹음이 짙은 풍광 속에서 새소리가 귀먹을 정도로 왁자하게 들려오지만, 이제 나는 기억 속에 파묻혀 버렸다. 나를 도사리고 있던 기억이 가까이 와 있다. 그렇게 기억의 숨소리가 들린다.
-끔찍해요. 다 잊고 싶은데. 잊은 줄 알았는데. 현재가 행복하면, 과거 생각은 안 날 줄로만 알았어요. 잊고 싶어서 몸부림치기도 했어요. 그런데 노리고 있었다니요, 기억이!
라가 말했다. 첫 기억 속의 라는 오뚝이 인형을 잡았던 나였다. 우리는 첫 만남에서 한 살배기 라를 만나서 칭찬해 주었다. 이제, 어떤 기억을 꺼낼 수 있을까? 일단, 시에서 인상 깊은 구절이나 단어를 찾아보라고 했다.
‘기억의 숨소리’라고 라가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 이 시는 그냥 읽는 순간부터 아팠어요. 그냥 아프게 하는 시군요. 나를 넘어뜨리려고 겨냥해 온 기억이 나한테 총을 쏘는 것만 같아요.
라는 얼마나 처절한 기억들을 지니고 있을까. 그걸 다 풀어낼 수도, 풀고 나서 주워 담을 수도 없을 것이다. 트라우마가 가득할 때, 그것도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일어난다면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함부로 끄집어낼 수도 없어서 덮어두기만 할 뿐이다. 그럴수록 마음은 병이 든다. 그러면서도 아프지 않은 척하고 살아가니, 실은 환장하게 아픈 것이다. 애써서 태연한 척하는 것은 억압의 극심한 형태다. 모든 ‘척’하는 것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아픈데도 아프지 않은 척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지냈을 것이다. 그런 모든 ‘척’들이 모여서 삶의 ‘축’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 축은 비유하자면, 바람만 불면 허물어지는 짚으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마음을 단단하게 세우지 못한다. 척하게 되는 이유와 비슷한 일만 겪어도 허물어지고 만다. 척하는 것에 대한 암시만 줘도 강렬하게 마음을 때리게 된다. 지금, 라가 겪고 있듯이.
얼마나 무수한 기억들이 나를 강타해 왔던가. 이혼하고 집에 온 내게 어머니는 경멸하는 눈초리로 나를 쏘아봤다. “앞으로 돈 못 벌어서 애 못 먹여 살리면, 네 배때기를 칼로 확 쑤셔 죽여버릴 거닷!” 그게 어머니가 내게 한 말이었다. 그 말에 얼마나 사무치도록 아팠는지 모른다. 어떻게 딸한테 그런 끔찍한 말을 함부로 내뱉을 수 있는지 놀랄 정도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고도 스스로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그 말을 한 당사자는 기억도 못 하는데, 나 혼자 그 말을 수시로 불러내며 괴로워했다. 잊을만하면 불쑥 찾아와서 혀를 날름거리며 흉한 얼굴을 들이대던 그 말들! 어머니가 내뱉었던 숱한 욕설들. 칼을 들고 설치고, 물건을 부수고 몽둥이로 때렸던 순간들. 그 무수한 기억들이 내 삶을 어둡게 칠하고 또 칠해왔다.
어머니와 좋았던 기억은 있었을까? 스스럼없이 웃으며 포근했던 기억? 분명 그런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평온한 분위기의 하얀색은 처참한 순간들한테 먹혀버렸다. 하얀색은 빛을 잃은 지 오래다. 그래도 어머니가 낳았고, 젖을 먹여서 키웠고, 돌봐줘서 자라왔던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맞다. 그것만으로 감사한 것이 아니냐고 한다면, 맞다. 그 분명한 사실 앞에서 나는 절망해 왔다. 그래서 마음 놓고 미워할 수도 싫어할 수도 없는 대상이 어머니였다. 어머니와 사이에 어쩌면 아름다운 기억이 이리도 없다는 말인가. 그것이 슬펐다. 아니, 그냥 포기했다. 어머니는 원래 저런 분이니까. 울거나 때리거나 고함지르거나 욕하거나 텔레비전을 보고 혼자 웃다가도 갑작스럽게 화를 내거나 하는 그런 분이니까.
라도 그럴 것이다. 과거를 불러내는 일은 쉽지 않다. 너무 힘들어서 봉합을 해버렸던 내 이십 대의 나날들처럼. 튀어나오지 마! 절대로 나와서는 안 돼! 하며 단단히 가둬 두었던 이십 대의 날들은 카멜레온이었다. 밀봉한 안으로 들어간 듯했지만, 결코 들어갈 성질이 못되었다. 평소에는 완벽하게 가려져서 삶 속에 스며들어 있었다. 그러니까 밀봉이니 봉합이니 하는 것은 위장에 불과했다. 사실은 애초에 감춰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여차하면 끔찍한 숨소리를 내며 괴롭혀댔다. 차라리 그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이 나았다. 축축하고 눅눅한 기억을 아예 끄집어내어 햇볕에 널어놓는 것이다. 그렇게 꼬들꼬들하게 잘 말려진 기억은 흘러가기 좋게 변한다. 흐름을 탈 수 있을 때가 오면 괴로움도 따라 흘러가 버린다. 그걸, 해낸 것이 자전적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