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십 년쯤 뒤의 일이다. 아버지는 내가 스물두 살이 되던 해 정월에 돌아가셨다. 임종 즈음에 나는 친구와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친구한테 집에 가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서둘러 집에 와서 아버지 곁에 머물렀다. 어제와 오늘이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건강은 급속히 나빠지고 있었다. 며칠째 아무것도 못 삼켜서 영양제 수액으로 버티고 있었다. 사과즙만 겨우 드셨는데, 그마저도 못 먹어 강판에는 갈변한 사과즙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아버지는 반듯하게 누워 있었는데 나는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느 틈에 언니도 다가와서 같이 불렀다. 아버지의 오른쪽에 내가, 왼쪽에는 언니가 앉아서 찬송가를 불렀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내 뜻과 정성 모아서 날마다 기도합니다. 내 주여 내 맘 붙드사 그곳에 있게 하소서. 그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
갑자기 아버지가 왼쪽 손을 들어 오른쪽 손목을 짚었다. 맥박이 뛰는 것을 스스로 알아차리려는 듯했다. 나도 덩달아 노래를 부르면서 아버지 손목을 짚었다. 불규칙적이고 약한 맥박이 느껴졌다. 아버지는 오른쪽 천장에 눈동자를 고정했다. 뭔가를 보는 듯했다. 나도 똑같이 아버지가 보는 쪽을 올려다보았다. 당연히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찬송가 5절을 다 부르자 아버지 숨이 멈췄다.
아버지가 내 이름을 부르며 일어설 것 같았다. 그래서 아버지 옆에서 계속 쳐다봤다. 잠시 방을 나가셨던 어머니가 울부짖으면서 아버지 눈을 감겼다. 사람들이 몰려와도 나는 계속 아버지의 감긴 눈을 바라보았다. 눈을 뜨면서 나를 부를 것 같아서였다. 어른들이 나를 일으켜서 아버지한테서 떼어 놓았다. 그렇게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행복했을 때가 있었을까? 언제 행복을 느껴보셨을까? 언니와 내가 어릴 때, 재롱을 부리던 때였을까? 어쭙잖게 내가 우수상을 타왔던 그때였을까? 간호사 가관식을 했을 때였을까? 그것 말고 아버지 스스로 인생에서 행복을 느꼈을 때는 언제였을까?
어머니는 간혹 아버지 얘기를 꺼내곤 했다. 이렇게 흔한 바나나 한번 실컷 먹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를 욕하는 것이 좀 줄어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끊지는 않았다. 어머니 말에 대꾸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꼭 아버지를 닮았다며 빈정거렸다. 어머니는 마음에 들지 않는 모든 것에 아버지를 갖다 대었다.
아버지는 꿈속에 잘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수년 만에 나타난 아버지는 야윌 대로 야윈 채였다. 해골만 남은 것처럼 해서는 밥도 뜨는 둥 마는 둥 일하러 나가셨다. 작고 가난한 13평짜리 아파트에서 용달차를 몰던 시절처럼. 바람이 불면 쓰러질 것 같은 아버지는 가엾고도 처참했다.
그러던 아버지가 팔 년 전, 오랜만에 나타났다. 아주 밝고 편안한 모습이었다. 어린 언니와 나를 안아주던, 젊고 건장한 모습이었다. 새로 이사한 집으로 들어와서는 대자로 방안에 편안하게 누우셨다. 나도 덩달아 옆에 같이 누웠다. 아, 좋다. 좋아. 아버지가 감탄조로 말하며 미소를 지으셨다. 그게 꿈속에서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다.
-아빠가 비틀비틀 쓰러지는 걸음으로 걸어왔어요. 너무 말라서 쓰러질 것 같았어요. 내가 가까이 가서 부축하려고 하니까 괜찮다고 하면서 안아주었어요. 뼈가 앙상하게 느껴져서 눈물이 났어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빠가 나를 안았어요. 나는 엉엉 소리 내면서 울었어요. 아빠는 너무나 야위었지만, 그래도 아빠 품 안에 있으니까 참 좋았어요. 그동안 아빠 이야기를 한 번도 끄집어내지 않았어요. 장례식 때도 별로 울지도 않았거든요. 그런데 꿈속에서 마음 놓고 울었어요.
라가 말했다. 나는 다만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다. 아마도 잊을만하면 꿈속에 이렇게 아빠가 다녀가실 것이다. 몇 번 이렇게 딸을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할 것이다. 그러다가 라가 성장하고 중심을 잡게 될 때, 혈색이 도는 건강한 얼굴로 흐뭇한 미소를 보내올 것이다.
-작년에 돌아가셨던 아빠 이야기를 하지 않은 건요. 차마 꺼낼 수가 없어서요. 아빠 이야기를 하면 내가 허물어질 것만 같아서였어요. 그런데 꿈에 생생하게 다녀가셨으니, 안 할 수가 없었어요.
라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꾹 눌러왔던 감정을 꿈속에서 비로소 드러내 놓은 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아빠를 다시 만나고 싶냐고 물으니 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으로 그렇게 해보자고 했다. 잠시 눈을 감고 복식호흡을 하게 했다. 온몸과 마음을 이완한 채로 호흡에만 집중해 보자고 했다. 그런 다음 하늘로 마음을 보내보라고 했다.
“지금, 나는 하늘에 있다. 하늘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어떤지 사방을 둘러보며 하늘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껴보자. ...... 저 멀리에서 아빠가 오는 것이 보인다. 아빠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아빠를 지금 만나고 있다. 아빠가 무엇이라고 하는지 그대로 들어보자. 나도 아빠의 말에 답을 하고 있다. 무엇이라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그대로 들어보자. ...... 이제, 대화를 마무리하고 있다. ...... 아빠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다. 지금, 이 느낌을 간직한 채 눈을 떠보자.”
-아빠가 저를 보자마자 안아주셨어요. 꿈속에서처럼요. 그런데 아빠가 야윈 모습이 아니었어요. 아주 건강하고 튼튼했어요. 제가 아주 어렸을 때의 아빠 모습이었어요. 씩씩하고 체격이 좋은 그런 아빠였어요. 아빠가 그러셨어요. “넌, 분명 잘 될 거야. 아빠가 널 지켜보고 있어. 언제나 어디서나 널 응원하고 있단다. 넌 훌륭하고 멋지고 아름답게 성장할 거야. 이제 죽으려고 하지 말아라. 그런 생각하지 말아라. 약속해 다오.” 제가 머뭇거리자 아빠가 다시 약속해 달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대답했어요. 네. 그럴게요. 아빠와 새끼손가락을 걸면서 도장도 찍고 복사도 했어요. 우리가 늘 그렇게 약속하듯이요. 아빠가 제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어요. “내 딸아. 참 고생이 많았지? 그래도 잘 이겨내야 해. 분명 잘 헤쳐나갈 거야. 아빠가 기도하고 있단다.” 그래서 제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아빠하고 헤어지기 싫다고 했더니, 아빠가 이미 제 마음속에 있다고 하셨어요. 제가 잘 몰라서 그렇지 수시로 다녀간다고 했어요. 아빠가 계신 곳은 어떠냐고 하니, 환하게 웃으셨어요. “보면 모르겠냐? 얼마나 좋으면 다시 돌아가지 않겠냐? 여기는 늘 봄날이란다. 다음에 만날 때까지 잘 지내렴. 건강해야 해.” 그게 마지막 말씀이었어요. 신기하게도 가슴에 막혔던 마개 같은 것이 뻥 뚫리는 것 같아요.
라가 차분하게 말해주는데 웬일인지 내가 울컥거려 왔다. 아버지는 분명, 봄날을 만끽하고 계실 것이다. 지상에서 누리지 못했던 행복까지 한꺼번에 맛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를 것이다. 지금, 아빠와 놀라운 약속을 해낸 라. 분명히 자살을 멈추겠다고 했다! 라가 그렇게 말할 때였다. 마침 창문으로 오후의 햇살 한 자락이 들어와 라의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라의 얼굴이 더없이 빛나고 있었다.
이번 회기는 삶을 통찰해 보는 것으로 준비했다. 자신의 삶을 한마디로 정의해 보자고 했다.
통찰하기 위해서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 성찰은 나무 한 그루를 찬찬히 살펴보는 것과 같다. 뿌리가 어디로 뻗어가 있는지, 나무의 크기는 어떤지, 가지들은 어떻게 뻗어갔는지, 잎들은 어느 방향으로 가 있는지를 세세하게 살피는 것이 성찰이다. 성찰하게 되면 통찰로 이어질 수 있다. 성찰은 통찰로 가는 통로인 셈이다. 나무가 아니라 숲을 바라보는 것이 통찰이다. 숲 전체의 형태가 어떤지, 동그란지 네모인지 혹은 세모인지 보려면 높은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 높은 곳에서 보면, 숲의 오른쪽에는 소나무가 많고, 왼쪽에는 참나무가 있고, 가운데는 자작나무가 있다는 것도 알아차릴 수 있다. 아직 어린나무가 어느 정도 있는지도 볼 수 있지만, 노거수들이 많은 곳은 어디라는 것도 알 수 있다. 성찰할 수 있다면, 통찰로 나아갈 수 있다.
내 삶은 한마디로 ‘극복’이었다. 무엇을 극복해 왔던가? 단연코 어머니다. 어머니는 나를 숱하게 죽여왔다. 마음도 육체도 어머니가 휘두른 욕설과 폭력에 죽임을 당했다. 내 삶은 어머니로 인해 엉망이 되었다. 여유 있고 느긋할 때가 없을 정도였다. 내 영혼을 갉아먹는 존재가 어머니였다. 그런 어머니와 평생 함께했다. 이제 아흔을 훌쩍 넘긴 어머니는 예전과 같지 않다. 그러면서도 예전과 같다. 이 모순된 말이 현실인 이유는 변한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갓 아흔을 넘길 무렵 어머니는 많이 아팠다. 코로나에 걸린 것도 같았지만, 검사조차 하지 못했다. 예방접종도 거부해서 백신을 맞은 적도 없었다. 보름 가까이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방 안에 있는 화장실도 부축해서 걸을 정도였다. 병원을 가자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구급차를 두 번이나 불렀는데도 거부했다. 다급하게 언니와 오빠를 불렀다. 언니의 불안하고 과도한 행동에 어머니는 크게 화를 냈다. 급기야 언니를 쫓아내기까지 했다. 오빠는 반나절 있다가 돌아갔다. 오빠는 장례식 운운하며 마지막을 예감하고 있었다. 그럴 즈음 미국에 사는 딸을 불렀다. 내가 죽을 무렵에는 안 와봐도 되지만, 할머니한테는 부디 와달라고 사정했다. 그렇게 온 딸과 두 돌이 되어가는 손자가 이십여 일 머물렀다. 그러는 동안 기적이 일어났다. 끼니를 거부하던 어머니는 손자가 잡아 이끌자 식탁에 앉았다. 보름 넘게 아무것도 먹지 않다가 바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먹고 싶다던 딱새우를 구해서 차려 드렸더니 그것과 밥을 먹었다. 게다가 식사 때마다 손자가 어머니 손을 잡아서 식탁으로 앉게 했다. 아이가 왔다 갔다 쫓아다니는 모습을 지켜보던 어머니는 일주일 만에 일어나셨다. 그러니 딸이, 손자가 어머니를 살린 거였다.
딸과 손자를 공항으로 바래다주고 돌아왔을 때였다. 아직 병색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어머니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너한테 할 말이 있다.” 공항까지 오가는 데 줄잡아 여섯 시간 넘게 걸렸으니 어머니가 화가 난 거라고 짐작했다. 자신을 혼자 있게 했다며 다시 욕설이 날아오겠거니 했다. 마침 볼 일이 있어서 잠깐 나갔다 온다고 했다. 갔다 와서 얼른 저녁을 차려 드리면 되겠다 싶었다. 밖에서 일 처리를 하면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면 그렇지. 또 살아나니 근성이 나오는 거구나, 그런 생각으로 언짢았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이런 게 얼마나 반복될까? 참 아득하기만 했다. 몸이 약해지면 온갖 짜증을 내고, 또 회복하게 되면 화를 내고. 늘 되풀이되는 일이었다. 나는 언제까지 이런 행패를 다 받아들이고 있어야 하나,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그러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기도할 뿐이었다. 그렇게 기도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너한테 할 말이 있다.”
어머니가 소파에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나서 앉았다. 내가 다가가니 어머니는 일어섰다. 그러더니 나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내가, 내가 지금 이러는 게 아닌데...... 너한테 이럴 수가 없는데......”
말끝을 흐리는 어머니한테 물어봤다. 뭘요? 뭘 말씀하시는 거예요?
“내가 이제 생각이 났다. 이제, 이제야. 내가 너를 많이, 참 많이도 때렸다. 그게 이제 생각이 났다. 지금에서야! 내가 이렇게 너한테 도움을 받고 사는 게 말도 안 된다.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야. 네가 나를 이렇게 챙겨주는 게 맞지 않다. 내가 무슨 면목으로 이렇게 산단 말이고? 언감생심이다. 내가 얼마나 너를 때렸는데!”
갑자기 어머니가 잘 굽혀지지 않는 무릎을 거실 바닥에 대고 엎드리려고 했다. 잘되지 않자 무릎만 겨우 바닥에 댄 채로 몸을 숙였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어머니가 빌고 있었다. 어머니한테 처음으로 받아보는 사과였다. 나는 갑자기 당황했다. 이 믿기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이러다가 관절염이 도지면 안 되는데, 그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머니가 계속 미안하다며 울었다. 나는 어머니를 일으켜 안았다. 어머니는 그대로 장궤한 자세로 울기만 했다. 어머니를 안으며 토닥토닥했다.
-어머니도 모르고 그랬잖아요. 그냥, 잘 모르고 그러셨잖아요. 괜찮아요. 하도 오래되어서 기억도 잘 안 나요. 괜찮으니까 그만 우세요. 우리 행복하게 오래오래 같이 살아요.
기껏 그렇게만 말했다. 그러고는 소파에 어머니를 앉게 했다. 어머니는 소파에서 옆으로 누운 채 한참 동안, 삼십 분도 더 넘게 울고 울었다. ‘미안하다’를 중얼거리면서. 어머니한테도 그런 일이 일어난 걸까? 언젠가 내가 새벽예배를 마치고 와서 어머니한테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것처럼. 머리와 가슴이 입으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그저 입이 열린 것처럼. 내가 하면서도 그렇게 하고 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처럼. 내 입술과 혀가 사랑을 말할 때 동시에 온몸과 마음 전체가 공명할 때처럼.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너무도 놀랄 일이었다. 어머니는 경계성 인격장애였다. 마음에 들면 상대방을 천사로 추켜세웠다가 조금이라도 기분이 나쁘면 악마로 몰아붙였다. 한창 미술치료를 배울 때였다. 어머니한테 나무를 그려보라고 했다. 아주 가냘프고 다 쓰러져가는 볼품없는 나무를 그렸다. 그것도 종이 가장 귀퉁이에 아주 조그맣고 희미하게 그렸다. 풀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나무가 자아를 나타낸다면, 어머니의 자아는 곧 뽑혀나갈 것처럼 위태로웠다. 어떨 때는 지나친 자만감을 보이며 우쭐대기도 했다. 그것은 흔히 욕을 하면서 튀어나오곤 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나? 네 머리 꼭대기 위에 있다! 귀신을 속이지 나를 못 속인닷!
그런 한편, 어머니는 어느 순간에는 자신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기도 했다. 나는 머저리다. 네 아버지와 결혼했으니. 너희들을 낳고 살았으니 나는 바보 멍텅구리다.
그런 위태로운 감정의 줄타기를 해왔던 어머니가 용서를 빈다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뭔가 이성을 뛰어넘는 일이 일어나고 만 거였다. 그날, 어머니의 용서 이후 변한 것이 있다. 나를 죽일 것만 같았던 어머니. 숱하게 내 영혼을 죽여왔던 어머니. 내게는 천형의 십자가 같기만 하던 어머니를 사랑한 것은 내 힘이 아니었다. 결단코 그것은 신의 은총이었다. 그 이후 내 삶은 긍정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관절염이 도져서 걸음을 걷지 못하던 어머니를 모신 것도 큰 변화였다. 어머니를 모셔야겠다는 결심을 했던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그때 하늘 문이 열리는 느낌을 받았다. 무엇이라고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이 넘쳐흘렀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여전했다. 아플 때는 짜증을 부렸고 수시로 화를 냈다. 반찬이 없다며 꺼이꺼이 통곡하듯 울기도 했다. 막무가내로 지팡이로 나를 때리고 나서 그 지팡이를 짚으며 가출하기도 했다. 걸핏하면 친척들한테 내 욕을 하기 일쑤였다. 기분이 조금이라도 상하면 욕이 튀어나왔다. 혹시라도 밤에 자는데 칼로 나를 찌르지는 않을까 걱정되던 때도 있었다. 한 번은 또 어머니가 욕을 하고 악다구니를 거침없이 퍼붓고 있을 때 이런 생각조차 들었다. 이러다가 돌아가시면, 그제야 알게 될 거라고. 내가 정말 딸한테 잘못했구나, 내가 왜 그랬을까. 정말 잘못했다 이렇게 뉘우치게 될 거라고. 그때는 이미 때를 놓쳐서 악독하게 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거라고. 그렇게 등 뒤에서 욕하고 있는 어머니의 앞날을 생각했다. 불쌍한 분이다. 정말, 어쩌면 생의 막바지까지 저럴까. 그렇게 속으로 딱하다고만 여겼다.
어머니의 사과는 그런 마음을 잠재우게 했다. 그날, 결심했다. 이제 어머니의 앞날, 사후까지도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빌어 드리겠다고. 그러니 어머니의 용서는 내가 앙심을 가지지 않도록, 오로지 나를 위해서 한 거였다. 도대체 어머니의 입술과 영혼을 움직인 존재는 누구였을까?
조금 시간이 지나서야 알아차렸다. 그날, 어머니가 용서를 빌고 내가 어머니를 안고 있을 때, 방울새가 나타났더랬다. 연분홍빛 날개를 활짝 편 채로 우리 가까이 날면서 빛을 사방에 뿌려대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 용서 사건 이후 화를 한 번도 안 내셨나? 그렇지 않다. 오른쪽 발이 갑자기 부었을 때, 하루에도 수 번씩 멀쩡한 파스를 붙였다 뗐다 하면서 마구 짜증을 냈다. 얼음찜질팩을 갖다 드려도 거부하고 병원도 안 간다고 고집을 부렸다. 급기야 어머니 발을 마사지하면서 입술을 갖다 대기도 했다. 제발 부기가 빠지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했다. 차라리 내가 아프면 더 편하겠다고, 어머니의 통증을 부디 없애게 해달라고 기도드렸다. 신기하게도 일주일 뒤, 부기가 빠졌다.
“내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너한테 호강도 다 받아보고. 네가 이리도 나한테 잘하네.”
이런 말도 자주 하는 어머니. 차려 드리는 음식을 먹고 나서 꼬박꼬박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는 어머니.
“내가 너 없었으면 어떻게 살 뻔했냐?”라는 말도 수시로 하는 어머니. 최근의 어머니와 예전의 어머니는 같은 사람이 아닌 듯하다. 도대체 어머니를 이렇게 변하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삶은 영혼의 성장”이라고 라가 적었다. 아, 나는 라의 영특함에 탄성이 나올 뿐이었다. 아직은 잘 모를 수 있는 이십 초반인 라한테 어떻게 이런 멋진 정의가 나올 수 있을까?
-가르쳐주셨잖아요. 충분히 새겨들었거든요. 제가 잘 배워서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거예요. 감사합니다!
라가 쑥스러운 듯 웃으며 말했다.
-고통과 고난이 오는 것은 성장을 위해서라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제게는 엄마가 성장을 위한 자극을 해주시는 것 같아요. 엄마가 저를 좋게 대해야 제가 좋아질 거라는 생각을 그만 내리려고 합니다. 그 대신, 제가 엄마한테 휘둘리지 않도록 스스로를 많이 안아주고 위로해주려고 해요. 그리고 일단, 대학을 졸업하면 집에서 좀 떨어진 직장을 잡으려고 해요. 심리적인 독립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라는 멋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자아가 위태롭고 흔들릴 때마다 나를 못살게 굴었다. 그럴 때마다 나도 함께 위험한 줄을 타듯 나를 대했다. 이제, 라는 그렇게 어머니한테 휘둘리지 않겠다고, 자신을 긍정 에너지로 채우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라한테 삶에 대한 짧은 시를 지어보자고 했다. 라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렵지 않을 거라고 했다. 이미 시를 지어보지 않았냐고 하니, 라가 어떻게 알았냐고 되물었다. 라가 시를 지을 동안 잔잔한 음악을 틀어도 괜찮은지 물어보았다. 라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쇼스타코비치 왈츠 2번을 들려주었다. 삶은 춤이다. 그것도 우여곡절을 삼키면서 가볍게 추는 춤이다. 슬픔이 어린듯하나 미소를 머금으며 즐겁게 추는 춤이다. 아픈듯하나 시원함이 퍼져가며 추는 춤이다. 무거운듯하나 날아오를 수 있게 추는 춤이다. 침울한듯하나 상쾌하게 추는 춤이다. 혼자 추기도 하지만, 같이 출 때가 많은 춤이다. 추고 싶지 않은 듯하지만 역시 추는 쪽으로 몸을 기울게 되는 춤이다.
라가 다 썼다고 내밀었다. 라가 직접 낭송하게 했다.
“온통 멍 투성이었던
삶을 내려놓습니다
옥빛 안에서 포르르 날아온
도도새가 어루만져 줍니다
태어나게 하고 거두게 하실 분
곁에서 기도하는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멍이 자꾸만 멍해집니다
멍이 아득해집니다
멍이 스르르 잠이 듭니다
삶이 다시 깨어나고 있습니다”
라가 자작시를 낭송하고 있을 때 여전히 왈츠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다시 깨어나고 있는 라의 삶. 멍이 사그라들고 있는 라. 우리는 함께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마지막 과제를 내주었다. 에너지를 주는 메시지, ‘괜찮아, 잘했어, 잘할 거야’는 3번,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밤에 잠들기 직전, 낮 동안 자유롭게 한 번. 그리고 ‘감사합니다’는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밤에 잠들기 직전. ‘나만의 새’가 해주는 모션과 함께 하는 ‘괜찮아, 잘했어, 잘할 거야’는 자유로운 시간에 하루에 한 번. 그렇게 날마다 한 다음, 떠오르는 것에 대해 센터에 오기 전날 한 줄 이상 적어오라고 했다. 라는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이제, 정말 마지막 시간이 되었네요. 선생님, 제 에너지가 변하고 있다는 느낌을 오늘 유독 많이 받았어요. 참, 멋진 시간이었습니다. 들려주신 음악의 선율을 흥얼거리며 일주일을 지낼 것 같아요. 아빠와 만난 것도 참, 뜻깊었어요. 감사해요.
라는 아빠와 한 약속을 지킬 것이다. 영혼에 새겨진 약속은 결코 어길 수 없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