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행복의 조건 - 조지 베일런트'
내가 스물한 살일 적 이야기다. 당시 나와 3살 터울인 동생은 열여덟이었다.
처음 눈치챈 건 동생이 내 롱패딩을 빌려갔을 때였다. 잠시 밖에 나가려고 어쩔 수 없이 동생 롱패딩을 입었는데 주머니에서 라이터가 나왔다. 심지어 OO나이트라고 적힌, 길거리에서 주워 쓴 듯한 싸구려 라이터였다.
당황한 나는 바로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어떻게 된 거냐고, 솔직하게 말하면 아무 책임도 묻지 않겠다고 했다. 동생은 그 당시 억울하다는 듯 뷰러를 쓸 때 필요해서 가지고 다닌다고 주장했다. 솔직히 믿기진 않았지만 그냥 믿었다. 다만 싸구려 라이터를 바로 쓰레기통에 버려버리고, 편의점에서 새로 라이터를 사다 줬다.
한 두 달 뒤에 술을 먹고 집에 가는 길에 동생에게 사 줄 테니, 집 앞 편의점에 같이 가자고 전화를 했다. 바리바리 사들고 동생과 집에 돌아가는 길, 술김에 동생에게 웃으며 다시 한번 물어봤다. “솔직히 담배 피워? 지금 말하면 진짜 암 말 안 할게. 대신 안 말했다가 나중에 걸리면 난 몰라~”
동생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게 보였다. 누가 봐도 고민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괜히 장난기가 발동해 진짜 마지막 기회라고 솔직하게 말해도 된다며 꼬드겼다. 그러자 동생이 순순히 털어놓았다. 나는 부모님께 걸리지 않게 조심하라고만 말하고, 비밀을 지켰다.
동생의 경우는 사실 많이 어려웠다.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좋은 오빠로 거듭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동생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을까? 담배 같은 경우는 내가 억압해야 하는가? 완전히 방치해야 하는가? 그 마저도 아니라면 어디까지 허용해 주어야 하는가?
담배는 개인의 자유가 맞다. 하지만 내 동생이 핀다면 맘이 편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어느 누가 백해무익한 흡연을 하라고 가족에게 권하겠는가? 실제로 어렸을 때부터 나와 동생은 아빠에게 금연을 외쳤다. 동생이랑 같이 아빠의 담배를 숨기기도 하고, 쓰레기통에 버리고, 몰래 꺾었다. 그러고 나면 항상 손에 구리구리한 담배 냄새가 배어있었다.
아빠가 없어진 담배를 찾을 때마다 우린 모른 척 능청을 떨었고, 들키면 우리는 적반하장으로 외쳤다. “아빠 담배 피지마!!” 그 모습은 흡사 시위대 같았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우리에게 화를 내긴커녕 금연을 하겠다고 말했다. 대신 손에 냄새가 배니까 담배를 만지지 말라고만 했다. 그런 일상이 지속되다 내가 중학생이 됐을 무렵, 아빠는 정말로 금연을 해버렸다. 충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빠가 담배를 끊은 마당에 내가 담배를 필 이유는 전혀 없었고, 담배에 별로 호기심이 가지도 않았다. 애초에 핀다는 생각을 하기만 해도 양심에 찔렸다. 항상 내게 담배를 피우지 않는 이유를 물을 때마다 나는 같은 이유를 댔다. 스물한 살 이후 동생 덕에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주변에 조언을 많이 구하곤 했다. 주변에 담배를 피는 여자애들, 여동생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도. 혼자 생각도 많이 해보았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당시 나는 어렸고, 무엇이 정답인지를 알지 못했다. 그래도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억압하지도 않았고 완전히 방치하지도 않았다. 너무 심하지 않게, 또 부모님한테는 들키지 않게 조심하고, 무슨 일이 있으면 나한테만이라도 알려달라고 말했다.
몇 달이 지난 후 동생이 열아홉이 되었을 때, 결국 부모님께 동생이 들키고 말았다. 나를 화나게 한 것은 그 이후 동생의 태도였다. 반성의 기미는커녕 오히려 억울하다는 태도였고, 너무나도 반항적이었다. 들킨 계기로 고쳤으면 했지만, 태도를 보아하니 절대 그럴 리가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태도에 크게 실망해 동생이랑 말조차도 하기 싫었고 한동안 동생을 각박하게 대했다.
시간이 좀 지나 동생이 내게 다가오려고 계속 노력했다. 노력해서 다가오는 모습을 내칠 정도로 내가 매정하진 않았기에 나도 받아주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각박할 필요가 있었나 싶기도 하다. 내가 아빠한테 동생은 본인을 생각하는 내 마음을 당최 모른다며 투덜거릴 때, 아빠가 내게 해줬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OO 이는 아직 어려. 철이 없을 수도 있어. 지금은 우리의 마음을 이해 못 해줄 수도 있지. 그래도, 시간 지나면 다 알게 될 거야. 하늘이 네가 그랬던 것처럼.”
그 말을 듣고 나서도,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내 마음을 몰라줘. 이제 곧 성인인데 도대체 언제 철이 드는 거야. 언제까지 기다려줘야 하는 거야?’하고 생각했다. 웃긴 이야기지만 나 역시 아직도 어렸다.
가능하다면 동생이 담배를 끊게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도 잘 알았다. 무엇보다도 누가 끊으라고 해서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앞에서 안 피는 시늉만 하고 뒤에서 몰래 피는 상황이 눈 앞에 훤히 그려졌다. 그래서 그냥 내려놓았다. ‘알아서 하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시간은 더 많이 흘러 지금. 나는 성인 발달 연구에 관한 책인 조지 베일런트의 '행복의 조건'을 읽고 있었다. 쭉 읽다가 내면의 성장은 노년이 되어서도 멈추지 않는다는 내용이 나왔다. 우리는 철이 들고 일정 수준에서 멈추는 것이 아닌, 끊임없이 정신적으로 성장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렇기에 한 사람의 삶에서 특정 시기만 훑어보면 안 된다고 적혀있었다. 그야말로 구제불능이던 사람이 훗날 정신적으로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날 수도 있기에.
시간이 지나면 차차 성숙해질 것이라는 희망, 이 희망은 성인 발달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
행복의 조건 - 조지 베일런트
바로 동생 생각이 났다. 물론 구제불능까진 아니지만. 사실은 내 생각이 먼저 났다. 나 역시 짧은 1~2년 사이에 사람이 많이 유순해지고 내적으로 성숙해졌다. 이 글을 부모님도 보시기에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최근까지도 부모님과 트러블이 크게 있었다. 심지어 21살엔 펑펑 울며, 일주일간 집을 나가 기차 타고 발 닿는 곳으로 무작정 떠나기도 했다.
정말 마음을 닫을까 고민하다가도 속으로는 풀고 싶었다. 난 내가 부모님과 자라온 '생애'가 미웠던 것이 아니라 부모님과 트러블이 일어난 그 '순간'이 미웠던 것이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 사실은, 치기 어린 마음에 가려졌을 뿐이었다. 그 캄캄했던 커튼을 쳐준 것은 지나가듯 들은 말 한마디였다.
당시 무슨 주제로 이야기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다만 옆에서 "사람은 100번 잘하고 1번 못하면 욕먹고, 100번 못하다가 1번 잘하면 칭찬받는다. 이 상황이 되게 얄궂다. 그렇기에 우리는 평소에 잘한 사람을 잘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나는 그 말에 100번 동감했다. 주로 내가 전자였다고 생각했다.
한창 열 올리며 동의를 하던 그 순간! 부모님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빠가 금연을 했을 때의 충격 이상이었다. 나는 그토록 열과 성을 다해 내 신념을 주장하면서, 스스로는 지키지도 못하고 있었구나. 100번 잘해주신 부모님이 1번 못해줬다고 마음을 닫고 있었구나. 그 뒤로 바로 울면서 전화를 걸었다.
물론 지금은 너무나도 잘 풀려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지만, 못다 한 말을 이 자리를 빌려 말한다.
주말마다 피곤했을 아빠, 항상 우리 데리고 바다도 많이 보여주고 이곳저곳 구경시켜줘서 고마워. 엄마도 벚꽃 축제든, 유채꽃 축제든 항상 우리 둘 손잡고 예쁜 거 많이 보여줘서 고마워. 같이 봤던 불꽃놀이도, 길거리에서 항상 샀던 솜사탕도 다 너무 소중한 추억이야. 그땐 너무 어려서 뭐가 좋은 지도 잘 몰랐지만, 지금은 그런 추억이 내게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해.
내가 그랬듯 동생도 그러지 못하리란 법은 없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젠가 본인이 스스로 깨닫기 마련이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성숙해진다는 희망은 단순히 책에서 본 내용이지만, 그 책을 읽지 않은 아빠가 과거에 내게 해 준 말 역시 동일했다. 나조차도 이제야 아빠가 해준 말을 깨달았듯, 나는 천천히 동생을 기다릴 예정이다. 시간은 필요한 만큼 걸리는 법이니까. 나는 옆에서 조급해하지 않고, 동생이 원할 때 언제든지 잡을 수 있도록 손을 항상 내밀고 있기만 하면 된다. 나는 동생이 알아서 성숙해질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