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 번째 조력자, Matt를 기억하며
2012년 7월. 나는 생애 첫 직장에 들어갔다.
골드만삭스.
미국 유타주의 오피스, 사모펀드 자산관리팀.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사무직.
그래도 그 이름값 하나만으로, 나에겐 큰 행운이었다.
문제는, 입사 후였다.
유학을 4년이나 했지만, 영어는 여전히 불편했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문제는 영어가 아니라
애초에 '언어 구사력' 자체가 부족했다는 데 있었다.
어릴 땐 글을 잘 썼다.
독후감, 일기, 문학상... 뭐든 상을 휩쓸었다.
“영웅이 되고 외톨이가 된 것은 그의 의지였을까,
아니면 타인의 선택이었을까.”
최우수상을 받았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독후감의 첫 문장이었다.
겨우 초딩이 어른 흉내 내고 싶었던 거겠지.
하지만 중학생이 되자 활자가 싫어졌다.
그 뒤로는 단 한 권, 중2 때 읽은 『오체불만족』이
내가 자발적으로 끝까지 읽은 유일한 책이다.
이유는 없다. 그냥 싫어졌다.
이후로는 오직 ‘필요에 따라’ 읽었다.
그래서였을까. 회사에서도 말이 적었다.
무식한 데 영어까지 느리니,
말수가 줄 수밖에 없었다.
요즘 말로 치면 ‘파워 I’.
내 모습은 그저 조용한, 평범 이하의 신입.
입사 3개월쯤 지나, 내 사수가 정해졌다.
Matt.
키는 작고 수염이 있었고, 두 아들의 아빠였던 사람.
Matt는 조용히 있는 나에게 자주 말을 걸어줬고,
모르는 업무는 꼼꼼히 설명해줬다.
칼 같은 기준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진심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엑셀 실력은 거의 예술이었다.
마우스 없이 키보드로만 모든 걸 처리하던 모습.
마치 엑셀의 피아니스트 같았다.
그는 내게 선물 같은 사람이었다.
그때부터 일이 조금씩 재미있어졌다.
나도 엑셀계의 키보드 워리어가 되어갔고,
능률이 오르자 자신감도 붙었다.
회의에서 내 발언 비중은
0.001%에서 1%.
보잘것없지만, 1000배나 개선된 셈이다.
아주 작은 변화였지만,
나에겐 결정적인 전환이었다.
이후 나의 발언 비중은 5%,
그리고 최대 10%까지 늘었다.
1년 뒤, Matt는 회사를 떠났다.
그 이름도, 얼굴도 점점 잊혀져 갔다.
그리고 13년이 지난 어느 날,
삼성금융에서 교육생 40명을 대상으로 강의했다.
주제는 ‘기획자 생존법’.
그중 내가 강조한 '협업의 세 가지 원칙' 가운데,
제1원칙은 이것이었다.
반드시 조력자를 만들 것.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문득 생각했다.
'내가 처음 만난 조력자는 누구였지?'
그 순간 Matt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아이 둘이 있는 핸드폰 배경화면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던 그의 모습.
그 모든 기억이, 선물처럼 돌아왔다.
세상엔 인복 많은 사람들이 있다.
어딜 가든, 무엇을 하든,
조건 없이 도와주는 사람들이 따라붙는 사람들.
그건 능력이다. 타고나는 성향이기도 하고.
나는 내가 가진 부족함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력자를 끌어당기는 힘은 있는 것 같다.
어쩌면 그게,
내가 가진 가장 강력한,
그리고 유일한 능력일지도 모르겠다.
Matt가 이 글을 볼 가능성은 없다.
앞으로 다시 만날 일도,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진심을 담아 전해본다.
고마웠다고.
그때 나에게 힘이 되어줘서.
그래서, 내가 버틸 수 있었다고.
기회는 스펙이 아닌 사람에게서 온다.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의 기회를 만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당신의 첫 조력자는 누구였나요?
그리고 당신은, 누군가의 Matt가 되어본 적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