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다니는 비어소믈리에의 이중생활
어릴 적부터 교회는 늘 내 일상 안에 있었다.
모태신앙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유년기부터 시작된 교회 생활 덕분에
사람 관계든, 생활 습관이든 그 안에서 비롯된 것들이 참 많다.
신실한 신앙인이냐고 묻는다면 글쎄…
그래도 주일에 교회를 안 가면 뭔가 찜찜한 마음이 드는 정도의 크리스천이긴 하다.
그래서일까, 내가 맥주 공부를 시작했다고 했을 때
한 사람이 이렇게 물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 맥주 공부를…?”
대개는 뒤에서 말할 법한 이야기를 정면에서 들으니 순간 준비된 말이 없었다.
그냥 “그러게요~” 하고 웃으며 넘겼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한 번쯤 생각해봤다.
나중에 또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왜 개신교는 술에 대해 이렇게 엄격할까.
천주교 신부님은 펍에서 맥주 한 잔 하시는 것도 이상하지 않던데.
알고 보면 종교개혁자 루터의 아내, 카타리나는 직접 맥주를 만들던 사람이었다.
당시 독일 여성들에게 맥주 양조는 빵 굽기처럼 자연스러운 집안일 중 하나였고,
초기 개신교 역시 술을 죄로 보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보면 18-19세기 미국의 금주법에 의해 개신교는 금주에 대해 철저히 금지시키고, 그 흐름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술 자체에 대핸 부정이기 보다 술을 과도하게 마셨을 때 생길 수 있는 부정적인 행동들 나아가서는 범죄 이런거에 대한 철저한 예방차원의 행위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단지 술을 마시는 사람이 아니라, 맥주를 공부하는 사람이다.
누군가 나를 크리스찬의 프레임으로 묶어 그 ‘행위’를 평가하려 든다면,
그럴수록 나는 더 또렷한 태도와 자세로 내가 맥주를 대하는 방식을 보여줄 것이다.
함께 나누는 맥주 한잔이든, 혼자 하는 테이스팅이든, 나는 처음과 끝이 같은 사람이고 싶다.
말, 행동, 표정, 그리고 눈빛까지 흐트러짐 없이.
그게 생각보다 쉽진 않다.
어느 토요일, 맥주 공부를 함께했던 동기들과 모인 자리. 유럽을 여행하고 온 친구들이 각자 사 온 기념품을 건넸다. 작고 귀여운 맥주 브랜드 병따개 열쇠고리들.
어디서 쓰기보다, 그냥 가지고 있기만 해도 흐뭇했다.
그날 밤, 나는 그것들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잊었고, 다음 날 교회에 그 옷 그대로 입고 갔다.
예배 도중 핸드폰 진동이 울려, 무심코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우르르— 병따개 여러 개가 함께 쏟아져 나왔다.
순간 정적. 그리고 속으로 ‘으악…’
그래. 이런 건 좀 조심할 필요가 있다.
맥주 공부를 한다고 해서 내 신앙이 흔들리는 건 아니다.
누가 나를 ‘신자면서 술 마시는 사람’으로만 보더라도 나는 나 나름의 태도와 기준이 있다.
그리고 여전히 이 분야를 더 깊이 배우고 싶고, 좋은 방식으로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내가 술을 공부한다고 해서 내 믿음까지 평가받는 건 좀 억울하다.
그보다는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한 거 아닐까 싶다.
이 글은 브런치북 시리즈 「나는 비어소믈리에가 되기로 했다」 중
8편 / 교회 다니는 사람이 술을 공부한다고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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