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는 엄마를 통해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

아이 앞에서는 물도 조심스럽게 마십니다

by AGING WELL

되멘스 수업을 들은 지 이틀쯤 되었을까.
독일에서 온 선생님이 수업 중에 이런 이야기를 했다.

맥주 감각을 익히기 위해 열심히 연습하던 초창기,
토요일 아침부터 남편과 테이스팅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본 딸아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엄마는 워커홀릭이고, 아빠는 알코홀릭이야!”


토요일 아침부터 맥주를 마시는 엄마에게 ‘워커홀릭’이라 말할 수 있었던 건,
그 말 안에 엄마의 태도와 삶을 대하는 자세가 이미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조용히 생각했다.


‘이 선생님은 평소에 딸에게 참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줬겠구나.’


사실 나도 그랬다.

두 아이를 키우며 스스로에게 세운 원칙 중 하나는 아이들 앞에서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남편에게 강요한 적은 없지만, 그 역시 자연스럽게 그 원칙을 따라줬다.

아이들이 잠든 뒤, 기다렸다는 듯이 따르는 맥주 한 잔의 첫 모금.
그건 하루의 끝에서 가장 선명한 순간이기도 했다.


그러다 맥주를 공부하게 되면서, 그 원칙은 조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이들 재우고 나면 너무 늦은 시간. 공부는 쌓이는데 체력은 한계.
결국 테이스팅 연습은 아이들이 깨어 있는 시간으로 옮겨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KakaoTalk_20250530_132822493.jpg 시험을 앞두고는 어쩔 수 없다. 사진 기록을 보니 오후 1시. 바깥 유리창 햇살이 시간을 말해준다.


그럴 때 나 스스로 정한 새로운 원칙이 있다.


‘마시는 것이 아니라, 테이스팅한다’는 태도다.

잔을 돌려 아로마를 확인하고, 색을 보고, 거품의 유지력을 보고,
입 안에 머금고 향의 변화를 설명한다.

이 과정을 아이들도 보고 듣는다.

그런 절차가 있으면,
적어도 아이들은 이렇게 받아들인다.

“엄마는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맥주를 공부하고 있구나.”


어느 날, 큰아이가 내 테이스팅 잔으로 물을 마시겠다고 했다.
그래 보라고 하니,
정수기에서 물을 받은 뒤 한 바퀴 휘저어 잔을 돌리고, 냄새를 맡고, 물 한 모금을 조심스럽게 마셨다.

그걸 보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아… 이래서 아이 앞에선 물도 함부로 마시지 말라는 말이 나오는 거구나.”


그날 이후, 아이들 앞에서 테이스팅을 하게 될 때면 자세를 바르게 하고, 더 성실하게 향을 찾는다.
그 모습이 또 하나의 교육이라면, 나는 조금 더 정돈된 사람이 되어야 하니까.



지난 겨울, 내 생일이 다가왔다.
남편이 물었다.
“어디 가고 싶어? 근사한 레스토랑? 일식? 한정식?”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평소에 가고 싶었던 독일 맥주 펍이 있어.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가 케그로도 나오거든.
병으로는 마셔봤는데, 생맥주 맛이 너무 궁금했어. 음식도 아이들과 먹기 괜찮은 메뉴더라고.”


펍에 미리 연락해 아이 동반이 가능한지 확인했고, 온 가족이 함께 그곳에 갔다.
병맥주로는 느낄 수 없었던 케그 맥주의 신선한 맛이 정말 좋았다.


그러다 큰아이가 물었다.
“엄마, 나도 맥주 냄새 맡아봐도 돼요?”

“그럼, 한번 맡아봐.”

“엄마, 이건 바나나 향이 나요!”

정확했다.
효모에서 나는 에스테르 향.



바나나처럼 느껴지는 이 스타일을 나는 훈련으로 배웠고, 아이는 직감으로 알아챘다.

자신감을 얻은 아이는 옆에 있는 잔도 시도했다.
“이건 잘 모르겠는데… 포도 같긴 한데, 완전 포도는 아닌 것 같아.”

건자두, 건포도 계열의 향이 나는 맥주였다.
틀린 것도 아니었다.



다시, 이 질문으로 돌아온다


“술 마시는 엄마를 통해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

정답은 아직 모른다.
아마 시간이 더 지나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 아이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의 직업은 뭐라고 생각해?”

그랬더니 큰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기후변화 박사님이셨는데,
지금은 맥주 공부하시고,
맥주로 높은 사람 되려고 계속 노력하시는 분.”


나는 그 말에 피식 웃었고, 한편으로는 생각했다.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



이 글은 브런치북 시리즈 「나는 비어소믈리에가 되기로 했다」 중

7편 / 술 마시는 엄마를 통해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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