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안 되지만, 감각은 자라나는 일
가끔 주변 사람들에게 조심스럽게 말한다.
“나, 사실 몇 년 전부터 맥주 공부를 시작했어.”
그럴 때마다 놀랍도록 비슷한 반응이 돌아온다.
첫 번째는 감탄이다.
“멋지다”, “역시 너답다”, “그렇게 맥주 좋아하더니 비어소믈리에라니!”
“마시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공부까지?”
이런 말들은 대개 놀라움과 대견함, 이해 못 하겠다는 농담까지, 긍정과 부정의 감탄이 뒤섞여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번째 질문.
“그래서… 얼마 벌어?”
사실 첫 번째 감탄은 이 두 번째 질문을 위한 빌드업 같기도 하다.
‘유학파 박사가 비어소믈리에를 한다니, 혹시 예전보다 더 벌게 된 건가?’
혹은 정말 순수한 호기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어딘가 조금 불편하다.
관심이 고마우면서도, 마음이 살짝 어긋나는 기분이다.
물론, 나도 남의 수입이 궁금한 적 없다고는 못 한다.
그래서 이해도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비어소믈리에는 돈을 버는 직업이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오히려 돈을 쓰고 있는 셈이다.
종종 국내외 맥주 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초대받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보수’는 없다.
식사나 간단한 선물, 숙소 제공 정도가 전부다.
심지어 어떤 경우엔 항공편도 자비로 마련해야 하고,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스스로 시간을 비우고, 비용까지 들여가며 현장에 가야 하는 상황도 많다.
드물게 기업에서 신제품 테스트를 위해 마련한 품평회처럼 정식 심사료가 나오는 자리는 정말 예외적이다.
그래서 늘 이렇게 생각한다.
‘만약 내가 가족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이라면, 이 길은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지인들은 또 공통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럼 돈도 못 버는데 왜 해?”
정말 왜일까. 나도 가끔 나에게 묻는다.
아마 그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진심으로
‘내 능력을 발전시키고 싶다’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나는 Doemens, Cicerone, BJCP라는 각기 다른 출발점과 성격을 가진 자격증들을 차례로 도전해왔다.
지식을 넘어서 감각을 훈련하고, 국제적인 기준에 내 감각과 언어를 맞춰보는 과정은
나만의 타이틀을 하나씩 쌓아가는 여정이었다.
그건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이 길을 제대로 걸어보고 싶다’는 순전한 욕망에서 시작된 공부였다.
비어소믈리에는 '직업'이라기보다는 나를 설명해주는 하나의 ‘캐릭터’다.
요즘 말로 하자면, 부캐.
나는 전업주부로 살아가면서, 이 부캐를 조금씩 성장시키고 있는 셈이다.
모든 업계가 그렇듯, 부캐라도 무기를 제대로 갖추면 그 업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비록 나는 업계 사람이 아니지만, 공부를 시작한 이후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심사 현장에서, 주류 박람회에서, 커뮤니티에서.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업계의 인력 풀은 그렇게 크지 않다.
조금만 노력해도 눈에 띌 수 있고, 그만큼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존재감이 생긴다.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이 부캐를 앞으로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까.
이 방향이 맞을까, 더 다른 길은 없을까.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면 내 생각이 정리된다.
뿌옇던 현실에서 맑은 판단이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어떤 방향이든, ‘맛을 구분할 수 있는 감각’,
소믈리에로서의 실력은 내 안에서 반드시 발전해야 할 능력이라는 것.
그리고 요즘은 종종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게 된다.
‘언젠가 정말 이 세계에 뛰어들게 된다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
아직은 준비하는 중이다.
어떤 자리든, 어떤 형태든,
맥주와 사람 사이를 잇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내 안에서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지금은 그저 나만의 속도로 감각을 훈련하고, 생각을 정리하며,
내게 가장 잘 맞는 무대와 시기를 기다리는 시간일 뿐이다.
머지않아 이 업계에서,
조금은 다른 결로 움직이는 비어소믈리에로 내 이름을 꺼내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 시작을 나는 가슴 떨리게 기다리고 있다.
이 글은 브런치북 시리즈 「나는 비어소믈리에가 되기로 했다」 중
6편 / 비어소믈리에로 산다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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