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스팅이라는 핑계
내 인생 첫 낮술은 공부가 아니었다.
신혼여행 중이었다. 캐러비안 해변, 파라솔 아래.
그늘 한 조각 아래서 마신 맥주 한 잔. 그게 첫 낮술의 기억이다.
그 전까지 나는 꽤 절제된 음주 생활을 했다.
유학 시절, ‘불금’만 기다리며 일주일에 한 번 치킨이나 피자에 맥주 한 잔—그게 나의 전부였다.
그런데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마신 맥주 한 잔은 말 그대로 천국이었다.
소금기 섞인 바람, 뜨겁게 달아오른 피부 위로 스며드는 차가운 목 넘김.
하지만 그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갈증은 오히려 더해졌고, 나른하게 풀린 몸은 오후 컨디션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그 뒤로 나는 낮술을 멀리하게 됐다.
‘낮에는 안 마시는 걸로’—그게 내 결론이었다.
그런 내가 다시 낮술을 시작하게 된 건, 되멘스 비어소믈리에 수업을 들으면서였다.
아침 9시에 시작해서 저녁 6시까지 이어지는 강도 높은 수업.
그 안에서 테이스팅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정말로 아침 9시부터 맥주를 테이스팅해야 했다.
이토록 맑고 상쾌한 오전에 맥주를 입에 머금는다는 것 자체가 낯설었고,
어쩐지 내 몸에 미안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침의 감각은 놀라울 정도로 예민했다.
모든 향과 맛이 또렷하게 구별되었고,
저녁보다 훨씬 더 분석적으로, 진지하게 맥주를 바라보게 되었다.
밤에는 즐기는 술이 되던 맥주가, 낮에는 철저히 ‘공부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도 그걸 안다.
내가 가족외식 자리에서 큰 맥주잔에 맥주를 따르면,
그건 마치 햄버거에 콜라 마시는 것처럼 그냥 지나간다.
그런데 집에서 테이스팅 잔에 맥주를 따르면,
아이들은 꼭 달려와서 자기도 냄새를 맡아보겠다고 한다.
“엄마, 이건 꽃향기야.”
“나는 바나나 같아.”
한두 번 맞춘 경험이 생기자 점점 자신감 있게 의견도 낸다.
그만큼 테이스팅이라는 행위에는 무언의 ‘공부 분위기’가 있다.
가끔은 그런 공부 분위기를 이용해 내가 맥주를 마시는 걸 정당화하고 싶은 때도 있었다.
아마 아이들 앞에서 자꾸 맥주를 마시는 게 스스로 민망했기 때문일 것이다.
테이스팅 잔에 살짝 따라놓고, 공부하는 척 하며 한 모금.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마시면 맥주 맛이 없다.
정식 맥주잔에 따르면 끝까지 비워내지만,
테이스팅 잔에 따르면 테이스팅만 하고 끝난다.
심지어 바로 옆에 준비해둔 바스켓에 버려버리기도 한다.
같은 맥주라도 잔이 바뀌면 맛도, 태도도, 마시는 사람의 자세도 달라진다.
지금도 나는 한 달에 한 번, 함께 맥주를 공부한 지인들과
주말 낮에 정기적인 테이스팅 모임을 갖는다.
이제는 제법 가까운 인생의 동료가 된 사람들.
어떤 이는 대회를 준비하고, 어떤 이는 감각을 유지하려는 목적이지만
공통점이 있다면—모두 진지하게, 그리고 낮에 만난다는 점이다.
우리는 가능한 한 다양한 스타일의 맥주를 구입해서
한 자리에서 집중적으로 테이스팅하고 비교한다.
종류는 많고, 테이스팅 후엔 대부분 버리기 때문에 지불한 비용은 꽤 크지만
그 어떤 자리보다 밀도 높은 공부가 된다.
낮의 테이스팅은 그만큼 집중도가 높고, 감각은 섬세하다.
우리 남매가 “엄마는 왜 낮술을 마셔?”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그건 술이 아니라, 테이스팅이야.”
하지만 그 진지한 테이스팅이 끝난 후,
잔에 남은 한 모금은 종종 진짜 낮술보다 더 달콤하다.
여름은 낮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해주는 계절이다.
테이스팅이라는 이름 아래,
나는 맥주를 마시고, 감각을 훈련하며,
하루의 한가운데에 잠시 멈춰 서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 아이들도 알게 되겠지.
그 테이스팅 잔 하나에, 엄마의 진심과 태도,
그리고 맥주를 향한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