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전 육아휴직, 복직할 때 평판을 생각하라

편견과 평판에 맞설 수 있을까

by 뚜루

나는 일명 공노비, 공기업 직원이다.


내가 공기업을 처음 알게 된 건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우리 학과에서 가장 예쁘고 똑 부러지는 동기가 그랬다.

"우리 언니가 그러는데 공기업이 좋대.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공기업으로 가래"


공기업?

똑 부러지는 친구가 공기업이 좋다고 하니 줏대 없던 내 마음속 리스트에 공기업을 저장시켰다.


그리고 진지하게 취업을 고민할 무렵, 공기업 체험형 인턴을 운 좋게 합격하였다.

인턴을 하면서 보았던 공기업 문화와 직원들의 근무환경은 꽤나 매력적이었다.

유연근무제로 9-16시에만 근무하는 과장님, 아이 한 명당 3년의 기간을 부여하는 육아휴직제도,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한 근무조건이 나를 공기업의 세계로 이끌었다.


그렇게 나는 공기업만을 바라보고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의 시간을 지나고 있을 때 비로소 현재 재직 중인 회사에 최종합격했다.


근무한 지 만 4년이 될 무렵 임신을 알게 되었다. 남편 다음으로 나의 임신을 알게 된 사람은 뜬금없게도 팀장님이었다. 임산부는 2시간의 단축근무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빨리 알리는 것이 이득이었다.

때는 7월. 상반기를 마무리하고 하반기를 시작할 무렵이었다.


팀장님의 당황한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팀장님은 잠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지금 바쁜 시기인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나는 '나의 임신을 반기는 사람은 여기 아무도 없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씁쓸한 공기를 마셨다.

우리 부서는 나를 제외하고 모두 남성이었기 때문에 나의 상황을 진심으로 공감해 주기 어려울 것이라 짐작은 했지만 막상 현실이 되니 나는 또 한 번 동료들에게, 아기에게 죄인이 되었다.


비록 임신 15주까지였지만 사무실의 삭막한 공간에서 2시간 일찍 해방되는 것은 정말 기분 좋았다.

그렇지만 이상하리만큼 나에게 집중된 업무분장과 많은 업무량으로 매일 집으로 일거리를 가지고 왔고

나는 밤 10시가 되어서야 일을 끝내는 이상한 나날들을 보냈다.


사실 나는 예전부터 이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다.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채찍질하듯 일을 쌓아주고 일을 안 하려는 사람들은 정작 아무 생각 없이 놀고 있는 이 구조가 정말이지 지긋지긋했다. 나는 불행히도 전자에 속하는 책임감 빼면 시체인 인간이었다.


어느 날, 몸에 문제가 생겼다. 토요일 저녁에는 두려워서 잠을 못 잤고 일요일은 소름이 끼치도록 싫었다. 내일 회사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아침부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대로는 미치겠다 싶어 일요일에도 여는 상담센터를 급히 예약했다.

심리 검사 결과는 극심한 우울증. 위험하다고 했다. 상담 선생님은 당장 일을 그만두는 게 어떠냐고 조언했다.


나를 살리기 위해 일을 쉬기로 산전 육아휴직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팀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팀장님은 한껏 긴장한 채 회의실로 들어오셨다. 육아휴직을 하겠다는 나의 말에 팀장님은 작은 한숨을 쉬었다. 나에게 들리지 않을 거라 생각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적막 속 한숨은 내 귀 옆에 들리는 태풍 같았다. 위축됐다.


부서장의 전화 호출이 있었다. "김대리 내 방으로."

부서장은 내게 아직 출산도 한참인데 왜 육아휴직을 하려는지, 지금 내가 맡고 있는 것들은 어떻게 할 건지, 책임감이 없다는 말을 속사포처럼 내뱉었다. 나에게는 어떠한 질문에도 대답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러고는 나중에 복직하면 너에게 따라다닐 평판을 잘 생각해 보라고 했다.


나는 책임감이 없다는 말을 처음 들어보았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잘못했길래 미워하는지, 그동안 얼마나 내가 맡은 역할을 끝까지 해내려고 노력해 왔는지 알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분해서 화장실에서 눈물을 훔쳤다.

사실 그는 나를 처음부터 탐탁지 않아 했다. 과장을 원했던 자리에 대리인 내가 지원했다는 이유였을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인지 산전 육아휴직을 결심한 이후 나는 서서히 괜찮아졌다.

일은 여전히 많았지만 굵직한 일들은 모두 마무리되었고 팀 내 인력이 충원되었다. 바쁜 시기가 지나가고 있었다.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자 나는 산전 육아휴직을 철회했다. 힘들었지만 태어날 아기와 시간을 더 보내기 위해 버텼다.


그러나 아직도 부서장의 말이 마음속 상처로 남았다.

결과는 그가 원하는 대로 육아휴직을 하지 않았지만,

만약 산전 육아휴직을 했다면 내 평판은 어떻게 됐을까?


정답은 명확하다. 내 평판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묵묵히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고 나를 잘 아는 사람은 나라는 것. 나는 결코 그가 말하는 책임감 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사람들은 남에게 관심이 없고 내가 어떤 이유로 휴직을 했든 어떤 험담으로 나를 깎아내리든 그저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


극심한 회사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을 버틴 나와 아기가 대견하다.


오늘도 어디선가 고군분투하고 있을 워킹맘 임산부들에게 작은 위로와 응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