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여쁜 가을의 빛깔을 닮아 가요(3)
나뭇잎 탁본 뜨기
오전 나들이때 주워온 나뭇잎들을 주섬주섬 챙기고 있자니 슬슬 몇몇의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주변으로 다가왔다. 교사가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재밌는 일을 시작하게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녀석들이다. 아이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조금 과장된 몸짓으로 재미있는 일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렸다.
“우리 이거 탁본해서 교실을 예쁘게 꾸며볼까?”
아이들에게 교실이 예뻐지는 것이 무슨 큰 관심이겠는가마는 도대체 나들이때 주운 나뭇잎으로 어떤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질지 그것이 궁금했을 것이다. 도화지와 네모크레용을 챙겨 들고 책상 앞에 앉았다. 우리 터전에서는 아이들의 미술활동을 위해 네모크레용을 활용한다. 일반 크레파스와는 달리 색이 은은하고 재질이 밀랍이라 은근한 향이 나기도 한다. 스틱형이 아닌 직사각 모양이라 아직 소근육 발달이 안된 아이들이 네 손가락으로 잡고 색을 칠하기에 매우 적당하다. 이러한 모양의 장점은 단번에 도화지를 채울 수 있다는 것인데 스틱형은 온 힘을 다해 한참을 칠해 주어야 도화지를 채울 수 있지만 네모크레용은 쓱쓱 문지르면 금방 도화지를 채울 수 있다. 물론 이것도 조금 능숙해져야 가능한 일이기는 하다. 특히 탁본할 때 네모크레용의 장점이 빛을 발한다. 네모크레용은 각각의 색이 자연스럽게 잘 섞이는 데 색감이 과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네모크레용으로 색을 칠하며 놀다 보면 자연스럽게 노랑과 파랑이 섞여 초록이 되는 것을 경험한다. 따로 가르치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 체험한 것들이다 보니 절대로 잊지 않아서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 아이들을 보고 미술영재인가 한다.
아이들은 내 주변으로 모여 앉아 먼저 내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았다. 도화지를 반으로 접어 나뭇잎을 그 사이에 넣어주고 덮은 면에 제일 먼저 노란색 네모크레용으로 가볍게 쓱 문질러 보았다. 노란색은 언뜻 보면 잘 보이지 않아서 대충 나뭇잎이 드러나는 정도만 알 수 있는데 그것만 보고도 아이들은 ‘와~’ 감탄사를 터뜨리며 신기해한다. 노란색으로 바탕을 칠해주고 다음은 파란색 네모크레용을 들고 또 문질러 보았다. 그러자 세밀한 잎맥의 표현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잎은 초록색으로 변해가고, 거미줄 같은 잎맥들이 하나하나 드러나니 아이들은 이제 스스로 해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서로 자기가 먼저 해보겠다는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한 명 한 명 도화지를 접어서 나뭇잎을 끼워주었다. 아이들은 교사가 했던 것처럼 노란색을 먼저 들어 칠해보고 파란색을 또 들어 칠해보았다. 자신이 해도 비슷하게 표현되는 나뭇잎을 보며 매우 신기해했다. 한 번 해본 아이들은 다른 나뭇잎은 어떤 모양이 나오는지 궁금해 재빨리 다른 나뭇잎을 들었다. 어떤 아이들은 빨간색을 들어 칠해보는 아이도 있었다. 분명 단풍잎의 색은 붉었기 때문에 흉내 내 보려 그 색을 선택해보았을 것이다. 붉은색 나뭇잎 위에 내가 노란색으로 한 번 더 해보라고 노란색 크레용을 쥐어주니 아이도 궁금해하며 노란색을 칠해보았다. 느티나무 잎처럼 주홍으로 물든 잎이 근사하게 표현되었다. 좀 더 과감한 아이는 세 가지 색을 모두 섞어서 칠해보기도 했다. 세 가지 색을 섞으면 이론상으로는 검은색이 나올 터이지만 구석구석 색을 칠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노랑, 빨강, 파랑이 은은히 존재감을 드러내며 또 다른 아름다운 빛깔을 선사해주었다. 어찌나 멋졌는지 다른 아이들도 너도 나도 세 가지 색을 다 섞어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단순하게 본다면 똑같은 나뭇잎에 똑같은 색을 섞은 것이지만 아이들마다 개성 넘치는 탁본들이 만들어졌다. 알록달록 멋진 나뭇잎들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해서 먼저 끝낸 7살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그려놓은 탁본을 이파리 모양대로 잘라보라고 했다. 스스로 마음에 드는 작품은 집에 가져가도 되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한 녀석이 집에 가져가겠다고 하면 너도 나도 가져가겠다고 해서 곤란해지기도 하지만 집에 가서 우쭐대며 자랑할 녀석들의 기고만장한 얼굴들이 떠올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한 개씩만 가져가 보라고 하고 나머지는 교실을 꾸며보자고 했다. 무엇이든 집에 가져가고 싶어 하는 열망이 강한 아이는 내일 나뭇잎을 더 주워와서 또 탁본을 하겠다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그런 계획은 두 손 들어 환영이다. 내일 그려놓은 탁본은 오늘보다 더 멋질 것이기 때문이다. 가을 낙엽들이 말라서 바스러지기 전까지 탁본은 계속해도 좋다. 크레용을 스윽 문지르기만 하면 멋진 작품들이 만들어지는데 얼마나 매력적인 활동인가 말이다. 겨울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교실 장식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