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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Dec 09. 2022

놀이는 마당에서 시작된다(2)

우리 놀이

 김장이 얼마 안 남았다. 터전에서는 매년 아이들, 부모조합원과 함께 김장을 하는데 김장을 할 때마다 아이들의 역할이 매우 크다. 부모들은 3일에 걸쳐 배추를 가르고 절이는 조, 절임배추를 뒤집고 물을 빼고 양념거리를 다듬는 조, 마지막 양념을 버무리는 조로 나누어 희망하는 날 일손을 거들고 간다. 하지만 그전에 마늘을 까고, 양파 껍질을 벗기고, 파를 다듬는 일 등은 아이들의 일이다. 작은 손으로 아이들이 해봐야 얼마나 하겠냐 싶지마는 아이들은 생각보다 잘하고, 작은 손이지만 거드는 손이 많아질수록 일의 속도는 빨라진다. 이를테면 인해전술이라고나 할까. 일상에서 하는 생활 노동의 대부분이 아이들의 도움 없이는 빨리 끝낼 수 없다. 지금이야 아이들 수가 많이 줄어 김장의 양도 줄었지만 예전엔 200포기 정도의 김장을 할 때는 까야하는 마늘도 엄청 나서 아이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교사들 힘으로는 엄두도 못 낼 정도였다.   

   

 오늘도 아이들은 마당에서 놀기를 희망해서 내 입장에서는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김장하는 날에 맞춰 채소들을 다듬어놓아야 하는데 마당에서 놀면 아이들을 보면서 그런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교사가 일을 하면 옆에 와서 함께 돕는 아이들이 꼭 있기 마련이라 살짝 기대하는 마음으로 일거리들을 마당에 펼쳐놓았다. 역시나 마음 여린 아율이가 내 옆으로 와서 마늘 까는 일을 거들었다.      


 “아율이 때문에 금방 까겠네. 열 개만 까고 가서 놀아~”     


 내 입장에서는 내내 도와주는 게 고마운 일이지만 일이 공평해지도록 한 아이만 계속 일을 하게 두지는 않는다. 어차피 김장을 해놓으면 모든 아이들이 맛있게 먹을 것이기 때문에 모두 한 번씩은 일손을 거들게 해야 공평할 것 같기 때문이다. 이럴 땐 근방에 얼씬도 하지 않는 재우 같은 녀석들을 불러서 일을 시켜야 한다.     


 “재우~, 와서 마늘 열 개만 까고 가! 안 그럼 너 김치 못 먹는다~.”     


 말은 안 들어도 먹성은 매우 좋은 녀석이라 무얼 못 먹는다는 말이 가장 무서운 아이이다. 재우는 결국 마늘 열 개를 까고 거기에 몇 개를 더 깐 다음에야 다시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     


 재우가 마늘을 얼른 까기 위해 엉덩이까지 들썩이며 마음이 바빴던 이유는 줄넘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근래 아이들 사이에 긴 줄넘기 바람이 불어 아이들이 나들이도 안 가고 매일 마당으로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직 혼자서 줄을 돌리고 넘는 것은 어려워서 양 옆에서 친구들이 긴 줄을 잡고 돌려주는데 줄넘기를 하려는 아이가 줄넘기가 넘어가는 박자에 맞춰 두 발로 뛰어넘는다. 아이에 따라서 ‘꼬마야, 꼬마야’에 맞춰 줄을 넘기도 하고, ‘하나, 두울, 세엣, 네엣’ 하며 숫자를 세며 넘는 아이도 있다. ‘꼬마야, 꼬마야’에 맞추려면 가사의 지시사항에 따라야 하는 미션이 있는데, 아이들마다 가사 속 미션을 즐겁게 수행하는 아이도 있고 줄이 다가오는 걸 겨우 넘기는 아이도 있어 아이들 기량마다 줄넘기를 하는 방법이 다를 수밖에 없다. 대근육 발달이 굉장히 빨라서 온 몸에 운동신경을 타고난 아이들도 더러 있는데 그런 아이는 5살 무렵부터 혼자서 줄넘기를 하기도 하지만 주로 줄넘기를 하려면 7살은 되어야 수월하게 할 수 있다. 그럴 때 보면 나이는 허투루 먹는 것이 아니구나 싶다. 줄을 넘는 행위가 의외로 박자 감각이 필요한 일인데 그것 또한 절로 생기진 않기 때문이다. 동생들은 형님들이 줄넘기를 하면 옆에서 지켜보며 언젠간 자신들도 저 줄을 넘을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줄넘기에 흥미가 없는(또는 서툰) 아이들은 구슬 바구니를 들었다. 며칠 전 개똥이(교사 별명)가 마당 한쪽에 구멍을 파놓았던 것이 기억이 나서 그 구멍을 찾아보았다. 구멍에 낙엽이 쌓여있긴 했지만 치우고 보니 아직 메꿔지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아이들은 모래놀이용 숟가락을 들고 구멍을 조금 더 파내고는 교사에게 와서 동그라미를 그려 달랜다. 아직 동그라미까지는 그리는 것은 어려웠던 모양이다. 아이들 팔 길이보다 더 긴 지름의 원을 만드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아 작은 막대기를 찾아들고 자세를 잡았다.

     

 “여기 구멍에 발 대고 가만히 있어야 돼~”     


 구멍을 중심축으로 하여 아이보고 똑바로 서 있도록 하고 그 아이와 손을 잡고 내 팔 길이만큼 넓게 돌면서 원을 만들었다. 아이들 걸음으로 세발자국 정도 되는 길이의 반지름인 원이었다. 원 바깥으로 구슬치기를 하고 싶은 아이들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 놀이는 이렇게 각자 정한 자리에서 구슬을 굴려 가운데 파놓은 구멍으로 구슬을 넣는 놀이다. 가위바위보로 선공을 정하고 순서대로 구슬을 굴리되 구멍에 들어가지 않은 구슬은 그대로 두었다가 구멍에 구슬을 넣은 아이가 모두 가져가는 것이다. 단순한 놀이이지만 아슬아슬하게 구슬이 들어가지 않는다거나 서너 바퀴를 돌아도 아무도 넣지 못하다가 한방에 그 많은 구슬을 따는 아이가 나오거나 할 때는 월드컵 16강 진출의 기쁨에 비할바가 아닌 놀이이기도 하다.

 몇 주 전 졸업생 캠프에 온 졸업생 아이들과도 이 구슬치기를 하며 놀아보았는데 다 큰 아이들도, 심지어 부모들까지도 매우 흥미진진하게 놀았었다. 어쩌면 우리 터전을 졸업한 아이들은 ‘우리 그때 구슬치기하고 놀았잖아.’하며 추억할 놀이 중 하나이다. 구슬치기도 긴 줄넘기도 아이들 놀이의 시작은 분명 이 마당이다.

      

 우리는 이 마당에서 다양한 놀이를 한다. 줄넘기, 구슬치기는 말할 것도 없고 사방치기를 하기도 하고, 달팽이 놀이를 하기도 한다. 콩주머니 던지기 놀이도 하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도 한다. 우리는 이러한 놀이를 전래놀이라기보다는 우리 놀이라고 한다. 전래놀이라고 하기엔 역사가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고 우리 고유의 놀이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릴 적 모두가 했던 놀이이고 우리식으로 우리가 즐기고 있으니 굳이 명명하자면 우리 놀이가 맞을 것 같아서 공동육아 교사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놀이를 우리 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놀이들은 아이들 스스로는 전승해주기 쉽지 않다. 이런 놀이를 교사가 기억해서 아이들이 잘 놀 수 있도록 계획하고 함께 놀아야 한다. 

 이러한 놀이는 모두 함께 같이 하는 놀이이기 때문에 혼자서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 어쩌면 정해진 규칙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좀 더 공평하게 놀 수 있기도 하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서 혼자서 하는 것보다 모두 함께 했을 때 더욱 놀이가 즐겁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규칙을 지키며 노는 것이 훨씬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꼭 규칙만을 강요하지 않을 때도 있어 어쩔 땐 약한 아이를 배려하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창조적인 규칙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아이들의 목적은 좀 더 즐거운 놀이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향해가는 아이들의 해법은 매우 단순하고 명료하다. 아이들의 놀이를 지켜보고 있자면 세상 모든 일이 아이들의 놀이와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을때도 있다.


 아이들 놀이에서의 백미는 다시 살아나는 일이다. 현실세계의 경쟁체계에서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일이다. 경쟁에서 탈락하는 순간 패배자의 딱지가 붙고 다시 회생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인고의 과정이 필요한데 아이들의 놀이는 매우 명쾌하다. 다음 차례가 되면 또 하면 된다. '얼음, 땡' 놀이에서는 '땡'만 해주면 살아나고, 콩주머니 던지기 놀이에서는 우리 편이 콩주머니를 받은 횟수만큼 얼마든지 살아날 수 있다. 금을 밞고 죽어도 다음 차례가 되면 살아나고, 구슬을 뺏겨도 금방 되찾을 수 있다.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마당에 해가 떠있다면 말이다. 대설 절기에 눈도 안오고 바람은 쌩하니 불지만 오늘도 해가 떠있으니 마당은 온통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꽉꽉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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