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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흘러내리던 아치 아래에서

by Babel

카메라를 장만한 이후로는 늘 무게감 있는 DSLR이나 미러리스를 목에 걸고 다녔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휴대폰 카메라는 ‘기록용’ 정도로만 사용하게 되었죠. 그런데 이 날, 스페인 그라나다의 햇살 아래 서 있었던 그 순간엔, 아이폰이 제 손에 들려 있었습니다.



알함브라 궁전의 정교한 아치 아래로 빛이 스며들며 만들어낸 광경은 말 그대로 ‘멈추고 싶었던’ 시간이었어요. 정해진 각도도 없었고, 설정을 고민할 겨를도 없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장면은 그저 담아야만 했습니다.



아이폰의 자동 설정은 이 순간에 오히려 더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섬세한 무늬와 햇살이 만들어낸 렌즈 플레어, 그림자와 빛의 대비 속에서 ‘순간의 감각’이 고스란히 기록됐습니다. 마치 사진이 아닌, 햇살에 스며든 기억 하나를 붙잡은 느낌이었달까요.



가끔은 이렇게, 카메라가 없어도 괜찮을 때가 있습니다. 어떤 장면은 장비보다 ‘멈추어 바라보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해 준 여행의 한 장면이었어요.


혹시 여러분도, 우연히 마주친 빛을 담아본 적 있으신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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