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기억의 불빛- 찻잔의 시점에서

by 윤사랑

기억의 불빛

— 찻잔의 시점에서


나는 오래된 찻집의 찻잔이다.

이곳에 머문 시간이 길다.


창가에는 늘 햇살이 들었고,

나무 바닥은 계절마다 다른 소리를 냈다.

겨울엔 코트 자락이 스치며 조용한 인사를 남기고,

여름엔 얼음이 녹는 소리가 대화를 대신했다.

나는 그 모든 풍경을 기억한다.


그들—혜진과 준호—그들의 기억은 내 안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20대의 그들은 이곳에 자주 왔다.

도서관에서 책정리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퇴근 후 이 찻집에 들러 차를 마시며 서로의 하루를 나누었다.


그녀는 민트차를 좋아했고, 그는 자스민을 즐겼다.

나는 그들의 손에 들려, 따뜻한 온기를 나눴다.

그들의 웃음, 침묵, 그리고 마지막 날의 눈빛까지—나는 모두 기억한다.


그 후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들은 오지 않았다.

나는 찻장 안에서 조용히 그들을 기다렸다.

먼지가 쌓이는 동안에도, 나는 그들의 이름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그녀가 다시 왔다.

조심스레 나를 들어 올렸다.

그녀의 손은 예전보다 말라 있었고, 눈빛은 더 깊어졌다.

창밖에는 가을 햇살이 조용히 내려앉았고,

바람은 낙엽을 데리고 지나갔다.


잠시 후, 그가 들어왔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말없이, 오래도록.

“잘 지냈어?” 그녀가 말했다.

“그럭저럭. 넌…” 그가 대답했다.

그들은 차를 마셨고, 나는 그들의 손에 다시 들렸다.

그들의 체온은 달라졌지만, 그 안의 떨림은 여전했다.


그들은 과거를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그

들이 서로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그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나 없이 견뎌냈는지.


차가 식어갈 무렵, 그녀가 말했다.

“그때는… 참 아름다웠지.”

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짧았지만, 그 안에는 모든 시간이 담겨 있었다.

그들이 함께 웃던 날들, 서로를 그리워하던 밤들, 그리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지금까지.


말은 거기서 멈췄다.

더 이어지지 않아도,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찻잔을 내려놓았고, 그는 시선을 떨궜다.

그 순간, 찻집 안의 공기가 조용히 흔들렸다.


그 사랑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다만,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픈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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