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끝, 삶의 시작

1부. 침묵의 정원

by 윤사랑

숲은 깊었다. 나무들은 말이 없었고, 바람은 조용했다.

그 마을은 지도에도 없었고, 길도 없었다.

단지 상처받은 사람들이 어느 날, 자기도 모르게 그곳에 도착했다.


첫 번째 공간은 침묵의 정원이라 불렸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누구도 위로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무 벤치에 앉아, 서로의 존재만을 느끼며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선 사연을 묻지 않았다. 눈빛은 있지만, 말은 없었다.

누군가는 이마에 흉터가 있었고, 누군가는 손끝이 떨렸다.

하지만 아무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들은 위로를 거부했다.

왜냐하면 위로는 때로 자신의 고통을 설명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그 정원은 말 없는 공감으로 가득했다.

슬픔은 말보다 오래 머물렀고, 침묵은 그 슬픔을 지켜주는 울타리였다.



<벤치 위의 두 사람>


그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벤치에 앉았다.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눈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날, 한 여인이 조용히 그의 옆에 앉았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떨리는 손을 바라보며 자신의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

그녀의 손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떨림은, 서로를 향한 조용한 인사였다.


그날 이후, 그들은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벤치에 앉았다.

말은 없었지만, 그들의 존재는 서로를 감싸고 있었다.


<흉터의 의미>


그녀는 이마에 깊은 흉터를 가지고 있었다.

처음엔 그 흉터를 가리기 위해 모자를 썼지만, 정원에서는 누구도 그녀를 바라보지 않았고, 누구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녀는 점점 모자를 벗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벤치에 앉아 있던 또 다른 사람이 자신의 팔을 걷어 올렸다.

거기엔 오래된 화상 자국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지 않았지만, 그날 이후, 흉터는 숨겨야 할 것이 아니라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되었다.



<말 없는 교감>


소년은 정원의 가장 오래된 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

그는 말을 하지 않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연의 작은 것들을 모아 주머니에 넣었다.


이끼가 부드럽게 덮인 얇은 나뭇가지,

햇빛을 머금은 그라스의 싱그러운 꽃..


어느 날, 한 노인이 그의 옆에 앉았다.

소년은 이끼 낀 가지와 꽃 한 송이를 건넸고, 노인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노인은 손끝으로 그것들을 천천히 만져보았다.

그것은 인사였고, 위로였고, 그의 방식의 이야기였다.


그들은 그날 아무 말 없이, 해질 무렵까지 함께 앉아 있었다.

나뭇가지와 꽃은 언어가 되었다. 말 대신 건네는 마음이었다.


소년은 노인의 손목에 감긴 오래된 붉은 실을 보았다.

실은 해어졌고, 끊어졌다 다시 이어진 듯 하였으며, 매듭은 느슨했다.

그것은 누군가를 오래도록 기다린 흔적 같았다.


다음 날, 소년이 다시 나무 아래에 도착했을 때, 노인은 이미 그곳에 앉아 있었다.

그는 손에 작고 예쁜 조약돌 하나를 쥐고 있었고, 따뜻하게 데워진 그 돌을 소년의 손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소년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돌은 작았지만, 그 안엔 기다림과 마음이 담겨 있었다.


바람이 나뭇잎을 가볍게 흔들던 그날 오후.

그들은 함께 정원을 걷다가 풀숲에 숨겨진 새 둥지를 발견했다. 안엔 작은 알들이 고요히 놓여 있었다.


두 사람은 그 앞에 멈춰 섰다. 소년이 노인을 바라보았고, 노인이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이 마주쳤다.


웃을 듯 말 듯, 아직은 눈빛에 슬픔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그 슬픔은 더 이상 혼자만의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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