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이야기의 방
정원은 여전히 조용했다.
그는 벤치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등 뒤로 나무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고,
발끝엔 낙엽 하나가 조용히 멈춰 있었다.
정원은 말이 없었다. 그는 말없이 걷기 시작했다.
나무 사이를 지나며, 누군가의 숨결이 아직 남아 있는 듯한 공기를 지나쳤다.
발걸음은 무겁지 않았지만, 가벼운 것도 아니었다.
그는 걷는 동안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를 묻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몇 걸음쯤 지나자 나무들 사이에 작은 문 하나가 보였다.
문은 닫혀 있었지만, 잠겨 있지는 않았다.
문 앞에는 아무런 표식도 없었다.
다만, 문틀 아래 낡은 나무판에 희미한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말해도 됩니다.”
”듣기만 해도 괜찮습니다.”
그는 문 앞에 멈춰 섰다.
손을 뻗기 전, 잠시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나는 아직 말할 준비가 되어 있지는 않은 것 같아.
하지만 누군가의 이야기는 들어보고 싶어..”
문을 살짝 밀자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일렁이는 커튼이 보였다.
작은 원형 테이블들은 햇빛을 머금은 채 조용히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문턱을 넘었다.
그 순간, 숲은 그에게 말할 자유를 허락했다.
<첫 문장>
그는 조심스럽게 테이블에 앉았다.
잠시 후, 한 여자가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아이를 잃었어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나를 잃었어요..”
그들의 말은 조용했지만, 그 울림은 정원의 침묵보다 더 깊었다.
<기억하는 사람>
그는 이야기의 방에서 늘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누군가가 자리에 앉으면 조용히 눈을 마주쳤다.
누군가는 이별을 이야기했고, 누군가는 전쟁을 이야기했다.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울기만 했다.
그는 단 한 번도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모든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아직 자신도 아픈 사람이었다.
말을 꺼낼 준비는 되지 않았지만,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는 되어 있었다.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알았다.
그는 언제든 조용히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그의 존재는 위로였다.
<말이 되기까지>
그녀는 며칠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야기의 방에 앉아,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었다.
그날, 햇빛이 창가에 머물던 오후.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말을 하고 싶었어요. 목까지 차올랐는데.. 그게 자꾸 꿀꺽 삼켜져요.
입을 열면, 내가 와르르 무너질까봐, 그게 두려웠어요.”
그녀의 말은 무너진 벽 사이로 조용히 자라나는 덩굴 같았다.
상처의 틈을 타고 올라오며 아직은 연약했지만, 분명히 살아 있었다.
그날 이후, 그녀는 조금씩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빛은 조금 덜 외로워졌다.
이야기의 방은 선택의 공간이었다.
말할 자유, 듣는 자유, 그리고 위로할 자유.
그날, 서로의 고통을 조금씩 나눠 가졌다.
하지만 누구도 가볍지 않았다. 단지, 덜 외로워졌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