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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Nov 13. 2021

캐나다 현충일

#CanadaRemembers


11월 11일 11시

사이렌이 울린다.

가던 길을 멈추고, 하던 일을 놓고, 하던 말을 급하게 끝낸다.


시간이 멈춘다면 바로 이런 상황일 듯싶다. 일순간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힘을 모아 기를 모아 시곗바늘을 부여잡고 시간을 멈추게   같다.

정적.

모두 한맘으로 시간을 멈추고 묵념을 한다. 11월 11일은 캐나다 현충일이다. 캐나다에서 전쟁이 발발한 적은 없지만 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부터 세계평화를 위해 여러 전투, 여러 나라에 파병되어 싸운 캐나다 군인들을 기리는 날이다.






얼마 전에 작은 아이가 학교에서 들고  작은 책갈피를 떠올린다. 오래된 전쟁 사진 위에 ‘Kapyong, 가평이라고 쓰여 있다.


가평? 이거 한국이다, 한국에 있는 도시 이름이야.

그래요? 왜 한국 도시 이름이 여기에 쓰여 있어요?


자세히 읽어보니 ‘Veterans’ week, 참전용사 기념주간’이라는 말과 함께 ‘Canada Remembers, 캐나다는 기억한다’라고 쓰여 있었다. 캐나다는 1차 세계대전 참전 이후 꾸준히 세계평화를 위해 자국 군인을 세계 각국으로 파병했다. 가평 전투를 찾아보며 아이와 캐나다 역사와 한국 역사를 아우르는 토론을 하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인천 상륙작전에 성공한 UN군이 서울을 탈환하고 그 기세로 38선까지 진격하고 있었어. 그런데  중국군이 북한군과 합세를 해서 다시 공격 시작한 거지.”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서울을 빼앗으려고 했지만 이번에 그렇게 쉽지는 않았어. 중국군이랑 북한군이 막 남쪽으로 내려오며 공격하다가 가평이 산이 많거든, 거기서 브레이크가 걸리는 거야. UN군, 영국군, 호주랑 캐나다 군대가 이산 저산 흩어져서 지키고 있으니까 쉽게 뚫고 내려오지는 못했어.”


“아 다행이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한국 입장에서도 죽을힘을 다해 지켜야 하는 데가 바로 가평이었어. 그쪽이 뚫리면 바로 서울까지 내려오는 게 아주 쉽거든. 그 가평을 지키려다 죽은 유엔 전사자가 유독 많았어.


“아 너무 슬프다. 아무리 평화를 위한 거라지만 다른 나라에서 아무도 모르게 죽는 건…”


“가평에 가면 캐나다 전사자 기념비가 있대. 나중에 한국 가면 꼭 같이 가보자.”


사진출처 https://blog.naver.com/prologue/PrologueList.naver?blogId=jbjoo0537






내가 토론토 어느 길 위에서 사이렌 소리를 듣고 멈췄을 때, 아이도 학교에서 참전 용사를 기리는 묵념을 했다고 한다. 가평전투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하지는 않았지만 캐나다 군이 희생된 한국전 어느 지역 중에 하나라고 모두 알고 있다고 했다.

이를 계기로 아이와 캐나다 역사와 한국 역사를 아우르는 토론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학교에서도 전쟁 이야기를 시작으로 자연스럽게 캐나다가 세계에서 가장 이민자를 환영하는 나라라는 얘기도 나왔다고 한다. 이념의 차이, 내전, 정치적, 경제적, 직업이나 교육 등의 목적으로 사람들은 나라를 옮기는데, 캐나다가 그들에게 가장 우호적인 나라 중에 하나라는 것이다.


“그러게, 왜 사람들이 캐나다로 오려고 할까? 우리는 너랑 형 공부 때문에 와 있는 거잖아”


아이는 본인이 이민자라거나, 유학생이라거나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고 한다. 워낙 이민자가 많은 사회다 보니 특별히 본인의 스테이터스가 다르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듯하다. 캐네디언이라고 스스로 말하는 사람들도 불과 몇 세대 전에 캐나다에 온 이민자들이다. 그리고 캐네디언들이 오기 이전에 캐나다 원주민이 있었음을, 그들이 이 땅에 먼저 와 살던 사람들이라는 교육을 강조한다. (물론 캐나다 원주민을 인정하는 과정이 매우 오래 걸렸고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아이 친구 집으로 플레이데잇을 보내거나 친구를 초대하는 경우가 있다. 워낙 다 국적의 사람들이 다시는 학교이기 때문에 내 입장에서는 아이 친구의 국적이 살짝 궁금하기도 하다. 미리 알아야지 그 친구 집에 아이를 보낼 때 같이 보낼 선물이라 든지 간식을 챙길 수 있다는 이유를 앞세우는데, 순전히 원초적인 내 궁금증 때문이다.


아이에게 친구의 국적을 물어보는 일은 쉽지 않다.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면 아이는 당연히 모른다고 할 테고, 오히려 그것을 왜 궁금해하냐고 되물을 것이다. 마땅한 답이 없다. 친구의 머리카락 색상이나 피부색을 물어보기에는 내 스스로 너무 속물스럽고, 친구 이름으로 국적을 유추하기엔 오차가 크다.


궁금하지 말자. 궁금하지 않은 것이 옳다.






오늘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 오늘 선생님이 수업 중에 엄마랑 한 얘기를 물어봤어요. 딱 그 질문을 하셨어요.”


“어떤?”


“사람들은 왜 캐나다에 오는지”


“그래? 네가 대답을 했어?”


“네, 내가 손들고 제일 먼저 대답을 했어요”


“뭐라고 했는데?”


“사람들은 캐나다에 CN Tower 보러 온다고요!”



무엇을 위한 토론이고, 무엇을 위한 예습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여기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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