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와가치 Aug 31. 2021

애도하는 시간

과거 완료형 4

몇 년이 지나도 우리 부부에게 아기가 생기지 않으니 주위에 계신 분들이 걱정을 많이 해주셨다. 결혼하면 아기는 당연히 생기는 것인 줄 알고 있었던 나에게 임신은 별나라 이야기가 되어 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친척들 모임이 있거나 그럴 때 어른들이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만 해도 체할 것 같았고, 도망가고 싶었다. 그런 불편함들이 반복될수록 결혼식이라든가, 회갑잔치 같은 친척들 모임에 한두 번 빠지다 보니 나중에는 참석하지 않아도 별로 미안하거나 불편하지 않게 되었다. 


남편의 가장 친한 예닐곱 명의 친구들 중에서도 우리 부부가 제일 먼저 결혼했는데, 정작 결혼 순서와 상관없이 다른 가정들은 어쩌면 다들 그리 실력도 좋은지 결혼해서 신혼여행만 다녀오면 아기들이 생겼다. 이 집 저 집 아기가 자라서 함께 모임을 갖게 되면 아기 엄마들은 온통 아기 이야기뿐이었다. 내가 다 모르는 이야기였고,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결혼도 제일 먼저 해, 나이도 제일 많은 내가 동생 같은 그 아기 엄마들 앞에 부러움으로 지고 말았다. 그 모임에도 점차 나가지 않았다.


남동생이 나보다 (아마 대략?) 5년 정도 늦게 결혼했을 거다. 우리 부부가 직장과 집을 옮겨야 하는 복잡한 문제로 해서 친정집에 가서 몇 달간 살았던 적이 있다. 엄마, 아버지, 남동생 내외와 우리 부부가 함께. 이 눈치도 없는 시누이가 한 집에 있으면서도 올케의 임신 사실을 7개월이나 되도록 모르고 있었다. 올케가 살이 찐 게 아니라 임신한 것이란 사실을 내 눈으로 직접 눈치챘을 때는 이미 친정 부모님은 물론 멀리 살고 있는 친척들까지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때의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우리 부부가 이사한 후에 조카 백일이 되어서 친정집에 갔다. 새로 지은 시골집에 남동생의 친구 부부들이 집마당으로 들어오는데 한결같이 서너 살은 되어 보이는 아이, 부모의 손에 이끌려 아장아장 걸어오는 아기, 겉싸개에 안겨있는 아기들까지 모두 내 마음으로 우르르 쳐들어 오는 적군들처럼 느껴졌다. 방어할 자세가 나오지 않았다. 동생 친구 내외들을 맞는 내 얼굴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 조카의 백일에 나는 하루 종일 주방에서 설거지를 했다. 내 초라한 뒷모습이 자꾸만 내 눈에 보여 그날의 설거지를 물로 했는지 눈물로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앞이 잘 안 보였기에.  시간은 참 빠르기도 하여라. 대형 레스토랑에서 열렸던 조카의 돌잔치에는 열 배 더 많은 하객들이 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조카의 돌복(아기 양복, 모자, 구두, 양말까지 몽땅)을 내 돈으로 직접 구매해서 입히는 일이었다. 그래야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들킬 것 같지 않았다. 그런 중에도 내 조카이다 보니 조카가 예쁘고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감정은 감사할 일이었다.


어느 여행 중이었던가? 한 번은 어느 집 앞을 지나가다가 어미 똥개가 다섯 마리 제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것을 봤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네가 나보다 낫다..."



잊고 싶었던 지난날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났었는데 이제는 많이 덤덤해진 모양이다. 이 글을 쓰면서 마음의 여유도 생긴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남의 일처럼 내 마음을 토닥토닥 위로하고 있다. 나를 위한 애도의 시간은 여기서 마치려 한다.


나를 엄마로 만들어준 우리 아기로 인해 나는 '엄마'가 되었고, 이제부터 내 아기를 위해 '좋은 엄마'가 되는 생각만 하고 싶다. 그러니 이제 내가 불임이냐 아니냐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내 아기로 인해 나는 벌써 치료받았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2001년 2월 21일





매거진의 이전글 아기를 기다리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