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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와가치 Aug 31. 2021

아기를 기다리며

과거 완료형 3

입양 기관으로부터 우리 가정에 입양될 아기가 결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소식을 들은 뒤로는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입양 신청을 해 놓고 막연히 기다리던 것과, 아기가 정해졌다는 소식을 들은 것과는 마음가짐 자체가 확실히 다르다. 그렇다면 이젠 우리 아기인데... 아직 얼굴도 모르고, 목소리도 듣지 못하고 이렇게 떨어져 있는 것이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이미 정해진 아이니 오늘이라도 당장 가서 데려왔으면 싶은데 모든 일에는 순서와 절차가 있는 법이니 기다릴 수밖에. 


우리 아기 지금은 뭘 하고 있을까? 우유를 먹고 있을까? 잠을 자고 있을까? 잠은 잘 자고 있을까? 어디 아픈 데는 없나? 내 더듬이는 아기가 머물고 있는 북동 쪽으로 텔레파시를 계속 보내고 있었지만 도통 신호가 안 잡힌다. 궁금하다. 보고 싶다. 너무 보고 싶다.



아기 없이 지내던 8년 가까운 신혼 생활은 솔직히 편하기는 했었다. 둘은 언제나 새로 올라온 영화를 보러 다녔고, 먹자골목을 2차까지 누비고 근사한 카페에서 오래 죽치고 앉아 시간을 보내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는 날들이었다. 주말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산에 갈까?" 그러면 바로 일어나 수 분 내로 능숙하게 가방을 준비하는 일은 일도 아니었다. 어지간히 이름 있는 산은 다 다녔다. 열심히 오르며 두 사람은 에너지를 그렇게 썼다. 크게 싸울 일 없이 어느 정도 마음이 잘 맞는 배우자와 이렇게 자유롭고 즐겁게 사는 것도 괜찮은 행운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돌덩이처럼 압박해 오는 허전함을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었다. 아닌 척, 즐거운 척 하지만 남들은 다 가지고 있는 완벽한 가족의 모습을 만들지 못했다는 수치심이 밀려올 때 가끔 눈물이 났다.

어째 임산부들은 그리 많이도 돌아다니는지... 



하지만 이제 그런 건 옛날 일이 되었다. 오랜 시간 가슴 시리도록 나로 하여금 그립게 만들었던 아기가 이 세상에 벌써 나와서 언제 저를 데려갈까, 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보고 싶어서 가슴이 따끔거린다.


사람은 자기가 관심 갖는 것을 집중해서 보기 때문에 그 대상이 더 잘 눈에 띈다고 하더니 그 말이 이해된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이 또 달라졌다. 예전에는 임산부만 보이더니 이제는 아기들 밖에 안 보인다. 마트에 갔다가

엄마 등에 업혀 잠에 든 아기, 버스 안에서 엄마 품에 앉아 눈을 초롱 거리며 나를 바라보던 아기, 엘리 베터에서 엄마가 안고 있는 외투 사이로 감기 탓인지 콧물이 입술까지 내려오던 아기... 예전에는 특별히 예쁜 아기에게 눈길이 많이 가곤 했었는데 이제는 모든 아기들에게 눈이 간다. 요즘 아기들은 어쩌면 다 그렇게 예쁜 거지? 왜 이렇게 사랑스러운 거야? 모든 아기들이 마치 이 땅을 축복하려고 내려온 천사들 같다. 


아기 보고 싶은 마음은 급해도 기다려야지. 모든 엄마들이 기나긴 열 달을 기다렸다가, 그 어떤 표현으로도 대체되지 않는 '산고'의 고통을, 표현이 아닌 실제로 겪은 대가로 만나는 아기인데 나처럼 자격도 없는 사람이 겨우 서너 달 기다린 것도 기다린 거라고 조급해하고 불안해하냐고. 세상 대부분의 엄마들처럼 그런 고귀한 인내심이 내게 없다면 훌쩍거리지 말고 기도라도 한 번 더 하자. 그렇게라도 엄마 자격을 갖출 수 있다면. 


집안의 가구들 위치가 여러 번 이동 중이고, 그간 버리기 아까워했던 물건들을 아낌없이 내보내는 중이다. 아기 옷을 고르고, 젖병 하나를 고를 때마다 행복하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2001년 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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