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랑드르의 한별 Sep 21. 2024

나는 프랑스에서 직접 머리를 깎는다.

무더운 여름날의 단상

8월 초입에 쓴 단상을 옮겨봅니다.


겨울에 깎은 머리가 꽤나 길어져서 어깨까지 닿는다. 날이 더워지고 땀이 많이 나니 머리를 틀어 올리거나 묶는 것마저 귀찮아진다. 운동을 다녀와서 드디어 몇 주 동안 미뤄왔던 임무를 수행하고자 팔 년 전에 대전역 근처에서 구입한 전동 이발기를 꺼냈다. 나이를 먹었는데도 기특하게 녹도 안 슬고 문제없이 작동하는 최고의 자취 도우미다.


다들 내가 집에서 '셀프 이발'을 한다면 기겁을 한다. 사실 처음부터 머리를 직접 깎을 마음은 없었다. 유학 삼 년 차에 길이를 좀 칠 겸 집 앞에 있는 미용실에 용기를 내어 가보기로 했다. 우리나라에선 기본적으로 이발 후에 모양도 다듬어주는 게 일반적인데, 삼십 분 후에 거울을 보자 머리 스타일이 2000년대 중반 정도에 유행하던 울프컷이 되어 황망했던 기억이 있다.


이발 도중에도 뭔가 이상한 것 같긴 했는데, 뭐가 잘못되고 있는지를 몰라 그냥 놔뒀더니 벌어진 참사다. 마지막에 볼륨을 넣어서 당장은 안 보였던 어설픈 마무리가 그날 저녁 머리를 감자마자 발각됐다. 벌이가 없는 학생에게 삼십팔 유로가 큰돈이었던 만큼 실망은 배가 됐다. 그 이후로도 두어 번 다른 미용실을 가봤지만 질적 차이를 느끼지 못하자 곧 이 나라에서 미용실에 가는 것을 포기하게 됐다.


그런 연유로 나는 혼자 머리를 깎는다. 욕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도구를 세팅한 후 목에 미용 케이프를 두른다. 한국에 들어갈 때마다 들르는 단골 미용실의 사장님께서 선물로 주신 소중한 물건이다. 그전에는 짠돌이 기질을 발휘해 신문지를 쓰거나 부러진 우산의 살을 버리고 떼어낸 천을 목에 두르곤 했다. 미용실 사장님께서 프랑스에선 미용 기술이 어떤지 궁금해하시기에 곧바로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하나하나 고발했다. 결국엔 혼자 머리를 자른다고 말씀드렸더니 너무나 기특해하시더니, 계산하고 나가려는 나에게 거의 새것 같은 케이프를 선뜻 건네셨다. 눈이 오던 1월 중순, 먼 나라에서 잘 써달라는 그 말씀이 그렇게 따뜻했었다.


준비물을 다 꺼냈으면 가르마를 탄 머리를 양갈래로 묶은 뒤 큰 가위로 일정 길이를 숭덩 잘라준다. 아직 초반인데 왼쪽이 생각보다 너무 짧게 잘라져서 잠시 당황했지만 그에 맞춰 오른쪽도 잘라준다. 내 모질은 굵은 편해 속해 가위질을 할 때 꼬들꼬들한 면이 끊기는 것 같은 감촉을 준다. 머리카락이 잘려나갈 때의 서걱서걱 소리와 모래가 손에서 빠져나가는 듯 한 감각을 아주 좋아한다.


바늘이 무서워서 타투도 없는 내 몸에서 유일하게 변형이 가능한 요소가 바로 머리카락이다. 내가 네 살 때 잠시 어른들이 보지 못한 사이 어디선가 가위를 찾아와서 머리를 자르고 있었다고 한다. 어른이 보기엔 아찔한 상황이지만 위험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쩌면 어린 시절의 내가 미래에는 셀프 이발을 해야 함을 감지하고 예습을 하고 있던 게 아닐까 한다.


이 바리깡 덕에 칼단발과 쇼트커트, 그리고 투블록까지 도전해 봤다. 지금까지는 후방에 거울도 없이 대충 잘라도 크게 문제가 없었기에, 주변에서 감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이 '감'은 오직 내 머리에만 적용된다. 정말 '인형 머리카락'같은 금빛의 가느다란 모질을 가진 내 친구 V의 머리를 잘라줬을 때, 아주 얇은 나일론 실처럼 흩어지는 머리카락을 한데 모으는 것조차 어려워 식은땀을 흘리던 모습이 기억난다.


손에 전혀 익지 않은 촉감에 가위질도 제대로 못 해보고 모든 층이 엉망이 되었다. 내 헛손질에 생각보다 과하게 짧아진 머리를 보고, 돈 좀 아껴보려 했던 그 친구는 결국 다음날 미용실에 가야 했다. 내 본가의 미용실 사장님도 모질이 다르면 모양 잡는 것이 아주 어렵다며, 아마 내 머리를 망친 프랑스 미용사도 자주 다루지 않는 굵은 직모에 곤란한 상황이지 않았을까 짐작하셨다.


양쪽 머리 길이가 대강 맞추어졌다면 이젠 좀 더 섬세한 작업을 해야 한다. 드디어 이발기를 들고 밑부분을 살짝 비스듬하게 정리해 준다. 뒤쪽에는 거울이 없어서, 목 뒤는 역시 감으로 잘라야 한다. 삐져나오는 몇 가닥을 다시 자르고 바리깡으로 밑을 몇 번 더 쳐주면 대략적인 공사는 끝난다. 바닥에 깐 신문지 위로 감당하기 어렵게 흩어진 머리카락을 죄다 치우고 도구를 세척한 뒤 머리를 감는다.


머리를 감고 나니 머리 길이가 애매하고 양쪽이 완전히 같지 않은 게 보인다. 나에게 혼자 사는 것은 자신의 자잘한 실수를 참는 것에 익숙해지는 과정이다. 요리나 다른 집안일을 할 때도 항상 허술하고 성의가 없다. 오로지 나라는 관객을 위한 퍼포먼스인지라 누구도 클레임을 걸거나 환불을 요구하지 않지만, 그 때문에 문제점을 고치거나 앞으로 나아가려는 마음은 일이 해결되고 나면 사라진다. 삐뚤빼뚤한 머리카락도 며칠 지나면 다른 머리에 덮여 어색해 보이지 않을 것이고, 나는 다음 여름이 오면 모든 걸 잊어버린 채 또 엉성하게 혼자 머리를 자르게 될 것이다. 이렇게 대충 살아도 되는 건가 싶으면서도, 대충 했는데도 살아갈 수 있다면 장땡인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샤워까지 끝내니 목 뒤가 너무 시원하다. 한결 가벼워진 느낌에 적절한 피곤도 몰려온다. 일주일이 지나도 계속 나타나는 머리카락 잔해를 견딜 수 있다면 머리를 혼자 자르는 건 나쁘지 않은 혼자만의 시간이다. 도구를 정리하다가 갑자기 바리깡이 어디서 온 말인가 찾아봤는데, 바리캉 에 마르 Bariquand et Marre 라는 파리 회사의 수동 이발기에서 유래했다 한다. 이렇게 자주 쓰던 말이 프랑스에서 온 외래어라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이곳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처럼, '오늘은 덜 멍청한 상태로 잠들 수 있겠다 je me coucherai moins bête ce soir'.




                    



작가의 이전글 브라드리의 첫 날. 벼룩시장의 행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