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식물, 자연광-자연을 닮고 자연을 담다

자연을 닮고 자연을 담다

by 김윤경

손한별 작가론

자연을 닮고, 자연을 담다

예술에 있어서 자연에 관한 주제는 다양한 문화권에서 많은 이들에 의해 채택되어 왔다. 자연이 예술 작품에 표현되는 방식 또한 매우 직접적이거나 추상적이기도 한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전통적인 그림 속에서 재현의 형식을 통해 자연은 오랫동안 직접적인 묘사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지만 역사 속 다양한 작품 속에서 새로운 형식을 취하며 관객을 또 다른 차원으로 이끌기도 하였다. 예술은 자연을 모방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부족한 부분을 완성시킨다고 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예술은 자연이 말할 수 없는 부분을 말하는, 자연이 잃어버렸던 목소리이다. 즉 한 줄의 선과 색을 만들어 내는 예술가의 행위 하나하나가 예술 작품을 또 다른 자연으로 만들어 우리를 초대하는 것이다.

야수파의 대가인 앙리 마티스(Henri Mattisse)는 “예술가는 자연을 소유해야 한다. 자연의 운율에 합일함으로써 작품이 그로 하여금 자신만의 언어를 갖게 해 준다.”라고 하였다. 자연의 이치에, 그것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삶이야말로 예술가로 하여금 가장 독창적인 언어를 창출해 내도록 하는 길이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자연은 늘 우리와 함께 있으며 우리 안에 있다. 흙으로부터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다. 자연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영감의 원천이 풍부한 만큼 예술에 있어서 자연에 관한 탐구란 수도 없이 많은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자연이란 주제는 매우 광범위해서 실로 많은 것을 포용하며 다양한 목적을 가질 수 있다. 유화를 비롯한 회화와 영상 작업을 하는 작가 손한별의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작가 자신의 내적 필연성에 의해 발현되는 자연의 메시지와 그것의 공유를 통해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보다 인간다운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손한별 작가는 영남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였고 순수 회화, 영상 설치, 디자인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작업하고 있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등 자신의 감각을 통해 인식되는 자연의 이미지를 한 폭의 캔버스 위에 풀어놓는가 하면 그러한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물, 바람, 풀 등이 한꺼번에 아우성치는 듯한 자연현상을 고스란히 담은 영상을 관객과 공유하기도 한다. 우연히 만들게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작은 크기의 유화 작품 ‘하늘, 식물, 자연광(The Sky, Plants, Natural Light)’의 이미지를 가지고 간결하고도 의미 있는 영상 작업을 선보이기도 하는데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자연의 섭리를 젊은 작가다운 재치와 감성, 디자이너의 기질 등을 발휘하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흥미롭게 풀어낸다. 파란 하늘과 초록 들판이 한데 어우러지다 노란빛에 잠식당하는 영상인데 빛이 만물을 드러내거나 감추는 역할을 한다는 진리를 이야기하는 듯하다. 흥미로운 것은 단색조의 색들 사이에 나타나는 하얀 선인데 작가는 이 하얀 선을 채색하는 것이 아니라 남겨 둔다고 한다. 마치 빈 캔버스 안에 그토록 의미심장한 하얀빛이 처음부터 존재했다는 듯 자연스러운 형식이다. 그러고 보면 작가는 어두운 색으로 먼저 채색하고 점차 밝은 색을 덧입히는 전통적인 유화의 제작 과정과 반대되는 듯한, 혹은 유화의 여러 순차적인 제작 과정을 적절히 교차시키는 방법을 통해 보다 투명하고 환상적인 화면을 구축한다. 하늘과 땅, 나무와 구름 등의 자연경관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인식하게 되는 색과 공기를 화면에 옮기며 그렇게 영감을 얻게 되는 순간들을 카메라로 포착하기도 하는데 작가의 눈과 제스처를 통해 걸러지며 남게 되는 결과물은 분명 사진 속 자연에서 빌려 온 것인데도 그와 다르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또 하나의 자연이 되어 있다. 초록과 파랑, 그리고 노랑 등이 시간적 순서 없이 서로 겹쳐지고 섞이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자연을 환기시키는 동시에 또 다른 자연의 경외감을 선사하는 것이다. 물감이 마르기 전에 끝이 예리한 도구 같은 것을 이용해서 긁어내며 화면을 지우는 동시에 자유로운 선을 만들어 내는, 그리하여 화면 속에 그러한 자연의 요소들이 한데 섞여 춤을 추는 듯한 움직임을 부여한다. 작가는 이렇게 일구어 놓은 화면을 영감을 주었던 순간을 포착한 사진을 인화하여 그 위에 겹쳐 놓기도 하는데 결과적으로 화면은 이것이 자연에 기인한 색이라는 것을 알려 주면서 동시에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것을 명백히 하고 있다. 마치 우리의 일상의 도처에 묘한 기시감을 주는 요소들이 늘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듯 네모난 화면 안에 또 다른 네모난 화면이 너울거리며 그 경쾌하고도 신비스러운 색을 자랑한다. 미술의 역사 속 많은 화가들이 물감의 다양한 색감과 질감을 실험하며 자신만의 화면을 구축한 것처럼 손한별 작가 역시 물감이 갖는 다양한 특징을 한껏 실험하는 중이다. ‘자연광(Natural Light)’, ‘대지(The Land)’, ‘초록빛의 겨울 숲(Greenish Winter Forest)’, ‘낙원(Paradise)’, ‘’ 하늘, 식물, 자연광(The Sky, Plants, Natural Light)’ 등의 정겨운 제목 하에 자연이 갖는 색감과 질감을 캔버스 위에 펼쳐 보이며 자신이 자연 속에서 받았던 치유의 힘을 불어넣는다.

미국의 화가 리차드 디벤콘(Richard Diebenkorn)은 “모든 그림은 하나의 분위기, 사람이나 사물과의 관계, 그리고 하나의 완성된 시각적 인상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표현을 추상이라 부르는 것은 종종 추상에 관한 이슈 자체를 더 모호하게 만든다. 추상이란 말 그대로 무언가를 도출해 내거나 다른 것과 분리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모든 예술가는 추상 화가이다. 재현에 입각한 회화를 지향하든, 사물이 아닌 어떤 정신성에 입각한 회화를 만들든 관계없이 말이다. 결과가 이를 말해 준다. (All paintings start out of a mood, out of a relationship with things or people, out of a complete visual impression. To call this expression abstract seems to me often to confuse the issue. Abstract means literally to draw from or separate. In this sense every artist is abstract… a realistic or non-objective approach makes no difference. The result is what counts.)”라고 하였다. 손한별작가의 작품 ‘도예(Pottery)’는 도예가가 만들어 내는 도자기의 느낌을 평면에 유화로 옮겨 놓은 작품이다. 작가는 자연을 담은 하나의 예술 작품에서 또 다른 형식의 자연을 이끌어 낸다. 리차드 디벤콘이 이야기하듯 하나의 분위기, 사물, 그들과의 관계, 그 시각적 인상으로부터 도출해 내거나 분리해 내는, 그러면서도 관객으로 하여금 도자기를 빚는 흙, 그 대자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손한별 작가는 자연으로부터 자신이 받았던 영감을 나누고 함께 느끼고자 ‘하늘’, ‘식물’, ‘자연광’ 등의 제목을 채택하고 그것을 찍은 영상 작업을 관객과 공유한다. 영상을 보며 우리는 작가가 자신이 느낀 자연을 작품에 고스란히 담아내고자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자연 속에서 내면으로 침잠하며 듣게 되는 자연의 목소리를 여러 형식으로 구현해 내는 손한별 작가의 자연에 관한 메시지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어머니와 같이 자연이 내재해 있으며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우리는 그 중요한 일부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김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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