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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lm May 18. 2024

예순네 번째 : 자살하고 싶으면 마음속으로만 해

나 자신에게 쓰는 편지, 지금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

Calm(가명)에게


안녕, 나 자신한테 편지 쓰려고 하니까 조금 손발이 오그라드는데 지금 힘들어 죽겠는데 이거라도 해야지 어쩌겠니?


너 지금 막 죽고 싶지?


한 20년만 전이었어도 정말 손목이라도 경동맥이라도 따버리라고 할 텐데...... 지금은 2024년이고, 너도 지금 니가 처한 상황을 알지?


매일 우리 집을 향해 들어오는 견제구 그리고 언제 도둑맞을지 모르는 돈들 어떻게 할래?


마음 약해진 나이 든 부모님한테 전부 다 주변에 뿌리라고 할까? 뭘 위해서 지켜온 거니?


법정에까지 가서 지켜낸 것들을 지금 다 포기해야겠니? 단순히 너 하나 힘들다고 그거를 다 자선사업할래?


지금 너 자신을 봐라. 이게 사람 사는 거냐? 매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면서 주변에는 괜찮은 척하지만 지금 괜찮냐? 아니잖아.


그나마 성인이 되고 나서 살만한 거잖아.


10대를 다 날려놓고 20대, 30대가 편하니까 별 생각이 다 들지?


그리고 너는 어차피 부모님 돈을 니꺼라고 생각 안 하지만, 어차피 너가 관리해야 해. 가는데 순서 없다고 하고, 너도 충분히 아프다는 것도 알고 죽을 고비 많이 넘겨왔다는 걸 아는데 과거에 갇혀서 이성이 흐려지면 제일 좋아할게 누구겠니?


사방에 하이에나들이 너네 가족 사라지면 그 돈이 다 자기네꺼라고 생각하는데 정신 똑바로 차려. 매일 재산상황 물어보고 참견을 넘어서서 태클 수준인데 이게 다 니가 핫바지나 호구로 보이니까 그렇지.


지금 여기에서 무너지면 너만 죽는 게 아니라 가족이 다 비참해질 수 있어.


아무리 니가 '돈'에서 좀 멀어지고 싶다고 떠들지만, 그게 되냐? 지금 니가 당장 안 굶으니까 그런 따위의 소리가 나오는 거지.


마음속으로만 자살해.


그리고 앞으로 10년은 더 살지 않겠니? 중간에 막가지 않으면 말이야. 10년을 보고 살아. 과거의 20년을 망했으니 나머지 10년만 봐. 어머니 은사님 말씀처럼 앞만 보고 가.


건강이 안 좋아서 힘없는 너한테 강해져라. 마음 독하게 먹어라. 이런 소리들은 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고, 잠시만 버티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어. 지금 최근 몇 년 이상한 사람들한테 완전 농락도 당하고 마음 같지 않잖아. 그리고 일도 저질러 놨고......


일단 수습을 해. 그리고 당장 수습할 일이 없다는 것도 알잖아. 어차피 아무 일도 안 벌어지는 거 너도 다 확인했잖아. 그리고 멀리 보면 10년 뒤에 복수를 하던지 아니면 가서 엎던지 합법적인 수단으로 뿌리부터 줄기 그리고 가지까지 전부 다 제거해 버려.


뭐가 겁나? 또 대하드라마 쓰려고 하는 거냐? 그건 예전에 상금 받은 시나리오 하나로 그만. 이제는 우리 집 지키는 것하고 앞으로 뭘 하면서 살아갈지 그것만 고민해.


그리고 공부는 이제 더 하라고 말도 못 하겠다. 공부하다가 진짜 구토가 나올 정도로 했잖아. 그냥 적정선 지키면서 때를 기다려.


시간이 너의 편이 아닌걸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 시간 그리고 타이밍이 너의 편이 될 때까지 잠시만 기다리면서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들을 정리해.


휘발시키기에는 또 아깝지 않니?


종교는 없지만, 정말 하늘 위에나 땅 밑에 절대자라는 그런 존재들이 돌지 않고서야 기회를 한번 정도는 더 주지 않겠니?


기다려. 원래 기다리는 거 잘하잖아. 너는 선택적으로 급하잖아. 너 자신한테 좀 관대해져라. 맨날 그렇게 너 자신을 괴롭히면 막 기분이 좋냐?


그리고 너 지금 이 따위로 하는 거 알면 웃을 사람 참 많겠다. 정신 차려. 힘들면 노는 방법도 잘 모르겠지만 놀아. 공부하다가 뼈나 부러지지 말고, 차라리 놀다가 어디를 다치는 게 낫지 않니?


병원 가면 간호사들이 물어보는데 쪽팔려서 왜 부러졌는지 너 말도 못 하잖아. 이런 일은 만들지 말자.


지금 나 자신한테 내가 편지 쓰면서 반추하는 것도 줄여보자. 멀리 봐. 10년을 더 살지 아니면 1년만 살고 끝날지는 나도 모르겠는데 지금 힘든데 좀 장기적인 계획으로 상상이라도 해봐.


안되면 그냥 외국으로 튀어. 그 나라에서 조건 좋잖아. 그렇게 잊어버리고 사는 것도 생각해 봐. 하긴 니 성격에 부모님이 어릴 때 거기에서 힘든 걸 봤는데 가고 싶겠냐만......


길은 여러 가지인데 선택하고 싶은 길이 하나인건 알고 있어. 그러면 그 하나의 길을 선택하고 현재도 아니고 그냥 미래를 위해서 살아. 그리고 가족하고 너를 위해서 살아.


말이 너무 많았지?


니가 얼마나 문제가 많았으면 내가 쉬지 않고 이렇게 떠들겠니? 죽고 싶으면 마음속으로만 하고 조금만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좀 있지?


진정하고 너의 위치와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천천히 다시 해. 지금 방법이 없잖아. 절박함 그런 건 다른 사람이나 가지리고 하고 너는 그냥 마음 편하게 하고 싶은 것을 위해서 달려가라.


손발이 오그라들다 못해 이젠 감추고 싶어질 정도네.


잠도 잘 자고 스트레스 좀 그만 받아라.

그럼 이만.



Calm(가명)이 Calm에게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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