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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lm May 19. 2024

예순여섯 번째 : 손잡이가 없는 날카로운 칼이 낫다

난도질이 아니라 나를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게 먼저인 것 같다

아침에 갑자기 감정이 폭발해서 펑펑 울었습니다. 이유는 복합적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위로하고 감사하는 그런 능력은 없습니다. 표현하지 않아도 이미 잘했다는 것을 아는데 굳이 제가 말까지 해가면서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 자체가 과잉 대응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항상 알쏭달쏭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 편입니다.


감정이 복합적으로 올라오는 상황에서 과연 나 자신을 어떻게 control 할 것인가에 대해서 제가 성인이 된 이후에 대답은 항상 같습니다.

어설픈 위로로 감정만 부추기지 말고 내 자신에 의해서 내가 다치더라도 조금 더 엄격해져야 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아니고 올해 2024년이 되면서 갑자기 엄청난 피로감이 몰려오기 시작했어요.


자기 합리화가 되지 않는 저 자신으로 인해서 저 자신이 계속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기 시작한 겁니다.


아마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버텨내던 제 마음이 이제 그 힘을 다했다고 봐야 할까요?


어떻게 해서든 제 마음에 서슬 퍼런 그리고 잔뜩 날카로워진 칼로 난도질을 하고 적당히 봉합해 왔던 것 같은데, 칼이 날카로워 너무 깊게 들어가 봉합이 되지 않은 부분들이 터져나가는 기분입니다.


일반적인 동물의 조직이라면 그 자리에 살이 차오르고 회복이 자연적으로 되는 기작이 작동하게 되겠지만, 사람의 마음은 저에게 있어서는 그냥 종이와도 같은 것 같습니다.


찢어져서 붙여도 찢어진 자리는 표시가 나는 것 같은데요. 파쇄기에 종이를 갈아버렸는데 붙인다고 붙여지는 건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느새 아주 극단적으로 방어적이게 된 저를 어떻게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순간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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