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문제 풀기, 패션수업, 정치토론, 지식배틀 등
가족끼리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가 나와서 '연애' 그리고 '소개팅'에 대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니 제가 연애를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소개를 통해서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소개팅은 꽤나 많이 해봤지만, 다 독특한 분들과 했던 것 같아요. 제가 소개팅을 하고 대학 동기한테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저한테 이러더군요.
"세상에 너보다 더 이상한 사람도 많구나?"
위에 소제목으로 적은 '수학 문제 풀기, 정치토론, 패션수업, 지식배틀 등' 실제로 이런 것들을 소개팅에 가서 했었습니다. 제가 분위기를 이끌고 그런 성격도 아니고, 항상 소개팅을 가면 상대방이 '제발 먼저 말 좀 해주셨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을 품고 갑니다.
사람이 생각과 가치관이 다 다르기 때문에 제가 먼저 이야기를 했을 때 거부감이 든다면, 결과는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간다는 강박관념이 조금 있는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수학교육을 전공한 사람과 소개팅을 했다가 저도 수학 과제가 있어서 다 마치고 소개팅에 나왔는데, 소개팅 상대 분이 갑자기 문제를 주면서 시합을 하자고 해서 실제로 풀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걸 이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여자분이 자기 과제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냥 승패를 떠나서 빨리 그냥 해주자 해서 풀고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첫 번째 만남을 가지고 나서 2번 정도 더 만나면서도 계속 과제를 들고 오시고 과제를 하고 나서 대화를 하고 그랬습니다. 저는 일단 과제를 다 끝내야 카페에서 벗어나서 식사를 하던 아니면 영화를 보던 할 것 같아서 빨리 풀어서 해치웠던 건데 '재수 없다'는 피드백이 왔어요. 그냥 숙제만 해주고 소개팅이 끝나버린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기억나는 다른 소개팅은 개성이 넘치는 분이셨어요. 당시가 겨울이었는데, 털이 달린 코트를 입고 오신 것 같았어요. 저는 롱코트와 목티 그리고 바지는 캐주얼한 바지에 신발은 운동화를 신을 수밖에 없었어요. 브랜드마다 다른데 공통적인 건 제가 발사이즈가 너무 커서 구두를 신는 경우는 면접이나 정말 중요한 상황에 신는데, 물론 소개팅도 중요한 상황이죠. 그런데 발목을 반복적으로 다쳐서 수술도 하다 보니 구두를 피하게 되더군요. 그냥 제 신발이 마음에 안 드셨나 봐요.
이 분도 4번 정도 만났는데, 저의 경우에는 운동화는 4켤레 정도 같은 것을 사서 신고 그리고 옷의 경우에는 같은 것을 4벌 정도 사서 돌려가면서 입습니다. 코트는 같은 것을 2개를 사서 입는 경우가 많아요. 그게 싫으셨나 봐요. 제가 코트 2개가 계속 입다 보니 손상이 되어서 수선을 받은 자리가 달라서 2개의 코트가 같은 코트지만 다른 코트라는 것을 알아챌 만큼 눈썰미가 대단하셨습니다. 전공이 디자인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옷에 관심이 많으셔서 그런 건지 눈썰미가 부러웠어요.
하여튼 4번 정도 만나는데, 계속 옷과 신발에 대한 이야기만 해서 제 멘털이 완전히 나가버렸어요. 주변에서 말은 해주는데, 그런가 보다 하는 정도지 막 치를 떠는 반응은 별로 없었거든요. 그리고 하다 하다 제가 오랜 시간 착용한 안경조차도 마음에 안 드셔서 뭔가 이건 소개팅이 아니라 패션 수업 아니면 패션 컨설팅을 받는 기분이었습니다.
정말 죄송했지만 만나다가는 제가 제정신으로 살아가기가 힘들 것 같아서 죄송하다고 거의 사죄를 드리고 제가 자진해서 포기를 했습니다.
그다음 기억나는 소개팅은 언론사 기자분이었는데요. 저는 기자라고 하셔서 기자도 여러 분야가 있고, 제가 이공계열 전공을 한 사람이니 그냥 과학분야 기자였으면 좋겠다 생각을 하던 것도 잠시...... '정치'쪽 기자분이셨습니다. 첫 소개팅 자리에서 거의 카페에서 3시간을 취조를 당하는 기분이었어요.
앞에서 이 이야기를 보시면 이해가 되실지도 모르겠어요.
https://brunch.co.kr/@f501449f453043f/15
저는 정치성향도 솔직히 없고, 생각을 그렇게 많이 해보지도 않았어요. 이 분이 기자임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정치노선이 엄청 확실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별 말도 안 하고 정치성향이 없다 보니 자꾸 포섭을 하려고 하시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지식배틀도 하는데 제가 아무 생각도 없이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셨는지 아니면 다른 생각을 하셔서 그런 지식측정에 준하는 질문을 왜 하신 건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당시 제가 할 말도 없고 대답을 하기도 그렇고 해서 좀 표정이 안 좋았나 봐요. 그래서 저한테 이 분이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가 싫으세요? 말도 없으시고 저도 눈을 엄청 낮춰서 나온 건데 기분 나쁘네요."
그냥 제가 할 말을 잃어버렸어요. 저도 대답은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그냥 조금 쏟아내듯이 당시에 이야기했던 말이 전부 기억이 납니다.
"저는 제가 왜 진보나 보수를 선택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원하시는 대답은 정해져 있는 것 같고, 가족끼리 이야기를 해도 싸움이 난다는 게 정치이야기인데, 기자이신 건 알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 저는 취재대상이 아니잖아요. 제가 사고를 쳐서 취조를 당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저는 좋다 싫다 의사표시를 한 것도 아니고 도대체 왜 계속 대답을 강요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취재를 어떤 방법으로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과연 취재를 하실 때 계속 대답을 강요하신다면 취재원이 기자님을 감당할 수 있을지 그리고 어느 순간 지쳐버리지 않을까 싶네요. 지금 저도 많이 지칩니다."
이 말을 하자마자 난리가 나서 저한테 욕을 하셨습니다. 어차피 욕먹을 각오를 하고 할 말은 해야겠다 싶어서 한 것이었고, 조금 멀리 봤을 때 서로의 시각차가 너무 컸어요. 저는 불만을 토로하더라도 상대방 말은 들어보고 그다음에 결정을 하고 불만을 이야기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이 분은 사이비 종교를 포교하듯 뭔가 굉장히 급하시고, 답을 정해놓고 질문을 하셨습니다.
글로 적으면 재미있는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말로 다른 사람한테 이야기할 때는 재미있게 되는데 글은 막상 좀 건조하게 적게 되는 것 같아요.
나이가 들기 전에는 소개팅을 하는 게 창피했습니다. 부모님이 첫 연애에 결혼을 하셨고, 두 분 사이에는 크게 문제가 없어서 그냥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면 되는 거구나 생각을 하고 살아왔던 세월이 길었는데, 요즘은 또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그리고 조건들도 워낙 세부적으로 보는 것 같았습니다.
이외에도 특이한 경험들이 많지만 별로 재미있는 경험들은 아닌 것 같아서 일단 3번의 case를 이야기해 봤습니다.
연애나 결혼은 솔직히 답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둘 사이가 좋아도 연애와 결혼은 분명히 차이가 있고 생각하면 할수록 정말 인류가 해결하지 못할 난제라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은 어떤 소개팅 경험이 있으신지 궁금하네요. 나중에 용기가 나면 댓글창도 열어보고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