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alm May 31. 2024

여든네 번째 : 너는 병도 의지로 이겨내는구나

20년 먹던 약의 용량을 줄이기로 한 날

저에게는 평생의 동반자라고 해야 될 것 같았던 약 2가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2가지 약 중에서 1가지 약 때문에 2018년에 큰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약이 1차적 원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나머지 1가지 약은 수술을 하고 나서도 계속 먹어야 하는 상황이라 평생 먹겠구나 싶었습니다.


저를 수술해 주셨던 선생님이 말씀을 요약해 보면 이렇습니다.


이 수술 자체가 케이스가 많지 않고, 수술 후에 일단 문제가 된 약은 무조건 끊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나머지 하나는 끊거나 줄이지 못할 확률이 많이 높다.
그렇다고 수술 후에 약을 끊거나 줄이는 프로토콜이 정확히 제시되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수술 후에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되는 거다.
단지 그 싸움을 하는데 생명에는 지장이 없도록 하는 게 이 수술의 목적이다.


세상에서 저를 보는 눈을 그렇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기는 합니다.


그래서 별로 외형에 신경을 안 쓰는 부분도 있고......


그런데 저도 사람이 들려오기는 하겠지요?

만사가 귀찮은 사람 or 모든 것을 정신력으로 해결하는 사람


이렇게 이야기하더군요.


제가 만사가 귀찮은 사람이 되어버린 이유는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모르겠습니다"를 달고 산 것 같아요. 그래서 저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하여튼 손가락 문제도 해결되었고, 다른 곳도 아프지 않았지만, 이제 오늘은 다른 과 정기검진을 가는 날이었습니다. 9시 예약인데 빨리 갔어요. 또 08시에 그냥 들어오라고 하시더군요.


먹던 약을 먹는데 자꾸 속도 울렁거리고, 뭔가 필요 없는 증상이 나타나는 것 같아서 좀 일찍 와야 하는데 손가락이 급해서 신경도 못썼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혈액검사는 손가락을 하면서 해놓은 게 있어서 그걸 보시더니 저한테 이러시더군요.

너는 1번 약(부작용이 일어났던 약을 지칭)도 그냥 안 줄이고 한방에 끊어버리더니,
2번 약(지금 먹고 있는 약)도 이제는 줄일 때가 되었나 보다.
이제는 약을 줄여도 수치가 잘 유지될 것 같은데?
너도 찾아봐서 알겠지만,
고지혈증이나 고혈압같이 이게 평생 먹어서 유지해야 하고 그럴 필요는 없는 병인 거 알지?
너는 진짜 의지가 대단하네.
수고했다.
너는 병도 의지로 이겨내는구나.
이제 우리 Calm(가명)은 결혼만 하면 되겠다?
그지?
000 선생님(아버지 후배)도 알지?


그러시고서 의사 선생님이 뭘 막 주시더라고요. 의사 선생님이 저한테 무슨 청탁을 하시려고 주셨겠어요. 그냥 제약회사에서 받으신 노트하고 볼펜이 있었는데, 가져가라고 그리고 공부 그만하고 차라리 그냥 볼펜으로 그냥 여기저기 낙서도 해보라고 하셔서 제가 이랬어요.

제가 무슨 애도 아니고, 하여튼 감사합니다.


병원에서 나오다가 어머니한테 전화를 드렸어요. 어머니께서 아이같이 좋아하시더군요. 이게 그렇게 좋아할 일인가 싶었던 게, 물론 모든 약이 독성충격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기는 하지만, 약을 안 먹는 것은 좋은 거니까 그러신가 보다 이러고 말았습니다.


폭풍의 05월이 오늘로써 종료됩니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여러분들께서는 어떤 5월을 보내셨나요?


저는 정말 이번 달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매거진의 이전글 여든세 번째 : 제가 알아서 할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