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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lm Jun 04. 2024

여든일곱 번째 : 가족 앞에서 이중적인 '나'

내가 입이 무겁게 생긴 건가?

최근에만 경험한 부분은 아닙니다.


제가 10대에는 자꾸 언급했다시피 학교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바람에 저랑 이야기하는 사람은 극소수였고, 그냥 이상한 것을 봐도 불법만 아니면 그냥 잠자코 있었어요.

https://brunch.co.kr/@f501449f453043f/10


그런데 성인이 되고 나서는 이상하게 저한테 심각한 이야기들을 많이 털어놓더군요.


사실은 저도 고민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그냥 저 하나 다치면 끝나는 일에 제 주변이 너무 많이 다쳤거든요. 심지어 대학교 동기까지요. 그래서 사람을 괴롭힐 때 주변을 괴롭히는 것을 가장 조심해야겠다고 항상 생각해 왔는데, 그 내용을 다 모르는 친구들이 갑자기 저를 붙잡고 심각한 일을 털어놓는 이유가 많습니다.


제가 슈퍼맨이라서 해결책을 줄수도 없는데,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은 '들어주는 것'이고, 말을 하지 않는 편이에요. 섣부르게 위로를 했다가 사람 자존심을 건드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냥 속으로만 생각합니다.

나라면 이렇게 했을 텐데, 그냥 상황이 잘 안 만들어지나 보다.


그래서 후배 하나가 저한테 정말 기가 막힌 비밀을 막 이야기 하길래 제가 정말 돌아버리겠다 싶은 정도가 있었는데, 저에게 털어놓는 이유를 물어봤어요.

오빠는 그냥 아무한테도 말 안 할 것 같고, 거짓말 안 할 것 같았어요.


그 친구한테 제가 그냥 웃으라고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너는 이제 좀 마음이 힘드니까, 관상도 보냐?


속으로는 제가 더 힘들었거든요. 그 친구 때문에 힘든 게 아니라 제 주변문제도 처리하기 힘들었어요. 그리고 제 인생에 대한 문제 그리고 당시에는 크게 아프기도 했었기 때문에 저도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어제 이모께서 우리 집에 왔었습니다. 저녁에 오셨더군요.


굳이 자기 딸의 집이 있는데, '왜, 막냇동생 집에 와서 자려고 하지?'라는 생각은 했습니다.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려고 했는데, 공부를 하다가 밤 12시가 되었나? 갑자기 이모가 밖에 좀 나올 수 있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아파트 앞에 24시간 카페에 갔어요. 가서 코코아 2잔을 시켜놓고, 거의 2시간 정도를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돈에 관련한 비밀이었어요. 이런 걸 왜 나에게 이야기 하시나 싶기도 했고, 원하시는 대답이 있었는데, 제가 그 대답을 해드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가족과 공유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이건 바로 우리 가족의 문제와도 직결될 수 있어서 이모가 자는 사이에 부모님이 일어나셔서 밖으로 나가서 다 말씀을 드렸어요.

제가 촉새가 된 거지요.


일단 우리 가족의 안위가 달린 문제라서 이렇게 이렇게 하자고 대충 이야기를 하고 저녁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했습니다.


오늘 이 글을 적게 된 이유는 '남의 문제'는 비밀을 지켜주면서 '왜 우리 가족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입이 무겁지 못했을까?' 하는 환멸감 그리고 이중성 이런 부분에 대해서 정말 치욕스러웠습니다.


제 삶의 일관성에 금이 간 기분이었거든요.


누구나 다 양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알지만, 이모의 말씀은 모든 준비와 방어태세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 그것을 허물라는 말이거든요.

저는 우리 가족을 선택했습니다.


일단 살아가야 하니까요.


제 인생에 신념이 갈려나간 기분입니다. 뭔가 거짓말을 한건 아닌데, 규칙을 깬 느낌이기도 하고...... 복잡한 생각이 드는 시간이 돌아온 것 같습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마음이 힘들어지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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