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alm Apr 15. 2024

열다섯 번째 : 전공을 바꾼 것에 후회하지 않나요?

답변에 대해 생각도 안 해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생각

저는 전공을 바꿨습니다. 전공을 바꾸는 과정을 이야기한다면 제가 누구인지 다 밝혀질까 조금 두려워서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전공을 바꾸게 된 이유는 지극히 '아버지'의 요구가 있었고, '어머니'의 부탁도 있었습니다.


제가 바라본 '아버지'는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한 부분을 모두 다 이루고 나서, 억지로 꼭대기에서 끌어내려진 그런 사람으로 봤습니다. 주변이 다 적(敵)이면 어떻게 되는지 몸소 체험시켜 준 케이스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그 순간에서도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었어요.


반면에 '어머니'는 원래 원하던 길이 아니었는데 열심히 하다 보니 가장 위에 올라가게 되었고, 후배들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그리고 한편으로는 가족을 위해서 미련 없이 직(職)을 던지고 나온 나름 멋있어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손뼉 칠 때 떠난 사람이라고 봐야겠네요.


저한테 부모님이라는 존재는 단순하게 같이 사는 사람이 아니고, 그냥 존경하는 대상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존경하는 사람을 이야기해보라고 할 때, 위인을 말해본 적이 없습니다. 주로 부모님이거나 아니면 비교적 현대사의 흐름 안에 있었던 사람을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너무 옛날 분들은 기록도 확실치 않고, 제가 그걸 알 수도 없다는 생각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존경하는 사람들이 저한테 전공을 바꾸라고 했을 때, 차이는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전공으로 바꾸기를 원했고, 어머니는 그 분야의 테두리 안에서 전공만 바꾸는...... 예를 들면 문과 안에서 전공을 다시 정하는 선에서 전공을 바꾸기를 원하셨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워낙 강경하셔서 아버지의 전공과 비교적 가까운 전공으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같은 전공을 하면 저는 제 이름이 아니라 인생이 끝날 때까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것 같았거든요.


전공을 바꾸고 나서 저는 정말 좋은 교수님들을 만났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축에 드는 교수님들을 만나기도 했고, 반대로 양아치 같은 교수들도 봤습니다. 대학 안에서 정치질을 하는 교수도 봤습니다.


저 질문을 한 사람의 요점은 결국 후회를 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단호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

후회하지 않습니다.


대학에 다니면서 저는 공부도 했고, 수석으로 졸업도 했지만, 가장 저에게 지금도 재산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상식선을 지켜내는 것과 더불어서, 학교에서 이상한 일에 휘말려 제가 많이 위태로운 상황에 대학생활을 하기 힘들어하던 저를 교수님 두 분이 자신들의 직(職)을 걸고 끝까지 지켜주시는 것을 보고 내 사람을 지키는 방법을 배운 것이 가장 큰 재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약 전공을 바꾸지 않았다면 그런 좋은 교수님들을 만나기는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을 해도 될지 모르지만, 학교에서는 제 위로 2년 선배들 그리고 아래로 2년 후배들까지 '황금 학번'이라고 부르더군요. 저도 몰랐는데 4학년이 되고 나서 알았어요. 학교에서 봤을 때 제가 다녔던 학과의 교수진들이 가장 좋을 때였다는 것을 학교에서도 인지를 하고 있더군요. 그러나 지금은 그 교수님들이 정치력에 밀려서 다른 학교로 자리를 옮기시거나 다 퇴임을 하셨고, 그 자리에는 이해하기 힘든 새로운 사람들이 그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교수님들을 만나고 공부하고 하면서 느끼고 배운 것들이 위에서 말한 것들입니다.


막약에 제 사정을 아는 분이라면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냥 전공을 안 바꾸는 게 나았지 무슨 헛소리냐고...... 그렇지만 저 질문에 대한 제 생각과 느낌을 물어보는 거니까 이렇게 대답을 해줘야 할 것 같아요.


결과만 보면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세상을 어느 순간부터 '실적' 위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사람이 아니라 수치를 보게 되고, 사람을 기계 혹은 물건으로 보게 되는 순간부터 도구와 수단만이 판치는 엉망진창인 사회가 되고 말 겁니다. 지금 그런 사회인지도 몰라요. 사회지도층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행태가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모든 것을 도구와 수단으로 점철해서 보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인데요. 이건 너무 먼 이야기이고...... 논란의 여지가 될 소지가 많아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우선 저처럼 부모님의 요구로 전공을 바꿀 수도 있을 테고, 아니면 지금 전공이 마음에 안 들어서 바꾸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저의 경우에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일단 시도를 해보고 바꿔봐야 후회라도 하지 바꾸기 전에는 장밋빛 전망 밖에는 할 수 없다는 것만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만약에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서 전공을 바꾸신 분이 있으시다면 혹은 진로를 바꾸신 분이 있으시다면 후회를 하시는지 안 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열네 번째 : 어머니가 결국은 폭발하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