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alm Aug 05. 2024

마흔세 번째 : 경제권을 넘겨받은 날

사전(死前) 상속이 아니라 사후(死後) 상속을 받기로 했다

'일상' 매거진에 들어갈 글을 '생각 그리고 경험'에 적었습니다. 조금 특별한 경험 같아서 여기에 배치합니다.

출처 : Vecteezy


매일 점심 우리 가족은 각자의 생활을 오후 12시까지 한 후, 12:30 정도 되는 시간에 카페에서 집결한다.


우리 집에 사정에 의해서 잠시 살았던 이모와 외사촌형 그리고 외사촌누나는 우리 가족의 관계가 가족이라기보다는 굉장히 공적(公的)인 관계라고 했다. 그럴만하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항상 가족끼리 그냥 문자로 자신의 현재 위치 정도를 1~2시간에 1번 정도 문자로 하는 정도이고, 서로가 그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는 전혀 서로가 관여하지 않는다.


아마 이렇게 된 이유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는데, 이렇게 말씀하셨던 게 기억이 난다.

우리 가족 3명이 다 고집이 세고, 어차피 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할 사람들도 아니니까, 차라리 서로 뭘 하는지 불법적인 행동만 아니면 이상한 행동을 하든 말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냥 생존확인 정도만 하고 살자.


이게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었다.


이거를 뭔가 가문의 전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과도한 포장이고, 나름 서로를 존중하는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그런 것처럼, 12시 정도에 나는 2000원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연하게 시켰다. 그리고 12:30 정도에 어머니가 오셨다. 만약에 그 시점에 중요한 일이 있으면 30분 정도 의논을 하는 편이고, 일이 없으면 5분 정도 쉬었다가 점심을 먹으러 가던지 집에 가던지 선택을 한다.


서울에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지역으로 이사를 온 다음에는 계속 이 생활의 반복이었다.


오늘은 별일도 없었고, 나도 그냥 특별한 건 병원에서 검사결과를 들으러 갔다 온 정도?


그래서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머니가 갑자기 화일철 하나를 주셨다. 사전(死前) 상속에 관련된 부분이었다. 대충 의도는 알아챘다. 갑자기 심경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이제는 엄마는 지는 해고, 너는 앞으로 살 날도 많을 텐데, 이번 일 말고도 금전적인 부분을 잘 운용하는 것을 봐서 이제는 전부 너한테 다 상속을 해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항상 생각을 해서 변호사 상담도 했는데, 어떻게 할까?


항상 어머니가 이야기는 하셨었다. 그때마다 그냥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게 싫어서 이상한 소리 하지 마시라고 이야기를 했던 나다. 그런데 오늘은 뭔가 결단을 내리고 이야기하신다는 느낌이 들어서 내가 대답을 했다.

그러면 타협을 합시다.
어차피 우리 집은 사람이 없어서 일단 부동산이나 기타 자산에 대한 명의는 지금 같이 부모님이 가져가는 비율이 95% 정도가 되는 게 차라리 안전하고, 가는데 순서는 없다지만, 만약에 부모님이 사망하시면 사후(死後) 상속을 하는 걸로 합시다.


어머니가 이렇게 그냥 결론을 지어버리셨다.

사후(死後) 상속이야 당연한 거고, 그러면 경제권을 네가 다 맡아.
돈 생기면 내 통장에 막 넣지 말고, 너 통장에 놔서 관리를 하라고.
오늘부터 경제권은 넘긴 거다. 알았지?
이걸로 국을 끓여 먹던지 사업을 하던지 다 날려먹어도 좋으니까, 이제는 나는 의논상대 정도로 하자.


점심을 먹으러 가락국수집에 갔는데 그냥 일반 가락국수를 먹으면서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내가 뭘 안다고 지금 나한테 이러시는 건지도 모르겠고, 내가 지금 결혼을 한 것도 그리고 당장 결혼을 할 것도 아니라서 왜 이러시는지도 정확히는 알지 못했다.


그냥 내 생각에는 어머니가 이러신 것 같다.

지금 그냥 피곤해하시는 것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나는 내가 벌어서 저금한 돈이 좋지, 부모님을 남이라고 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다른 사람이 벌어서 나한테 주는 돈은 그렇게 썩 유쾌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만약에 그 돈을 날리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내가 책임을 질 방법이 없다. 고층 빌딩에서 뛰어내리거나 뭐 그런 단순 무식한 방법밖에는 없다.


조만간 어머니께서 마음이 바뀌시기를 간절히 빌어보는 수밖에 없다.

그냥 어머니가 마음이 바뀌시기를 빌어보는 방법 밖에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냥 부모님 돈을 내 돈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동안 나한테 들어간 병원비만 해도 어마어마한 돈인데, 그런 부분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 특히 '상속'이나 '부모님의 돈'에 관련된 부분은 그냥 생각하기도 싫고, 책임지기도 싫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오면 기분이 좋아서 날뛸 놈이 거짓말한다고 이야기를 들었던 게 불과 3주 전이다.


막상 상황이 오니까 좋아서 날뛰기는커녕 그냥 별로 썩 기분이 좋지는 않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흔두 번째 : 아날로그형 인간의 스마트홈 구축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