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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lm Aug 26. 2024

예순세 번째 : 때로는 '답답이'가 나을 때도 있구나

어머니가 나와 아버지 한테 가장 많이 하시는 말

출처 : Freepik


어머니가 아버지와 나에게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이 있다.

이 답답이 하고 리틀 답답아.

무슨 너네는 몸에 칼을 품고 사니?

저 둘은 같은 갓 같은데 좀 다른 답답이야.

사람이 살아야지 왜 거기에서 '곤조(근성의 일본어 표현, 根性(こんじょう); 질긴 근성 등의 뜻으로 쓰임)'를 부려서 불구덩이에 달려들어.

이 융통성이라고는 먼지만큼도 없는 인간들아.


아버지는 그냥 저렇게 어머니가 말씀하시면 웃으셨고, 저는 어릴 때는 그냥 원칙은 지키고 살자고 소리 지르고 그랬는데 요즘은 그냥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제 나이 30 먹어서 없던 융통성 생기면, 엄마, 나 죽어.
안 하던 거 하면 빨리 죽는다며.


그러고 그냥 가족이 다 웃고 말아요.


집에 관련한 모든 일을 다 제가 처리하다가 어머니가 제가 막 체크하고 이런 걸 보여달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뭐 제가 나쁜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A4용지로 300 페이지 조금 넘는 거를 그냥 다 가져다 드렸어요.


어제 그냥 다 읽어보시더군요. 제 생각에는 외우시려고 하는 건지 공부하듯이 보시더군요.


아침에 읽어봤는데 어머니가 저한테 갑자기 이러시더군요.

Calm(가명)이 네가 말한 대로, 순서대로 가야 톱니바퀴 맞듯이 다 맞겠네.
엄마가 달달거린다고 될 일이 아닌 것 같으니 순서대로 가자.
엄마가 미안.
답답이가 하는 게 오히려 시간이 덜 걸리고, 안전한 거구나.


어머니한테 체험학습 시켜드릴 생각은 없었어요. 그냥 나보다 똑똑하시니까 본인이 챙기실 모양이다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매번 그런 생각은 했어요. 일은 다 제가 하는데 계속 독촉을 하시니 정말 돌아버리겠더군요.


제가 그냥 잠시 다녔던 곳에서는 열이 받아서 "그렇게 잘하면 당신이 해보시던가? 기계가 해도 이것보다는 느리겠다." 이러고서 사표 쓸 각오하고 그냥 질러버린 적이 있었는데, 같이 사는 어머니조차도 그러시니까 미치겠더군요.


제가 어머니한테는 이유를 설명할 생각을 안 한 것 같아요.


그런데 차근차근 설명하면 될 일을 너무 키워버렸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제가 대지를 취득하고 집을 짓기 시작하는 이 과정까지 저 나름대로 많은 원칙을 깼고, 정말 과학적으로 이걸 여기에 사용해도 된다고 증명이 되지도 않은 통계학적인 지식이나 여러 해석학적인 부분을 활용하기도 하면서 저도 '원조 답답이'인 우리 아버지만큼은 원칙주의자는 아닌데 그래도 순간순간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건 역시나 원칙이었습니다.


그냥 아침에 갑자기 어머니가 그러셔서 놀라서 글을 적게 됩니다. 아직도 저는 미숙하고 멍청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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