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조카가 물어왔다
외조카가 문자메시지가 왔더군요.
제가 카카오톡은 6명 정도와 소통하는 것 이외에는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 외조카도 친구추가 못하도록 막아버렸어요.
하여튼 외조카가 저한테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우리 학교 ~과목 교수님이 레포트 다 제출한 다음에,
솔루션이라고 게시판에 올려놓은 건데,
여기 밑에 이름이 잘려있어.
이 솔루션 외삼촌이 쓴 거 아니야?
처음에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고 말을 했는데, 외조카가 이메일을 알려달라고 하더니 보내왔어요.
어디서 본 것 같기는 한데 이게 제가 쓴 건지 아닌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더군요.
그런데 우연히 과목명은 동일하지 않지만, 우리 외조카가 배우는 과목의 교과서가 같더군요.
당시에 강의를 들을 때 메모했던 노트가 있었고, 레포트용 노트가 있었어요.
펼쳐보니 제가 쓴 게 맞더군요.
그래서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이거 내가 쓴 게 맞는 것 같기는 한데,
너네 교수 이름 뭐냐?
외조카가 전화가 바로 와서 미주알고주알 이야기 하더군요. 결국은 학점을 잘 받는 방법 그런 것들을 물어보는데 그냥 제 지론대로 이야기했어요.
술 먹고 여자 만날 시간에 문제 하나를 더 풀던지, 생산적인 행동을 해.
나처럼 데이트를 아예 도서관 투어를 하던지 아니면 여자친구 학교 도서관이나 너네 학교 도서관에 데리고 가서 같이 공부를 하던지......
평상시에 어차피 저한테 야자를 하는 외조카라서 그냥 욕을 하더군요.
웃고 말았어요.
그냥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는 밥도 안 먹냐?
나는 혼자 밥 못 먹으니까 같이 밥이나 먹자.
이러셔서 가방 싸고 나왔던 기억도 납니다.
그러고 나서 병원에 가는 횟수가 늘어나고, 심지어 신경계통 질환이 너무 크게 와서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기간에 만약에 월-화-수 이렇게 시험을 보면 목-금이 비니까 그때 국제선을 타고 외국에 있는 병원에 가서 검사도 받고......
그렇게 바쁘게 살아왔고, 잠시만 버티자고 한 게 어쩌다 보니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버린 것 같은데, 그냥 좋은 과거를 제외하고는 잊어버리고 싶습니다.
저한테는 과거의 90%는 별로 득이 되지 않는 과거거든요.
나머지 10%가 저를 지탱해 주는데, 저 레포트도 저한테는 그 나머지 10%가 아니라 득이 되지 않는 90%에 속하는 과거인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여기서 실명을 밝히기는 뭐 하지만, 저 교수님은 왜 저러시는지 정말 이해가 안 되는데 학교를 옮기셨으면 좀 달라지셔야 하는 건 아닌지...... 각자의 생존방법은 다르니까 뭐 모르겠습니다.
외조카가 우리 외삼촌이 누구라고 이야기하겠다는데,
마음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외조카의 선택일 테니까요.
하여튼 기분이 참 싱숭생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