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alm Oct 06. 2024

[20241006] 이메일 그리고 전화

나를 수술해 주신 선생님으로부터 이메일이 왔고, 통화도 하게 되었다

출처 : iconfinder


수술을 받은 지도 시간이 오래되었다.


서울에 속칭 '빅 5'라고 하는 병원에서 나를 그냥 던져버렸다. 그 당시에 내 주치의 선생님이 제일 당황을 가장 많이 했다. 자신의 모교 병원에서 조차도 던져버렸고 그래서 나는 당시에 해외에서 거주할 당시에 알고 지내던 의사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고, 어머니는 어머니 친구분들한테 연락을 돌렸다.


내 의무기록 차트가 미국을 포함한 10여 개 국가의 큰 병원으로 뿌려졌다.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주를 이루었고, 하겠다고 하는 곳에서도 내가 앓고 있는 다른 병을 진정시켜 놓고 판단을 하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리고 수술 비용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만 말하기는 좀 그렇고, 해외에서 수술을 받기 위해서 수술비만 3억이 조금 넘어가는 돈을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내가 앓고 있었던 병 자체가 희귀하기도 했지만, 케이스 자체가 많지 않기도 하고, 부위 자체가 워낙 접근이 어려워서 그냥 죽을 날을 받아놓고 기다리라는 식이었다.


그래서 내 주치의가 건너 건너 수술을 해주실 선생님을 알아봐 주셨고, 나는 수도권 밖에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원래 3차로 쪼개서 수술을 할 예정이었지만, 의사 선생님께서 어머니께 다시 손을 대면 장담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한 번에 끝내는 것을 시도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리자마자 어머니는 의사 선생님께 단서를 다셨다.

하다가 애가 죽을 것 같으면,
그냥 그만하고 나오시고,
상태가 괜찮으면 원하시는 대로 해주세요.


수술은 예상시간을 뛰어넘어서 계속되었고, 사실 나도 살고 싶었다.


치료를 제대로 받아야 할 시기에 나를 최대한 방해했던 선생 자식에게 복수하는 방법은 내가 살아남아서 어떻게든 사적복수라도 해야겠다는 심정이었다. 의사 선생님한테도 말씀을 드렸다. 의사 선생님께서도 남은 인생은 내가 편하게 살 수 있도록 자신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셨다.


보통 수술을 운 좋아서 받더라도 재발의 확률이 50%가 넘는 병이지만, 지금 나는 단 1번의 재발 없이 영상검사를 해보면 정말 교과서에 나온 정상인의 사진과 거의 흡사하다. 수술한 흔적은 있지만, 그냥 정상이다.


의사 선생님과는 항상 이메일로 1달에 1번은 연락을 한다. 거리가 멀어서 자주 뵙기도 어렵고, 나를 수술하고 나서 의사 선생님이 병원을 옮기신 건 아니지만, 여러 가지 직책을 맡으시면서 바빠지신 부분도 있었다.


그래도 서울에 오시면 나를 부르시고 만나기도 했다.


이메일로 잘 지내냐고 먼저 메일을 주셔서 대답을 했고, 그냥 이사를 갈 계획이고, 그 외에는 신상의 변화는 없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서 통화를 하게 되었다.


의사 선생님께 대화를 하다가 그냥 이렇게 말씀드렸다.

제가 있는 상황과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하면서 사는 방법 밖에 없는 것 같아요.
부모님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셨던 분들이 아니셔서,
저는 제가 원하는 일을 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
가급적이면 금전적인 부분과 좀 거리를 두고 살고 싶은데,
그게 마음같이 되지 않는 것 같아서 심정적으로 힘은 들어요.

그래도 정말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지 않는 이상은 계속 살아가야 하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서 작은 일에 만족하는 방법을 좀 알아가고 싶어요.


나이가 들고 이제 나는 진로를 결정해야 할 나이가 아니라 현실과 타협을 해야 할 나이가 와버린 것 같았다.


의사 선생님은 언제나 응원한다고 말씀하시고, 요즘 대학병원들이 난리니까 절대로 아프지 말라고 하는 말로 전화를 마무리하셨다.


하나의 고비만 넘으면 승부를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나이는 지나버렸다.

그리고 누구 말대로 내가 탐욕에 쩔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고 객기를 부리는 지도 모른다.


그냥 누군가에게 존경을 받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없다.


최고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그렇다고 초중등 교사들처럼 철밥통이 되기는 싫었다.


하여튼 지금 나에게 복권 하나는 당첨이 되었다.
그런데 복권 2개를 연달아 당첨되기를 바라는 나 자신이
정말 한심해 보이기도 하고,
평생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크게 아프면서 살아온 나 자신이
과연 해낼 수 있는 일들을 내가 시도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들이 몰려오는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41005] 저승이 아니라 지옥이라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