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 10대를 잊지 못한다면, 죽음을 끼고 살수 밖에 없다고 하셨다
제가 의학을 숭배하는 것은 아닌데, 의도치 않게 Cleveland Clinic의 그림을 자꾸 발췌하는 것 같습니다. 궁금한 게 생기면 자주 찾아서 보는 편인데, 내용이 간결하고 전문가의 주석이 달려있어서 이해하기가 쉬운 것 같아 그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요즘도 저는 집을 짓는 일에 대한 부분과 시험공부를 같이 해나갑니다.
매일매일이 불안합니다. 그리고 외삼촌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도 이제는 너무 죄송해서 제가 먼저 연락을 드리지 못하겠더군요.
이상하게 저는 1) 어머니 은사님 2) 지도교수님 3)老교수님 4) 철학 교수님 5) 가장 친한 동기 1 6) 가장 친한 동기 2 등 연락을 해야 할 사람은 많은데, 미안하면 연락을 못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심지어 어머니 은사님과 지도교수님께는 손 편지를 각각 3통씩이나 써놨는데, 우체국에 가서 보낼 생각도 못하고 그냥 적기만 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저를 수술해 주신 선생님께서 금요일에 이메일로 저한테 이렇게 오셨더군요.
Calm(가명), 내가 핸드폰을 바꾸다가 전화번호가 다 없어져서 이메일 보면 주말이라도 상관없으니 000-0000-0000으로 전화
처음에 전화를 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엄청 고민했어요.
이제 저를 수술해 주신 선생님도 은퇴를 하실 나이가 되셨고, 제가 다시 수술했던 곳에 문제가 생기면, 대한민국에서는 저를 수술해 줄 의사는 없어집니다. 물론 수술해 주신 선생님이야 자기가 살아있는 동안에 손만 멀쩡하다면 재수술할 상황이 온다면 하겠다고는 하시지만, 일단 재수술을 하지 않기 위해서 수술을 할 당시에 굉장히 광범위하게 수술을 했고, 아직까지 멀쩡 하다는 건 재수술을 할 상황은 안 벌어진다는 게 맞다고 볼 수는 있습니다.
그냥 죄송하니까 제가 할 말도 없고, 심지어 지도교수님 같은 경우에는 제가 졸업하고 학교에 가니까 갑자기 펑펑 우셔서
내가 저 사람한테 무슨 존재이길래,
저 대단한 사람 눈에서 눈물 쏟게 만들고 있나?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 의사 선생님께 전화를 드리니 의사 선생님이 저한테 이렇게 말씀을 하시더군요.
전에는 이메일 바로 받더니만, 이메일 바뀐 줄 알았잖아.
그냥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의사 선생님은 저를 수술해 주시고 그 후로 한 번도 변하지 않으셨고, 그냥 항상 제가 병으로 죽기보다는 그냥 신변을 비관해서 안 좋은 선택을 하실까 봐 그게 제일 걱정이라고 하셨고, 지금도 그러십니다.
의사 선생님이 저한테 말씀을 하시더군요. 이 선생님은 제가 500페이지가 넘는 차트를 복사해서 갔을 때, 그거를 전부 다 읽어보셨더군요. 저를 입원시키신 다음에 그날 회진을 새벽 1시에 오셨나? 그래서 제가 잠을 안 자고 있으니까, 저한테 잠깐 병실 밖으로 나와보라고 하셔서, 간호사님께 이야기하고, 교수님 연구실에 가서 2시간 정도 이야기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여튼 요즘은 그냥 몸이 좀 안 좋아서 약을 먹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 빼고는 그냥 정신적인 문제가 조금 힘들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저한테 말씀을 해주시더군요.
다시 (특정 신체기관이) 고장 날 일도 없겠지만,
다시 고장 나면 죽는다는 생각은 하지 마라.
그리고 지금 10대의 기억을 조금씩이라도 지워나가지 않으면,
죽음을 끼고 살아야 할 텐데,
조금씩이라도 좀 휴지통에 버리면서 살아보자.
그리고 나도 종교가 없어서 뭐라고 말은 못 하겠지만,
너한테 그렇게 해놓고 살아가는 사람들 인생이 똑바로 가겠니?
워낙 강렬한 기억이라 힘들지만, 그렇게 해보겠다고 말은 하면서도 저도 모르는 사이에 과거가 저를 삼켜버리는 경우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예전에는 의사 선생님들이 저런 이야기를 하면 그냥 허울 좋은 소리를 한다고 생각만 해왔는데, 요즘은
그냥 죽어버리면 끝은 나나?
의사들이 바라보는 저는 이렇습니다.
저 사람은 정말 운이 좋거나,
아니면 돈을 들이부어서 살아난 사람
또래가 바라보는 저는 이렇습니다.
쟤는 무슨 생각하면서 사는지는 모르겠다.
굳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하는지 알 필요가 있어서 궁금해하는 건지 트집을 잡아서 조리를 돌리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는 의사표시를 비교적 확실히 하면서 잘 넘겨온 것 같아요.
그런데 자꾸 지나가는 생각까지 틀어막을 수는 없어서 정말 별 행동을 다 해본 것 같아요.
심리안정 관련한 프로그램이라는 프로그램은 다 해본 것 같고, 그냥 안정이 안 되는 느낌이 들어서 지금도 이러고 있지만, 시간이 해결해 줄 것 같기는 한데, 지금 저한테는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정말 말 그대로 혼란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죽음을 끼고 살아가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전부 피하지 못하거나 이겨낼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이 와서 잘못된 선택도 하는 게 아닌가 생각은 해봅니다. 하루하루 조금 편안해지기를 바라면서 그냥 브런치에 오늘 어지러운 감정을 쏟아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