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서 많이 마음에 드셨던 모양입니다
아침에 잠도 못 자고 그래서 그냥 어머니랑 차를 마시는데, 어머니께서 자꾸 미용사님 이야기를 하셨다.
일단 좀 간략한 배경설명을 하자면......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별명이 "베토벤"일만큼 심한 곱슬머리이시고, 어머니는 머리숱이 지금도 많으셔서 머리가 많이 길어지시면 목에 통증이 올 정도로 모발이 두껍기까지 한 상황이신데요. 저는 예전에 유전공학시간에 제 지도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부모님을 정확히 반반 섞어놔서 공동우성이 발현되는 식으로 머리숱은 쓸데없이 많은 데다가 곱슬까지 있고, 모발을 엄청 두꺼운 편입니다.
그래서 이사를 다니면서도 머리를 자를 때가 되면 전에 살던 동네에 가거나 아니면 그냥 방치를 해버리는 편입니다.
그러던 중에 4년 정도 지금 사는 동네에서 정착을 한 미용실에 미용사 분이 있으신데, 그분이 미용실을 옮기시면 우리 가족도 다 같이 옮깁니다.
외사촌누나 중에서 미용사가 있기 때문에 그 누나도 머리숱 많은 건 좋은데 특히 너는 더 어려운 머리라고 하시더군요.
미용사님이 제 또래는 아니고 아마 제가 알기로는 5살 정도 차이가 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떤 이미지냐면......
굉장히 침착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그런 건지 어머니가 대놓고 미용사 님하고 좀 잘해보라고, 저런 사람 찾기 힘들다고 하십니다.
그에 반해서 마침 오늘 외조카가 학교에 안 가는 날이라 어제 우리 집에서 자는 바람에 이모가 집에 있으셨는데, 우리 이모는 어머니께 막말을 하시더군요.
너는 니 아들 아무한테나 주려고,
그렇게 공부하고 돈 벌어놨냐?
또라이도 아니고.
제가 그냥 좀 어머니한테 놀란 건 어머니 말씀을 듣고 나서였어요.
언니, 길거리에서 과일 팔고 나물 파는 사람들이 우습지?
그 사람들은 자기가 노상에서 노력한 만큼 돈 벌어.
한방 이런 거를 노리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그리고 솔직히 우리 집은 뭐가 그렇게 대단하냐?
우리 집은 가지가 너무 많으니,
그중에서 썩은 가지 하나 정도 나올 수도 있는 거지.
그 썩은 가지가 나일수도 있고, 언니일 수도 있고,
무슨 조선시대도 아니고 직업으로 사람을 판단하냐?
나는 Calm(가명)이 좋다고 하면 직업하고 조건 상관없어.
단, 내 아들이지만 Calm(가명)이 지나치게 현실적인 데다가 갑자기 냉정해지는 거 때문에 고민이지.
우선 서로 대화가 통하고 둘만 잘 살면 난 자식이 언니처럼 많지가 않아서,
그냥 돈 다 주고 난 훌훌 놀러나 다녀야지.
Calm(가명)이 돈사고 칠 애도 아니고......
그리고 난 우리 조카들처럼 방방 떠는 사람보다 침착한 사람이 좋아.
솔직히 제가 연애할 때나 누가 나를 좋다고 합디다라고 말을 해도 어머니가 별로...... 항상 니 맘대로 해라 이런 식이셔서 어머니 생각 자체를 모르고 있었어요.
미용사님은 외모가 출중하셔서 저 같은 건 쳐다도 안 볼 거라고 이야기드렸어요. 그리고 내가 연애를 했던 것도 상대방이 기다리다가 지쳐서 먼저 사귀자고 했던 케이스라 먼저 말할 자신도 없고, 괜히 남의 집 귀한 딸 인생 말아먹게 하는 거 아니냐고도 말씀드렸어요.
어머니께서 저한테 딱 이 한마디만 하시더군요.
나랑 그래도 나이차이가 너무 적은 건 좀 그러니까 그것만 좀 참고해.
제가 그렇다고 환갑인 분하고 만날 생각은 없다고 분명히 말씀은 드렸어요.
하여튼 생각보다 다양한 생각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