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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lm May 06. 2024

마흔네 번째 : 장래희망이 꼭 있어야 하나요?

질문에 대답을 했다가 부모님이 학교로 호출당했던 이유

아마 저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 '꿈'이라는 것을 다 가지게 됩니다.


저는 꿈을 비교적 늦게 가지게 되었는데, 아버지의 영향이 컸습니다. 아버지가 퇴근하시고 집에 오시면 저녁식사를 항상 가족이 모여서 했는데 그때마다 이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몰라.
그런데 몇 년 후에 뭐를 하게 될지 어떻게 알겠냐?


항상 현실인식, 요즘 말로는 '팩트폭격=팩폭'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비교적 지금도 저는 현실인식을 빠르게 하는 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외국에 거주할 때인데, 지금도 정확히 기억이 나요.


선생님이 저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봤을 때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길을 가다가 배가 고프면 뭐를 사 먹을 수 있고, 비가 오면 우산을 살 수 있을 정도로 살고 싶어요.


정확히 이렇게 대답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학교에 호출되셨던 기억이 나고, 제가 약간 어디 문제가 있는 게 아닌지 당시에 학교 차원에서 의사 선생님들을 부르는 사태까지 벌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대한민국이 아니고 외국이었기 때문에 더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다행히 당시에 저는 큰 문제는 없고 그냥 가정환경에 의해 벌어진 해프닝으로 끝이 났어요.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아버지가 저한테 "미안하다"라고 하시면서, 뭐라도 하고 싶은 게 없는지 계속 말씀을 하시더군요. 그래서 뭐가 있을까 아버지랑 한 1년 정도 고민을 한 것 같아요.


당시에는 그냥 생활이 편안하고, 저도 불편한 게 없어서 꼭 뭘 해야 하는 건지 궁금하기도 했고, 세상이 변하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생각을 해보니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비행기 탑승 횟수가 월등하게 많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승무원에 대한 환상이 빨리 깨져버리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당시에 담배를 피우셨는데,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승무원들이 쪼르르 나와요. 그러면 쓰레기통처럼 생긴 재떨이 주변에 모여서 아버지 옆에서 담배를 피우던 남녀 승무원들과 파일럿들이 공항에서 많았어요. 그러면서 저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생각을 항상 했었어요. 당시에 담배가 건강에 나쁘다는 사실은 잘 몰랐고, 일단 담배냄새를 맡고 나면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스껍고 심지어 구토를 실제로 한 적도 많아요. 담배를 피우는 것 자체가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외국에 살 때나 한국에 살 때나 아버지는 집 속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으셨어요.


하여튼 당시에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다가 한국에 잠깐 올 일이 있어서 비행기를 탔는데, 아버지가 비행기 운전하는 사람이 '조종사'라고 말씀을 해주셔서 막연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릴 때라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자동차처럼 '핸들을 잡고 그냥 밟으면 비행기도 가나보다'정도 생각을 하고 있지도 않은 꿈을 억지로 만든 건데요. 이것도 오래가지는 않았어요.


당시에 좀 큰 수술을 받게 되었어요. 상처가 좀 있어서 의사 선생님이 전투기를 모는 조종사는 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해주시더군요. 그러고서 첫 번째 꿈은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별게 없다가 '비행기를 만드는 사람'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아버지께 여쭈어보니 '박사학위'라는 것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을 해주시더군요.


그래서 아버지는 꿈을 '이학박사 아니면 공학박사'라고 말하면 된다고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이공계열 전공을 해서 박사를 받고 항공 관련 산업에 종사하면 된다는 뜻이었겠죠?


러고 나서 제 꿈은 변한 적이 없습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 바뀌는 상황은 발생했는데, 그건 조금 사연이 깁니다. 석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서 대학원을 가야 하는데, 제 지도교수님과 문제가 있었던게 아니라 다른 교수하고 문제가 생겼어요. 첫 단추는 잘 끼웠지만, 그 다음 단추들을 다 잘못끼워버린거죠. 온갖 방해공작이 시작되고, 저와 친하다는 이유로 피해를 보는 친구들까지 생깁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길을 선택했고, 제 지도교수님은 학교를 옮기게 되고 여러가지 일이 벌어졌네요. 그러면서 회의감이 들면서 그냥 내 꿈을 이루는 것은 요원(遙遠)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저는 결혼을 하지도 않았고,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결혼을 하게 되어서 자식이 생기게 된다면, 우리 아버지보다 아이를 위해서 더 기다려줄 생각입니다. 우리 아버지야 학교에 호출도 당하게 되고, 피곤한 일이 벌어지니까 저한테 그냥 "이렇다고 말하고 다녀라"라고 하셨지만, 저는 그냥 기다려주고 싶어요.


그리고 제 의견을 관철시키기보다 아이에게 하고 싶은 일이 뭔지 그리고 학교는 계속 다니고 싶은지 계속 물어보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만들어주고 싶어요. 그러면 어느날은 다니고 싶지 않을 수도 있고, 어느날은 가고 싶고 그런 일들이 반복이 될테고 분명히 자신이 자주적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시기가 올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피곤하다고 아이에게 미리 진로를 결정해주거나 아이에게 평생 영향을 미칠 결정을 제가 대신해주고 싶지는 않아요. TV를 보면서 유명인들이 아이를 키우거나, 정신과 의사들이 나와서 아이에게 조언을 하거나 여러가지 평가를 하는데, 뭔가 답을 정해놓고 강요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저는 이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Case-by-case(개별적인)


사람마다 다 다른데, 그것을 어떤 기준에 끼워맞춘다는게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불성설(語不成說) : 조금도 사리에 맞지 아니함.(출처 : 네이버 사전 국어사전)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서라도 바뀔 수 있는게 장래희망이므로 부모 혹은 바라봐줘야 하는 사람은 무조건 기다려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렇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남이 대신 살아줄 수가 없거든요.
그런데 제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느낀건데, 인생을 부모가 혹은 선생이 대신 살아주는 애들이 있기는 하더군요.
다른 사람을 밟아가면서요.
 그런 아이들이 과연 나중에 자라서 똑바로 된 사람이 될까요?
그저 괴물을 양산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부터 작금(昨今)의 부모와 선생들은 새로운 괴물들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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