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정리 하다...
여름과 가을 사이 갑자기 겨울로 가는 듯 날씨의 기운이 너무 맹렬하였다.
반팔도 더워하던 날이 무색할 만큼 갑자기 찾아온 이른 추위라니 몸이 움츠러든다.
옷장의 자리를 서둘러 겨울옷에게 내어줄 때가 되었나 보다.
몸으로 느끼는 추위는 계절을 앞서 저만치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늦은 봄 서둘러 정리했던 비닐팩 속 밀봉된 겨울옷을 하나씩 꺼내어 본다.
한동안 입지 않을 거라고 꽁꽁 싸맸던 옷들이 하나씩 꺼내어진다.
분명 넣기 전에 깨끗이 세탁하고 제습제도 꼼꼼히 넣어 정리했건만 차단됐던 시간만큼의 무언가로 채워진
새로운 냄새가 느껴진다.
옷을 그냥 꺼내어 여름옷과 자리바꿈을 하려던 생각도 무안하게 세탁을 다시 해야 할 이유를 그 냄새가 설명해 주는 듯하다.
어째 옷장 속에 고이 있었는데, 시간에서 냄새가 밴 것일까?
장롱 속에서 나온 녀석들은 부피가 큰 겨울옷이라 비낼팩의 개수도 제법 많다.
어떤 순서로 세탁을 해주고 어느 자리에 넣어 주어야 하나 머릿속 생각이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추위를 많이 타는 딸아이의 옷을 우선순위로 정하고 밀봉된 비닐팩을 열어 하나씩 옷을 꺼내어 놓는다.
부피를 줄이려 밀봉을 한 비닐팩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옷가지들이 자리하고 있다.
한 번에 한 팩씩 세탁하려던 계획은 어림없을 만큼의 겨울옷의 양으로 인해 헛된 꿈이 되어 버린다.
대강 급한 것의 순서를 정하여 세탁기를 돌리고 옷장 속 여름옷을 꺼내어 겨울옷과 자리바꿈을 해주었다.
여름옷이 휑덩그레 빠져나간 곳에 자리한 알 수 없는 먼지의 흔적들...
옷장도 닦아주고 정리해 주어야 비로소 옷바꿈을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겨울 동안 이너로 입을 만한 티셔츠 몇 개만 남기고 모두 비닐팩 안으로 들어간다.
계절은 지났지만 몇 개의 여름옷은 겨울에도 또다시 쓸모를 할터이다.
마치 여름옷과 자리바꿈을 했던 두툼한 옷들이 몇 개 남아 여름옷과 자리를 같이 할 때처럼 일정한 개수의
물물교환 같달까?
옷장정리를 하며 여러 생각에 젖어든다.
시간은 나에게만 흐른 것이 아니라 내 모든 것에도 흐르고 있구나.
채워지고 빠져나간 그 자리엔 늘 시간이란 녀석이 빈틈없이 자리하고 있구나.
옷장마저 세상에 존재감을 뽐내고 있구나 새삼스런 깨달음이다.
비워도 채워도 그곳엔 언제나 무언가가 있다는 새삼스런 깨달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