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공지영>을 읽고
혜완, 경혜, 영선은 대학교 동기였다. 셋다 모두 공부도 잘했고 좋은 대학을 나왔다. 하지만 20대 중후반에 결혼한 세명은 결혼 전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간다.
이야기는 경혜가 혜완에게 전화를 걸어 영선이 자살시도를 했고, 현재 병원에 입원 중이라는 소식을 전하며 시작한다. 영선은 셋 중에 가장 착하고 얌전한 친구였다. 자살시도와는 전혀 동떨어진 사람이고, 그런 영선이 자살하려 했다는 사실에 둘 다 “왜??”라는 물음이 먼저 떠오른다.
영선이의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영선은 학교선배를 만나 결혼했다. 둘은 파리로 유학도 갔지만 생활고에 영선은 학업을 중단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남편 뒷바라지를 했다. 한국에 돌아와 남편의 영화는 인기를 얻었고 박감독으로 잘 나가게 되어 더 이상의 생활고는 없어 둘은 잘 사는 듯 보였다. 하지만 영선은 자살을 하려 했고, 박감독을 통해 들은 이야기는 영선은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알코올중독에 남편을 의심한다는 것이었다.
혜완은 이혼한 여성이다.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지만 불의의 사고로 아이를 잃고 만다. 일을 꼭 하고 싶던 혜완은 아이가 어릴 때 일을 다시 시작했다. 남편의 반대는 심했지만, 둘 다 잘할 자신도 있었고, 꼭 여자가 집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싫었다. 아이를 봐주시는 아주머니가 그날따라 늦었고, 남편은 아내가 나가는 것이 싫어 일부러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아 혜완은 아이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아이를 봐주시는 아주머니가 10 발자국 앞에 있었고, 마침 타야 하는 버스가 와서 아이에게 아주머니께 가라 말하고 돌아서 길을 황급히 건넌다. 엄마를 따라 길을 건너던 아이는 트럭에 치어 결국엔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혜완은 아이를 죽인 엄마가 되었다.
아이가 죽고 한참 지난 어느 날 남편과 모임에 나갔다 웃긴 얘기에 웃었던 혜완은 집에 와서 남편에게 구타와 강간을 당한다. 그리고 이혼을 하게 된다.
경혜는 아나운서를 준비하다 첫 번째 해에 떨어지고 만다. 다음 해 준비를 하면서 살을 쫙 빼고 합격을 한다. 실력보다는 다이어트 성공으로 입사한 것이라고 역시 살을 빼야 한다는 소문이 더 빠르게 퍼졌다. 아나운서 생활을 하다 의사남편을 만나 결혼하였지만 남편은 밖으로만 돈다. 남편은 자신은 이혼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경혜와 잘 살 생각도 없으니 경혜에게도 원하는 대로 살라고 한다. 비참하고 힘들었지만 경혜는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관둘생각이 없다.
영선에게 들은 그들의 부부생활은 영선이 왜 자살을 하려고 했는지 납득이 되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해치려는 방법이 잘못되었음을 어느 누구도 모르진 않다. 영선은 결국 자신의 목숨을 끊고 말고, 혜완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지만, 그가 대학동기이며 전남편과도 아는 사이였고 총각이 이혼녀와 결혼을 할 때 남편될 집에서의 반대와 맞설 용기도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아 망설이기만 한다. 하지만 전남편은 이미 재혼을 해서 아이도 낳고 살고 있었다. 경혜는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만, 간간히 일탈을 하며 그 생활을 유지해 간다.
공지영작가의 소설은 예전에 여러 권을 읽었었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 도가니가 많이 떠올랐다. 사실 두 이야기는 적나라한 현실이라는 점 외에는 공통점이 없지만, 그 점 때문에 나는 도가니가 많이 떠오른 것 같다. 도가니를 읽으면서는 이런 일도 일어나다니 라는 사실에 놀랐었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읽으면서는 사회에 팽배해 있는 가부장적인 모습과 그 안에서 고통인지도 모르면서 살아가는 여성들이 나를 포함해서 얼마나 많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도 결혼을 하고 내가 생각했던 결혼생활과 판이하게 다른 모습에 나 스스로 적응해 보기 위해 때로는 그 상황을 바꾸어보기 위해 엄청난 몸부림을 쳤었다. 그러는 와중에 '너만 유별나게 왜 그래?'라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었고, '내가 이상한 건가?'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했었다. 나만 이상한 것이라면 내가 바뀌어야 한다고도 생각했지만, 아무리 바꿔서 생각해보려고 해도 저 밑에서 꿈틀꿈틀 올라오는 불편한 감정을 무시하기가 힘들어 괴로워했었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분명하게 역할분담이 이루어져야 하는 부분에서는 사회적인 통념과 상충하는 부분들이 없어 편안함을 느끼기도 했었다. 하지만, 가부장제도에서 서서히 변화하고 있는 많은 부분에서는 역할분담이 확실하게 이루어지기 힘들었고, 어느 정도는 잘 나누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그 일에 메인이 되어야만 했고, 그것에서 일어나는 충돌을 줄이기가 힘들었었다.
어느 정도 조정을 통해 맞춰온 부분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부분은 우리 가정에서 현재진행 중이다. 어쩔 땐 그냥 눈 감기도 하고, 어쩔 땐 나에게 떨어지는 혜택에 다른 불편함은 감수하며 모른 척 혜택을 받기도 하고, 어쩔 땐 파르르 떨며 분개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빠져들어서 읽었던 여러 정신분석학책에서 해답을 찾기도 하였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아 오늘도 책을 뒤적이게 된다. 나는 도대체 왜 이런 생각을 하며 사는 것이고, 왜 이런 행동을 반복하는 것일까? 오늘도 나에게 질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