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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야날자 Sep 18. 2024

삶은 지랄 맞다, 하지만 살아볼 만하다

<이 지랄 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를 읽고


책을 읽고 슬펐고 뜨거웠으며,
아리고 기운이 났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전한다.
그녀의 훤칠한 글 앞에서 내가 바짝 쫄았다는 사실까지도
이병률 (시인, 여행작가)



나는 보통 책의 추천사를 읽지 않는 편이다. 대부분 추천사는 책의 맨 앞을 차지하는 편이고, 추천사를 읽으면 추천한 사람이 책을 읽은 감상평에 영향을 받으며 책을 읽게 되는데, 그게 싫어서 읽지 않는다. 이 책의 추천사도 맨 앞장에 있지만, 읽지 않았었는데, 맨 뒤에 한 번 더 나와서 읽어보게 되었고, 그 글은 책의 표지에도 쓰여있었다. 내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봐서 안 보였을 뿐이었지만, 책을 덮기 전에 읽은 이병률 시인의 추천사는 책을 덮기 전에 긴 공감을 불러왔다.



장애인.. 미국에서 살면서 장애인을 한국보다는 더 쉽게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주 보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방법은 더더욱 없다. 소설이나 영화로 가끔씩 나오기는 하지만, 영화나 소설의 이야기로 보고 들었을 뿐이지, 그들의 직접적인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예전에 이길보라라는 저자의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녀의 부모님은 농인이다. 농인의 자식으로 사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도 내가 아는 세상이 참 좁다 생각했는데, 시력을 잃은 조승리라는 마사지사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가 보는 시선이 얼마나 작았는지 다시 한번 되뇌어보게 되었다.



이병률 시인의 추천사에 이런 말도 나온다. 그녀는 심연에 도착한 것 같다고. 모든 예술가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 하는, 어떤 경지로의 찬란한 도착인 것 같다고.. "심연"이라는 저 단어가 크게 와닿았다. 자신의 상황에 얼마나 낙담해 봤고, 얼마나 상처를 입어봤고, 얼마나 넘어져 봤을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나는 왜 '이 지랄 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라는 이 책에 그렇게 끌려서 읽었을까? 책을 잡고 놓지를 못했다. 마찬가지로 마지막 장을 넘기고는 바로 노트북을 켰다. 뭐라도 적어야만 할 것 같은데, 그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기가 힘들다. 그녀가 삶을 바라보는 시선과 삶을 헤쳐나가는 태도 때문이었을까? 감당하기 힘든 상황들에 너무 많이 마음이 무너졌을 그녀가 보였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그녀도 보인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한발 앞으로 내딛는 그녀도 보인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그녀도 보이고, 실망하지 않기 위해 기대를 저버리는 그녀도 보인다. 엄마 때문에 기뻐하기도 슬퍼하기도 상처받기도 아파하기도 하는 그녀도 보인다.



몇 차례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그래도 생각보다 담담히 적어 내려가는 그녀의 글은 눈물이 앞을 가려 책을 읽지 못할 정도로 만들지는 않았다. 모든 것이 적당했다. 슬프긴 하지만, 너무 슬픔에 잠식해가지 않는 그녀의 글들이 슬픔에만 빠지지 않고 글에 빠져 읽게 만들었다.



가끔 나는 나의 불행을 과장해서 말하곤 한다. 특히 들어줬으면 하는 이에게는 더 그런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느끼지만, 씨알도 안 먹힌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엔 나만 그 슬픔에 잠식되어 있다는 것이다. 남들이 알아줬으면 하면서 더 크게 소리쳐보지만, 내가 과장하고 있다는 걸 다 아는 듯이 멀리 도망간다. 그녀의 글은 그 정도를 아는 것 같았다. 그리고 슬픔에서 빠르게 빠져나온다. 그리고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그 자리에 멈춰서 울게 만들지 않는다. 눈물은 흐르지만 눈물을 닦고 앞으로 나아가자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 부분이 이 책이 끝날 때까지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든 힘이라 생각된다. 조승리 작가가 이야기꾼이란 것도 한몫한다. 사연 없는 무덤 없다고, 자신들의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야기할 줄 모르거나, 이야기를 해도 너무 자기 방식으로만 얘기해서 듣는 사람이 재미없거나, 이야기를 두서없이 하거나, 이야기를 핵심 없이 한다. 조승리 작가는 자신의 경험도 경험이지만, 이야기를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그 경험에 깊이 들어가서 생각하고, 기억하고,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취향이 모두 다르고, 상황이 모두 다르기에 누군가에게 어떤 책을 읽어보라는 얘기를 잘하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가 무심코 장애인 비하를 얼마나 하는지, 다른 사람의 불행을 얼마나 가볍게 생각하는지, 얼마나 쉽게 내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비난하는지, 얼마나 속물스러운지도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말 이 지랄 맞은 삶들이 쌓여서 축제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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