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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정의 내리는 말들과 다른 사람을 정의 내리는 말들

과연 그 말들은 얼마나 나/상대를 설명할까??

by 나비야날자

초등학교 6학년 때다. 백 점을 받은 아이가 한 명이었던 수학시험(이때는 산수였겠지?)에서 그 한 명이 나였다. 나는 그때까지 수학을 그럭저럭 잘하던 아이였지, 굉장히 잘하던 아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시험으로 모든 게 변했다. 아이들이 나에게 와서 너 수학 잘하는구나라며 말을 했고, 모르는 문제를 가져와서 알려달라고 했다. 선생님들도 지나가며 한 마디씩 했다. 그렇게 나는 수학을 아주 잘하는 아이가 되었다.


수학은 지금도 생각해 보면 다른 과목보다 이해가 잘 되긴 했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여도 문제를 읽으면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가 떠올랐고, 이해가 잘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정도까지였지 특출나진 않았었다. 하지만 그 후로도 비슷한 경험을 몇 번 더 거치고는 나는 수학 잘하는 아이로 굳어졌다. (사실 이것도 고등학교 때까지다. 교과과정을 잘 푸는 정도의 실력이었던 거다.)


원래 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그 말을 많이 들었던 건지, 그 말이 나를 더 잘하는 아이로 자라게 만들었는지는 어떤 것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들이 나를 더 그쪽 방향으로 이끄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에는 이의가 없다. 주변에서 나를 그렇게 지정하면 나는 점점 그런 사람이 되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이 예는 좋은 쪽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좋은 말이었지만, 사실 나쁜 말들이 더 많다. "너는 커서 뭐가 될래?",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네가 그걸 어떻게 해?" 이런 말들은 우리를 움츠려 들게 만든다. 나 스스로 간신히 용기를 쥐어짰지만, 이런 말을 들으면 "역시, 그렇겠지?" 하며 쥐어짠 용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다. 꼭 거의 안 남은 치약을 기합까지 넣어가며 쥐어짰지만, 살짝만 힘을 풀면 다시 쏙 들어가 버리는 것처럼 사라져 버린다.


이것뿐이 아니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아는 양 나를 정의 내릴 때가 있다. 특히 나를 몇 번 안 본 친척 어른들이 나에 대해 정의 내려서 말하곤 한다. "너는 이렇잖아? 너는 이런 거 안 하지?" 아무리 들어도 아니어서, 몇 번을 아니라고 정정해 주곤 했다. 하지만 한사코 나의 말을 부정하며 "네가 뭘 그래? 전혀 아닌데"라고 받아친다. 그리고 다음번에 만나면 또 그 말을 한다. "너는 이렇잖아? 너는 이런 거 안 하지?" 말해도 안 바뀔 것을 알기에 그냥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다른 이야기를 꺼내버린다. 아마도 나를 처음 봤을 때 내가 그런 행동을 그날 했을 테고, 자주 못 만나니 나에 대한 생각이 그렇다고 굳어졌겠구나 이해해 보지만, 나를 그렇게 정의하는 건 여전히 싫다.

사실 이런 일은 먼 친척들과의 관계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가까운 사이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가까이 지내면 그 사람이 반복해서 하는 행동들이 있고, 그 사람은 그렇게 그런 사람으로 정의 내려진다. 반복되는 행동을 했으니 어느 정도 그렇게 정의 내리는 게 그 사람을 설명하는 게 맞기도 하겠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닌데 한쪽 면만을 보고 정의 내려지는 경우가 많다. 가까이 지내는 다양한 그룹에서의 나를 보면 모든 그룹에서 나는 다른 사람인 경우가 많다. 학교 친구들 그룹에서 나는 덤벙거려서 항상 손이 많이 가는 친구였는데, 교회 친구들 그룹에서는 든든하고 언니 같은 친구이기도 했던걸 보면..


누군가를 "저 사람은 그런 사람이야"라고 말을 할 때 신중해야 함을 느낀다. 그런 부분도 있겠지만, 완전히 다른 부분도 당연히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랜 기간 지내며 축척된 그 사람에 대한 정의는 바꾸기가 쉽지 않다. 나 스스로도 남이 나를 정의 내리면 싫어하면서 나는 얼마나 상대방을 정의 내려왔는지 돌아보게 된다.


자신을 바꾸고 싶을 때는 스스로 자신이 되고자 하는 모습을 정의 내려서 말로 여러 번 되풀이하라고 한다. 그렇게 내가 정의를 내리면 나는 그런 모습도 하나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반대로, 내가 힘들어하는 사람을 내가 다르게 정의 내려보면 어떨까? 사실 상대방은 안 바뀔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바뀔 것이다. 결국 내가 믿는 대로 상대방에게 행동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나의 행동이 바뀔 거고, 그럼 정말로 그 사람은 어느샌가 내가 원하던 그런 모습으로 변해있을 수 있다.


정말 힘든 사람 말고, 내가 너를 이 정도까지는 생각해 볼 수 있다 생각하는 사람에게 시도해 보길 바란다. 정말 힘든 사람은 아무리 저 이론을 알아도 내가 내린 그 사람을 다르게 정의 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한두 번 "그래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다"라며 심호흡하며 시도해 보겠지만 "에라이!!"라며 집어던지게 될 것이다. 사실 내가 할 자신이 없어서 해보라는 말을 못 하겠다. 언젠가 혹시라도 내가 정말 힘들었던 사람을 그렇게 해볼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많은 변화를 만들어 냈다면 다시 이곳에 글로 남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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