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개뿔, 더 어렵기만 하잖아
처음 가는 trail을 산행할 때는 중간중간 trail map 앱을 통해 우리가 등산로를 벗어나지 않았는지 체크하면서 간다. 미국에서 등산을 다니면서 한국과 다르다고 느꼈던 가장 큰 부분은 등산로에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에선 등산을 가면 줄줄이 이어진 행렬이 등산로가 어디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미국에선 유명한 주요 관광지를 제외하고는. 등산을 할 때 1시간 동안 다른 사람들을 만날까 말까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길이 좀 애매하거나, 두 갈래의 길이 나타나면 지도를 확인해야 한다. 예전에 지도를 보지 않고 한참을 가다가 뭔가 이상해서 그제야 지도 앱을 꺼내서 봤더니 우리는 우리가 가려던 등산로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다. 점점 해가 지고 있었고, 산속 깊숙이 들어왔는지 핸드폰도 통신망 안에 있지 않아서 전화기가 터지지 않았었다. (한국에선 불가능한 일이지만, 미국에선 전화기가 터지지 않는 곳이 꽤 있다.) 순간 공포감을 느꼈고, 그때부터 지도를 확인하면서 길을 찾아갔고, 예상했던 등산 시간보다 2시간이나 초과해서 등산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렇듯 새로운 곳을 갈 때 지도는 매우 중요하다. 요즘은 운전을 할 때 내비게이션을 이용하여 나의 현재 위치를 확인하며 운전을 하기 때문에, 목적지까지 몇 분이 남았는지, 내 위치가 현재 어디인지 알려주고, 내가 경로를 이탈하면 바로 다른 경로를 알려주며, 편하게 목적지까지 가도록 도와준다. 마찬가지로 등산을 갈 때도 지도를 확인하며,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출발지까지 다시 돌아가려면 얼마나 걸리는지를 알려준다. 인생도 이렇게 가야 하는 길을 알려주는 지도가 있으면 좋겠다. 어느 길이 현재 막히는지, 어느 길이 뻥뻥 뚫려서 잘 가는지, 어디서 꺾으면 되는지, 다 알려주는 지도가 있으면 좋겠다.
최근 나는 새로운 곳으로 한발 나아가기 위해 준비 중이다. 여러 갈림길이 있고 대략의 길에 대한 예상되는 그림은 있지만, 희미하기만 하다. 한 가지 길을 선택해서 거의 한 발을 떼려는 순간, 그 길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황급히 발을 빼고 현재 있던 곳에 다시 서게 되었다. 다른 여러 길들이 있지만, 어디가 좋은지 모르겠다. 너무 완벽하게 나에게 맞는 길을 찾겠다는 생각이 오히려 한 발짝도 떼지 못하게 하고 있다. 사실 나는 "일단 해보고 아니면 말지 뭐"라는 생각을 하고, 선택을 하면서 살아왔던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뭔가를 선택하고 시작하는 것이 나에게는 큰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하지만, 점점 해오던 일의 커리어가 쌓여갈 수 록, 점점 길이 좁아질 수 록, 한발 떼기가 쉽지가 않다. "일단 해보고, 아니면 말지 뭐"라는 생각을 하며 선택하기에는 부담이 커져간다. 선택은 하면 할수록 쉬워지는 줄 알았는데, 하면 할수록 어려워지기만 하다.
거기다 이제는 100세 시대라고 하면서 나이가 들어도 계속 새로운 것을 도전하라고 말한다. 나도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지만, 내 속도보다 더 빠른 남들의 속도와 기술의 발전 속도에 내 새로운 시도들은 너무 보잘것없어 보인다. 도대체 이러한 나의 노력들이 나중에 조금이라도 빛을 보긴 하는 걸까라는 비관적인 생각들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나만 즐거우면 됐지 뭐라고 나를 다독였다가, 그래도 하는 김에 조금이라도 반짝여야지, 그러지 않으면 시간만 낭비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시끄럽게 떠들어 댄다.
나이가 들면 뭔가 다 익숙해지고, 노련해질 줄 알았다. 이런 개뿔, 더 어렵기만 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