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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빈 Nov 18. 2021

“그게 길을 잃은 거야, 바보야.”

제주에서 나를 찾은 이야기


’방향치이긴 하지만 길치는 아니다.‘라고 생각해왔다. 한 번 지나온 길은 잊지 않는다. 금은방 유리창에 너덜너덜하게 붙은 ‘게르마늄 팔찌 판매합니다.’와 같은, 오래된 해장국 집 간판 같은 나름의 이정표를 정해 놓으며 길을 걷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향을 모르고 걷는 탓에 내비게이션 없이 새로운 길에 떨어지면 늘 허둥대고, 지나온 길을 되돌아갈 때도 내내 두리번거린다.


“그게 길을 잃은 거야, 바보야.”



누군가 나를 콕 찔렀다. 나는 여전히 두리번거리며 핵심을 피해 동문서답했다. “무슨 소리야 난 한 번 가본 길은 절대 안 잊어버려.”


 삶을 길을 찾는 일에 비유하는 관습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2년 전 나는, 내가 길을 찾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삶을 살아냈다. 남의 가게나 늘 그 자리에 있는 우체통 같은 것들을 따라 걷듯이 벚꽃 피는 공항이 태몽이라 외교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부모님의 말에 외교관을 꿈꾸고, 좋아하는 연예인을 만나려고 아나운서가 되겠다고 했다. 친구들이 모두 대학을 가니 재수까지 해서 이름을 한 번 더 말해줘야 아는 대학에 갔고, 남들이 취업이 잘되는 과라고 해서 흥미가 없는 과에 들어가 눈에 띄지 않게 학교를 다녔다. 주변에서 다 공무원 준비를 한다고 하길래 휴학을 한 뒤 머리를 질끈 묶고 새벽 버스에선 영단어를, 막차에선 사자성어를 외우며 1년 6개월을 보냈다. 이정표를 따라 걷고 있으니 길을 잃지 않았다고 자부했다. 그렇게 내딛는 한 발자국에만 집중하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향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문득 ‘나는 어디로 가고 있었지?’하는 질문이 떠올랐다. 새벽 버스에서 보던 일출이 무채색 밤의 풍경을 본연의 색으로 되돌리려고 떠오르듯이.


 그 물음에는 당연히 답을 할 수 없었다. 이 여정에는 처음부터 목적지도, 방향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걸 실감하고 나니 가던 길로 계속 걸을 수도, 발걸음을 돌릴 수도 없었다. 우후죽순 세워 놓은 이정표들에 갇혀 길을 잃었다. 내내 부정하던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자 한 걸음 내딛는 것조차 두려워졌다. 주저앉아 엉엉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으나 소리 내어 울지 않는 버릇을 고치지 못한 어른이 된 탓에 겨우 그렁그렁한 눈을 매달고 가만히 멈춰 생각하는 수 밖엔 없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있었나.’


 그 순간 왜 제주도가 떠올랐을까. 한라산 영실에 올라 먼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던, 구름이 발아래에서 만들어지고 흘러가던, 언젠가 여기서 살아봐야겠다고 꿈꾸던 겨우 그런 소망과 기억을 가지고 왜 막연한 질문에 막연한 답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아졌을까.


 무작정 제주로 가는 편도 티켓을 끊어 놓고 대학의 마지막 학기가 끝나버리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내 학사모가 준비된 졸업식에도 가지 않고 도망치듯 제주에 내려갔다. 인형뽑기 집게에 천 원을 넣는 마음으로 불가항력에 몸을 내맡겼다. 비행기가 착륙할 땐 아무것도 없는 너른 사막에 뚝 떨어지는 기분이 들어 눈을 질끈 감기도 했다. 당장 살 집도 직장도, 아는 사람도 없었다. 어쩐지 그제야 숨이 트였다. 시야를 가리던 이정표가 없으니 먼 곳이 보였다. 내가 흘린 것인지 남이 흘린 것인지 알 수 없는 불안을 주워 먹으며 몸집을 행성만큼 부풀린 채, 일상을 숨 막히게 하던 문제들이 서서히 제 크기를 되찾았다.


 자유롭게 자연을 누볐다. 때로는 오름에 기대어 하루를 허비하고, 바다에 안겨 나를 쓸려 보내기도 했다. 멀리 볼 수 있게 되자 좋아하는 일에 번호를 매겨 일기장에 적은 뒤 고이 덮어 두는 악취미를 버리고 경험을 손에 쥐어 보기 시작했다. 한 달을 일해야 벌 수 있는 값의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 월정리 바다 앞 서점 사장님이 건넨 우연하고 다정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내가 찍은 사진을 담은 엽서 책을 팔기도 했으며, 월급을 통장보다 책장 채우는 데 쓰며 교보문고 플래티넘 회원이 돼 보기도 했다. (3개월 동안 책에만 30만 원을 넘게 썼다는 말이다.) 책 끝을 무수히 접고 밑줄을 긋다 보니 이야기를 쓰고 만들고 읽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고, 궁금증을 풀기 위해 제주도 구석구석에서 열리는 북토크와 책모임에 쫓아다니며 모르는 사람들과 모르는 이야기를 했다. 그 모든 것이 계속 '나'를 생각했다. 되고 싶은 나를.


 여전히 목적지는 희미하지만, 출처도 모르는 이정표가 모조리 뽑혀 텅텅 빈 여정엔 맞는 길을 골라야 한다는 부채감도 없다. 불안은 여전히 내 주위를 맴돌고 있으나, 남이 아닌 내 안에서 나온 것이 확실한 불안은 걷고 싶은 방향을 고민하며 삶의 채도를 높여 가는 나를 집어삼킬 수 없다. 두리번거리며 걷다가 넘어질 뻔하는 일이 줄었고, 걷는 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길을 잃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날도 있었다. 길을 잃었다고 말하는 것조차 두렵던 내가.


 나는 방향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은 척하며 길을 헤매고 있었다. 이정표를 따라가고 있으니 길을 잃진 않을 거라는, 모래성 같은 안도감에 머물렀다. 그게 길을 잃은 것과 다르지 않다는 걸 모르고. 여전히 내가 길을 잃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으며 내딛는 걸음의 방향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우기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길을 잃어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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