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이 정체된 회사들은 마케팅 전략의 오류에 빠져있다. 그것을 구체화한 적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만난 전 직장 동료들을 통해서 그 오류에 대해 구체화할 수 있었다.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입니다. CJ채널의 CJ뉴스 사진 발췌
어제 있었던 일을 얘기하자면, 예전 브랜드 마케팅 팀원인 A주임과 B주임을 만났다.
둘을 사내 식당가에서 만났다.
"태리 대리님. 여기 직원들 많이 오는데, 안 민망하세요?"
"웅. 나 그런 거 몰라."
"정말 대. 다. 나. 세. 요"
난 원래... 창피한 것을 잘 모른다. 그러니까 퇴사한 회사 카페 라운지에서 밥도 먹고 누워서 놀고 있었지.
단란하게 떡볶이랑 순대랑 샐러드를 먹었다.
단란하게 먹으면서 단란하게 시작되는 회사의 이야기들.
A주임: 항상 그게 문제예요. 왜 갑자기 이거 하라고 그날 얘기하는지.. 5월 가정의 날 행사가 많을 거 알았으면, 미리 주면 되잖아요!
B주임: 팀장님 원래 맨날 그러잖아요. 갑자기 일 주는 거. 근데 미안하거나 고마운 줄 모름.
나: 분명 위에서 '가정의 달 이벤트라도 해!'라고 툭 던져줘서 한 거일걸? 물론 그걸 생각 못한 팀장 문제도 있지만...
여기서부터 본문으로 들어가는 회사 이야기들.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입니다. 한국금융신문 기사 이미지 발췌
A주임: 그러니까 그것도 답답해요. 미리 본인이 스케줄링해서 챙겨놓으면 몰라도, 이미 본인도 놓친 건데 무리해서 챙기려고 하니까 우리가 스트레스받는 거예요. 그리고 이런 자잘한 행사들 하면 얼마나 매출이 오른다고. 사람들 이런 행사 한다고 그 브랜드 좋게 보는 것도 아니고. 이젠 이런 거 해도 매출이 안 오른다니깐요? 이런 행사를 놓쳐서 매출이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회사도 팀장도 그걸 생각 안 하는 거 같아요.
B주임: 매출 늘리려고 신제품 스큐들 막 늘려놓고 그거 신경 쓰느라 브랜드 시그니처 제품을 신경 못 쓰잖아요. 그게 지금 브랜드가 하락세가 된 원인이에요. 브랜딩을 탄탄하게 하고 시그니처 제품을 잘 되도록 쭉 밀고 나가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중구난방으로 일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잘 되겠냐고요.
나: 맞아! 그게 문제야. 그래서 나도 나왔잖아.
A주임: 이게 눈앞에 놓인 당장의 매출에만 보고 급급하니까 본질을 안 보고 악순환만 반복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장하지 않고 하락세지. 그래서 전 나가고 싶어요.
B주임: 여긴 진짜 가망이 없어. 이 회사는 글렀어.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입니다. 중앙일보 기사 이미지 발췌
회사는 잘 나간다. 규모도 커졌고 복지도 꽤 많이 좋아졌다. TV CF와 비싼 인플루언서도 예전보다 더 많이 할 정도로 예산도 많이 쓴다.
근데도 마케팅 직원들은 퇴사를 생각한다. 브랜드가 하락세가 될 게 보이니까.
실제로 광고 효율도 많이 떨어지고 이전만큼 매출이 가파르게 오르지 않는다.
나 역시도 먼 미래를 봤을 때, 크게 성장할 거란 기대감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퇴사했다.
마케팅 직원들이 봤을 때, 회사의 성장을 막는 요인은 어떤 게 있을까?
이 얘기는 전 회사뿐만 아니라 나에게 컨설팅 문의를 하는 대표님들에게도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마케팅 직원들이 말합니다! 제발 이런 거 하지 마세요! 4가지 전략의 오류]
1. 제품 스큐를 과도하게 늘린 전략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입니다. 이코노믹 리뷰 기사 이미지 발췌
브랜드의 정체성 그 자체인 시그니처 제품이 있다. 하지만 매출의 규모를 늘리고자 수요가 있는 다른 신규 제품들을 우후죽순으로 늘렸다. 예를 들면, 향수 브랜드라면 시그니처 향수 제품을 견고하게 하고 관련된 제품들을 내야 하는데, 생활용품, 헤어제품, 의미 없는 세트들만 무수히 내놓았다. 신규 제품들을 브랜드의 정체성과 관련 있게 마케팅을 풀고 있지만 과연 소비자들은 그렇게 생각할까? 매출 몸집을 늘리고자 우후죽순 내는 신제품들, 여기서 브랜드의 정체성, 개성을 잃는 것이다.
제품 스큐를 늘리면, 시그니처 제품과 브랜딩에 집중 못하고 흩어지는 인력도 생각해야 한다. 기존에 있는 마케팅팀 수는 그대로이다. 근데 한 달에 2~3개씩 신제품이 나온다.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상세페이지, 이벤트 기획, 광고 기획 등 한 달 정도 거쳐서 론칭 기획을 해야 한다. 그럼 기존에 있던 시그니처 제품에 대해 인력이 집중될 수가 없게 된다. 직원들 사이에서도 시그니처 제품이 우선순위에 밀리는데, 소비자들한테 시그니처 제품이 어필이 될까? 스큐를 과도하게 늘리는 전략은 결국엔 브랜드 정체성을 잃는 것이다.
2. 각종 기념일 및 이벤트 행사를 많이 진행하는 전략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이미지 입니다.
우리나라는 참 행사가 많다. 행사가 있는 달엔 마케터들에게 지옥이다. 새로운 이벤트를 기획해야 하기 때문이다. 블랙프라이데이, 밸런타인데이 등 행사를 함으로써 확실하게 매출이 오를 때가 있지만 이렇게 이벤트 효과가 좋을 행사는 분명 1년에 채 5개도 안된다. 널디에서 진행했던 한글의 날 훈민정음 있는 의류 출시나 길리안에서 진행했던 밸런타인데이 맞춤 커플 세트처럼 의미 있는 행사는 도움이 된다. 근데 그게 아니라 단순 할인 행사라면, 사실 안 하는 게 낫다고 본다. 이미 다른 브랜드에서도 할인 행사들을 많이 진행하고 있다.
근데도 떨어진 매출 잡겠다고, 이때라도 할인 이벤트를 해야 하는 상사들이 많다. 매출이 떨어지는 건 다른 데에 원인이 있는데, 안 그래도 부족한 인력을 기념일 이벤트를 한다고 또 분산된다. 그럼 또, 브랜드의 인력은 브랜드 정체성을 잃는 이벤트로 흩어진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내가 원래 하려던 업무 계획이 있었고 이걸 쭉 집중해서 하고 싶은데 갑자기 기념일 챙기라고 하니까 일할 맛이 뚝 떨어진다. 몇 달 전부터 제대로 기획해서 완성도 높은 이벤트를 한 게 아니라, 의무적으로 진행한 이벤트는 소비자들도 안다. 그럼 브랜드의 매력은 더 떨이 지고, 평소 매출은 더 떨어진다. 또 동시에 업무적인 효율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사기도 같이 떨어진다.
3. 브랜드 개성을 놓치고 광고 콘텐츠만 다수 발행하려는 전략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입니다.
광고 콘텐츠를 많이 만들어서 매출 증대를 해야 한다는 전략이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전략은 잘 먹혔다. 근데 지금은 아니다. SNS 광고가 '주'가 되어서는 안 된다. 소비자들도 SNS 광고를 보고 혹하던 시대가 지나갔다. 브랜딩 활동은 꾸준히 다방면으로 진행하되, 매출 전환을 위한 광고 캠페인은 20~30% 정도 힘을 쓰는 것이 좋다.
잠깐 광고 콘텐츠에 대해 말하자면, '이 제품 쓰니까 좋아! 건강해져! 피부 좋아져! 이뻐져! 편해!'라는 식으로 스펙을 늘어놓는 광고 콘텐츠는 이제 소비자들에게 어필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이 제품을 만들기 위해 이런 것을 신경 썼고, 이 제품으로 인해 소비자들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고민한 것에 대한 브랜드 진정성과 브랜드 감성을 전달하는 콘텐츠를 꾸준히 발행해야 한다.
4. 브랜드 품격만 올리려고 하는 전략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입니다.
3번과 연결되는 내용인데, 고가의 제품을 판매했을 때, 설득하기 위해 럭셔리함을 보여주는 광고 콘텐츠만 만드는 전략이다. 사진이나 영상을 고퀄리티로 촬영해서 콘텐츠의 품격을 올린다던가, 제품 디자인을 고급스럽게 만들어서 브랜드의 품격을 올린다는 것이다.
이런 전략이 나쁘지 않다. 고가의 제품을 파는 브랜드라면 당연히 모든 면에서 고퀄리티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데 이건 브랜드 자체가 소비자들의 인식 속에 품격 있는 지를 봐야 한다. 브랜드 시작부터 브랜드의 철학, 그리고 브랜드가 성장해온 발자취 등이 과연 고급스러웠는지, 그리고 그걸 소비자들이 받아들여졌는 지를 봐야 한다. 광고 콘텐츠는 고퀄리티인데 브랜드 자체가 2030에게 친근감 있는 브랜드라면 소비자들은 아마 이 브랜드를 이도 저도 아닌 브랜드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또는 너무 많이 고퀄리티 광고 콘텐츠만 지속적으로 보여주면 소비자들이 익숙해져서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앞에도 말했지만 브랜딩은 다방면적으로 활동해야 한다. 브랜드의 품격을 올리고 싶다면, 광고의 퀄리티만 높이는 것이 아니라 다방면으로 소비자들에게 높아진 브랜드 품격을 어떻게 어필할지 고민해야 한다. 이런 방법론적인 내용 또한 추후에 다룰 예정이다.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회사, 브랜드 론칭을 시작하려고 하는 회사는 지금 내가 이러한 오류에 빠져서 못 헤어 나오고 있는 것은 아닌 지 점검해봤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전 직장 동료들을 만났는데, 퇴사하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이 회사는 아직도 이렇구나... 잠시나마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 그리워 돌아갈까?' 했던 나 자신에게 반성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