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ㆍ정리ㆍ준비
어제는 몇 년 만에 동창 들끼리 시간을 맞추어 즐거운 만남 을 하고 왔다
졸업한 지 30년이 넘었어도 만나면 그 시절 스토리 파먹기 모드로 돌입한다
남학생 이 반ㆍ여학생이 반이었던 과에서 얽히고설킨 사연들은 졸업 후 그 민낯을 드러냈다
나만 모르고 있었던 이야기에 놀라고 그들이 모르는 내 이야기를 꺼내 놓기도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 시절 안에 머물다 온다
한 친구는 졸업 후 수년 후에서야
심지어 결혼날짜까지 받은 남학생 이 그제야 고백 후 떠났다는 믿기 힘든 로맨스를 오늘 모임에서 꺼냈다 그러자 이에 뒤질세라 또 한 친구가 말했다 박모모가 갑자기 연락해 돈 꿔가고 잠수 탄 이야기를~
남 이야기라 재미있게만 들으며 과연 남사친 여사친은 이 세상에 존재하기나 할까 싶었다
형이라고 부르며 중성적 상대들이었지만 선배 들과의 인연 또한 만만치 않았기에 우리들의 추억 놀이는 앞으로도 쭉 이어질 것 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그때 우리 들의 나름 진지했던 그 수많은 선긋기는 다 어긋났고 삶은 다른 곳에서 시작되었다
그때는 삶이 얼마나 다양하게 흩어지는 줄 모르고 사랑이라는 연애감정 이 모든 것인 줄 알았다
요즘처럼 감정을 드래내는 때가 아니라서 서로의 속앓이를 학교 앞 커피숍에서 울고 짜고 했던 그 시절이 아련해 그 추억을 서로 꺼낸다
치킨집 안으로 손님들이 가득 차 대화소리조차 안 들려 밖으로 나오니 네온사인이 켜지기 시작하고
연말모임 들로 가는 인파로 거리가 북적이고 있었다
눈 같은 비를 맞으며 서둘러 우리는 헤어졌다
차를 안 가져온걸 너무나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도로에 가득 찬 차량 행렬들을 바라보았다
버스정류장에 혼자 서 있었지만 식지 않은 맘 은 완벽히 혼자가 되지 못한 채 그 시절 나와 함께 있었다
차 안에 운전자 들도 핸들은 잡고 있지만 속도는 포기한 채 어떤 아련한 감정과 함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버스를 타지 않고 천천히 걸어본다
우산을 펴고 차가운 공기를 들이키며 맘을 식혀 본다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지금의 나는 또 한 해를 보내면서 상자에 넣어 보관하고 싶은 어떤 것이 있는가?
느릿느릿 걸으며 며칠 전 겨울농장을 생각해 본다
다시 나의 호흡을 찾으며 남은 12월 을 미소로 보내주기로 한다
알아서 가는 세월을 내가 의미를 부여해야 내 시간 들이 될 거 같아서 안녕 소리 내 인사해 준다
연말 도시는 여기저기 수다들 의 잔치지만 헤어진 후 다양한 감정들을 겪는 시기 이기도 하다
다 털어내기 위한 과정인지 더 혼란스러운 과정 인지 알 수 없는 만남들이 가득 찬 12월 에는
캘린더에 저장된 이름들로 가득 차 있다
점점 해가 짧아지는 겨울 시골 마을은 밥 짓는 연기 가 더 잘 보인다
왠지 배춧국과 쌀밥이 너무 맛있겠다는 생각으로 그 집을 바라보게 된다
지나가다 만난 이웃집 어른이 주시는
국산콩으로 만든 뜨끈한 두부를 받아오며 입꼬리가 승천한다
길에서
만나면 안부가 길어지는 시골 은 겨울이 길다
교회 앞 작고 앙증맞은 트리 장식이 유난히 따스해 보일뿐 이다
땅 은 단단해지고 나무는 쉰다
비워진 고랑에는 잘린 줄기들이 누워서 말라가고
뿌리들은 숨어서 말이 없다
초록이 없는 그 풍경을 예전에는 스산하게만 보았지만 이제는 경건 해 진다
깊은숨을 고르는 흙을 보며 나도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다
농장 앞 겨울바다는 몸 보다 맘을 적셔서일까? 떠나기 전 한 번쯤 뒤돌아 보게 만든다
차갑고 맑은 얼굴 일 뿐인데 많은 대화를 한 듯하고 가벼운 맘으로 돌아오게 한다
귀경 길 따듯한 온천을 들려서 밤늦게 도착한 도시를 보며 쉬지 않는 도시를 보았다
문득 도시는 용기 있는 자 만 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에 도착해야 하는 배송도 그렇고 24시간 교대근무로 버티는 응급실과 식당ㆍ약국들이 우리에게 귀한 시설들 이기에 도시는 잠들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느라 잠들지 못한다
특히 12월 여기저기 빌딩에 거대한 트리장식들과 아파트 입구 앞 황금빛 트리나무는 별빛이 되어 밤새 반짝인다 밤늦게 안녕하고 헤어져도 서로가 걱정되지 않는 귀갓길 인 12월
그 빛은 12월 31일까지 이어진다
산타를 기다리는 아이들, 고백을 기다리는 청춘들
넷플릭스 대신 영화관이라도 가보고 싶은 12월
도시의 12월은 분주하고 들떠 있다
그래서 소외된 사람은 더욱 외로운 12월
12월이 되면 나는 서성인다
기대하지도 못하고 포기하지도 못해서
올해 하려고 했던 계획 중 반 도 못 채운 일 들이 기대 하기에는 늦었고 포기하기 에는 아까워서
농장에 가서는 내려놓고 도시에 오면 다시 서성인다
바쁜 사람들과 멋진 사람들 이 부러워지는 도시에서 상대적 박탈감 은 곳곳이 도사리고 있다
그 긴장감이 도시 발전의 원동력 이 지만 구멍 난 꿈 들은 버릴까 말까 갈등으로 살아있다
한 살이라도 많은 지인들에게는 먼저 전화를 걸어 한해 인사를 마무리한다
고마움을 전하는 덕담 사이로 온기를 느끼며 하루하루 큰 탈없이 지인들과 함께 살아 있음도 감사해진다
혼자 도 닦는 긴 시간보다 아주 짧은 사람의 온기 가 맘을 이렇게 편하게도 해 준다는 깨달음도 생긴다
멋진 풍경의 그림에 배 한 척이 있으면 그곳은 어떤 의미가 생기듯이 혼자 와 사회 속 균형 이 필요함 을 나는 12월에 더욱 알게 된다
고독 과 따스함 사이에 그 둘 의 소중함 을 잘 다스리며 도시와 농촌을 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