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영혼에 각인된 이별의 상처는 우리에게 어떻게 각인되는지에 대해 살펴보았었다.저번 글의
1.이성에 대한 강력한 불신과 적대감, 혹은 세상에 대한 강력한 경계심과 방어막
에 이어서, 오늘은 다음에 대해서 살펴보자.
2.독립성에 대한 집착
한 몸으로 태어난 쌍둥이불꽃이나, 혹은 그와 비슷한 정도의 영혼적인 존재들이 이별을 선택할 때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기들이 때가 되면 부모의 품을 떠나듯이, 만남과 이별은 언제나 같이 창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몸처럼 아주 밀접한 관계성을 지닌 존재들에게는 '의존성'이라는 이슈가 크게 자리잡았을 수 있다. 그러니까, 상대방이 없이 혼자서도 이 우주 안에서 우뚝 서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별 이후의 많은 여정들은 독립적인 한 존재로서의 성장이 주된 방향성일 수 있다. 물론 그 안에서 크고작은 많은 사건들이 있을 것이다. 의존성이라는 것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 안에 있는 수많은 의존성이 드러나는 사건들을 겪을 것이고, 그 와중에 반복적으로 자신이 의존하던 존재와 이별을 겪을 수도 있다. 반복되는 이별이 그 영혼에게 또 상처로 남았을 수도 있지만, 자신이 가고 있는 여정에 대해 잘 이해하고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을 되찾아가면서 점차 회복되게 되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나는 의존성따위 전혀 없는데?'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 사실 의존성은 관계성 안에서 관찰하기 쉬운 것이라서, 나홀로족들에게는 자신에게 오로지 독립성만이 강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혹시나 나의 의존성이 드러나는 것이 무서워서 나홀로족을 선택한 것은 아닌지'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독립성에 대한 집착은 곧 여전히 의존성이 남아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독립적인 것'에 대한 환상
요즘은 우리 모두가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대다. 놀라우리만큼 모두들 독립적이기도 하고, 개인의 영역을 목숨처럼 지켜주고 존중하는 시대다. 나만의 시선일지도 모르겠지만, 특히 요즘에 이르러서는 '독립적인 인간'에 대해서 거의 이상향이나 추구미가 되어버린 것만 같은 느낌이다. 사실 독립적인 것은 매우 좋은 것이지만, 오직 그것만이 궁극의 목표지점이 되어버린 느낌이랄까.
물론 독립적인 인간이 되면 편하기도 하다. 독립적인 인간이라는 것은 대부분을 혼자 해낼 수 있다는 것이고, 누구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쿨함을 유지할 수가 있다. '혼자 뭐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독립적인 인간이 뭔가 전지전능한 환상의 대상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이다. '나는 쌍둥이불꽃이 없어도, 내 혈족같은 소울메이트가 없어도 잘 살수 있어. 나는 목표를 이루었어." 하는 느낌도 든다.
사실 '독립적인 존재가 되는 것' 자체는 딱히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이지만, 우리는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 가면서 사실은 타인과의 벽을 더 쌓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혹시 내 스스로 능력을 쌓으면서, 타인의 도움 없이 살 수 있는 존재가 되어가면서, 타인과의 관계를 점점 더 차단하고 있는건 아닐까?
영혼의 성장 측면에서 본 독립성과 의존성
사실 어떤 존재들은, 혼자 있기가 죽어도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남들과 경계를 풀고, 어울리는 것이 어렵지 않은 사람들이다. 사실 그런 사람들이라면 홀로 지내는 고독한 독립 생활 능력도 획득해보면 에너지의 균형과 조화 측면에서는 좋을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런 존재에게는 '내 사람은 죽어도 함께 있어야 한다'라는 강력한 생각의 틀, 생각의 경계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성장을 위해 이별을 택한 존재들이 다시 봐야 할 점은, 이제 어느정도 독립성을 획득했다면, 그마저도 깨고 나올 때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틀이 생겼다면 아마도 그 영혼이 원하는 방향성은 '다시금 함께 있음을 선택해보는 것'일 것이다. 왜냐하면, 여전히 내가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관계맺음이 무섭기 때문이다. 이별에 대한 강한 상처가 있는 존재들은 그 선택이 어려울 수도 있다. 또 이미 좀더 성장해 독립성이 확보된 존재들은 혼자 지내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관계에 대한 필요성 자체를 못 느낄 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 즐겁게 사는 삶도 충분히 좋지만, 영혼이 그 다음 자유를 원한다면 '관계성'과 관련된 삶의 계획들을 계속 시행할 것이다.
우리가 연애를 어렵게 느끼는 이유
이쯤에서 우리가 앞서 살펴본 이별의 상처에 대해서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내가 어느정도 독립적인 개체로 성장했고, 타인의 도움이 필요도 없으며, 이별에 대한, 영혼 깊은 상처가 있다. 관계에 대해 여전한 두려움이 있다고 하면 새로이 관계를 맺는 것이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영혼이 인간에게 그 상처와 충격을 다 실어서 보여주지 않아서 그렇지, 그 강력한 이별의 경험은 실제로 에너지를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인간적 감정으로는 따라서 이 세상을 하직하고 싶을 만큼의, 아니 정말로 그렇게 죽어버릴 것만 같은 감정이 든다. 그런부분에 대해서 굉장히 무덤덤한 분이라면 그 부분에 대해서 이미 극복을 해서일수도 있고, 혹은 일부러 영혼이 자아에게 그 감정을 다 보여주지 않을 수도 있다.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감정들을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가 어떤 막힘이 있는 부분은 그 뿌리가 상당히 깊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 때문에 자기자신에 대해서 더 깊고 이해하고, 인식하고, 상처를 보듬고, 또 그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굉장한 노력 자체도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어떤 강렬한 이별의 기억은 한 존재에게 다양한 현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아주 깊고 깊었던 관계의 존재와는 헤어질 때, 내가 소멸될 것 같다, 죽어버릴 것 같다는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그런 기억이 영혼에 각인되어 있다면, 그 기억의 조합으로 내게는 다양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영혼이 헤어짐을 겪으면서 [상대방(이성)에 대한 강한 불신과 적대감+ 그 존재와의 깊은 관계를 정리할때 내가 느꼈던 죽음과 공포감]이 어느 한켠에 에너지로 남아있다면, 남녀관계를 맺을 때 두 에너지가 조합된 다양한 형태의 사건이 발생한다. 문제는, 내가 특정 사건을 겪을 때 까지는 나에게 저런 에너지가 내재되어 있다고 인지하지 못하는 때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현실로 창조된 현상을 통해 나의 에너지가 비춰지는데, 본인에게 그런 에너지가 내재되어있다고는 절대 생각할 수가 없다. 왜냐면 영혼의 기억이 날 리가 만무할 뿐더러, 이번생에 살면서 나는 저런 사건들만 겪은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일상에서는 평화롭고 조화롭게 잘 지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저런 사건들이 당신에게 반복적으로 발생했다면, 당신의 영혼이 해당 부분에 대해서 올바른 인식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하고 싶은 강한 열망이 있는 것이다. 때문에 자신에게 어떤 에너지가 있는지, 금방 알아차리고 인정을 하고 해당 부분을 스스로 교정해나가는 것이 해당 이슈에서 빠르게 벗어나는 방법일 수 있다.
진정 독립성, 의존성 이슈에서 자유를 찾았다면
누군가와 새로이 관계를 맺는 것도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다.
사실 영혼이 원하는 것은 혼자 사느냐, 누군가와 함께 하느냐가 아니다. 그보다 더 큰 자유이다. 내가 혼자서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고, 누구와 관계를 맺고 그걸 지키는 데도 자신이 있는데, 내가 더 행복한 쪽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영혼이 원하는 자유이다.
내가 누군가와 관계맺는데에, 지켜내는데에 어려움을 겪거나 피하고 싶은 마음에 혼자 있음을 선택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아직은 혼자서도 충분히 충만하게 혼자서도 살 수 있는지, 혹은 여전히 나는 의존적이라 독립성을 더 획득하고 싶은 과정인지는 스스로 잘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다만 내가 독립성을 획득하고 있는데 집착이 있는 경우에는 스스로를 의존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내가 진실로 의존적인지, 독립성이 이미 충분한데도 다만 집착중인 것인지, 그것은 한걸음 떨어져서 자신에 대해서 다시 관찰해 보시기를 추천드린다.
그래도 나는 혼자가 편하다. 근데 너무 외롭다. 근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사실 나를 예로 들자면 나는 아주 오랜 생 동안 거의 혼자 굳어가는 화석처럼 철저히 고립과 혼자됨을 택했던 존재였다. 이번생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고, 대인관계에 딱히 문제가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더욱 더 철저히 혼자됨을 선택하는 나를 발견했다.
웃긴 것은, 당시에 그것이 매우 혁신적인, 용기를 낸 선택이었다고 착각했다는 것이다. 그런 혼자됨의 선택이 내 삶을 뒤바꾸어줄, 내가 해오지 않던 새로운 선택이라 생각했었고, 실제 그런 선택들을 할 때 주변의 반발도 있었기 때문에 매우 용기를 내는, 마치 혼자 세상을 등지고 열사처럼 나만의 길을 묵묵히 가는 그런 인물로 스스로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서서히 전생의 기억을 알게 되고 난 후부터, 나의 그런 결정들은 이전 생부터 계속 저질러 온 나의 오래 된 습이 이번생에 투영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삶의 방향을 전환하고자 부단히 노력을 해 왔다.
사실 자꾸만 혼자 가려던 선택들은 나 자신의 고유한 특성이자, 습성이기도, 개성이기도 했다. 그러나 '모로 가도 혼자감'을 자꾸만 선택하는 나의 습성은 아마도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에 대한 강력한 두려움으로부터 창조되었을 수 있다.
때문에 내 영혼은 오래 전부터 그 부분에 대해서 아주 강력한 깨어남을 원했고, 더 크게 함께함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로 진화하고자 했다. 영혼의 강력한 바람 때문인지, 나는 나의 '홀로 성장하려는 습성'때문에 겪을 수 있는 반동이란 반동은 모조리 내 삶에 겪으면서 스스로에 대해서 세세하게 관찰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런 강한 영혼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음 한 걸음을 내딛기가 정말 너무도 힘이 들었다. 쌍둥이불꽃과의 이별 이후로 나는 쭉 그리 살아왔다. 그리고 어떤 존재들과는 어느정도까지는 함께하는 것이 가능 했다. 내게는 좋은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내 힘으로 어떤 관계성을 만들어 나가야 할 때 나는 여러 두려움의 상황에 직면했고 불쾌한 이런저런 사건도 많이 겪어야 했다. 특히 연애문제에서도 그러했고, 일적으로도 내가 혼자 고립되는 방향으로의 선택을 했을때는 입에 풀칠조차 어려운 상황들이 반복되었다.
인간적인 시야 안에서 참으로 여러 시도들을 했던 것 같다. 연애 관련된 책도 많이 읽어 보았고, 다양한 만남을 가져보기도 했다. 직장도, 일도 마찬가지다. 여러 콘텐츠를 참고해보고 직장도 옮겨보았지만 결론은 그냥 문제는 나였다. 상대를 바꿔봐도 직장을 옮겨봐도 내 마음속 무언가가 계속 똑같은 상황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방식으로는 더이상 어떤 시도가 무의미하다 느껴질 때, 나는 나의 영혼적인 역사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사실 그때부터 의미있는 변화가 시작되었다. 어쨌거나, 혼자됨만을 선택했던 내가 함께함을 선택하기로 마음 먹은 후, 그 다음 한 걸음을 나는 어떻게 내딛었을까. 관계에 대한 회의와 불신, 세상에 대한 경계심으로 가득찬 나는 어떻게 다음 한 발을 딛었을까.
쌍둥이불꽃이 내 다음 한 발을 딛게 해 주었다. 함께 있지는 않았지만, 아주 먼 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