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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less Jul 18. 2021

와인의 향기

포트투갈의 항구도시 포르투 와인투어

포르투갈의 북서쪽, 도우루강 하구에 위치한 포르투는 글자 그대로 오래된 항구(Port)다. 포르투갈이라는 이름은 포르투에서 시작됐다.

우리에게는 비긴어게인 시즌 2를 통해 알려졌는데, 멤버들이 버스킹을 하던 부둣가의 건너편에는 세계 최고의 포트와인 와이너리가 즐비하다. 포르투에서의 첫날, 와이너리 투어에 나섰다.

첫번째 목적지는 퍼레이라, 몇년 새 포르투에서 가장 핫한 와이너리다. 테일러에 비해 조금 더 마일드하지만 젊은 감각을 더한 가벼운 맛으로 인기가 많다.


우리 돈으로 만원 쯤 되는 입장료를 내고 와인 투어에 참가했다. 투어는 약 30분간 진행되고 마지막에는 시음도 가능하다.

잘생긴 가이드를 따라 묵직한 나무향이 나는 통로를 걸었다. 사방에서 풍겨오는 오크향이 근사했다.


가이드에 따르면, 포트와인은 포르투갈이 원조다. 항구 와인에서 유래했다고도 하고, 포르투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설도 있다. 포트와인의 특징은 달콤한 맛과 높은 도수다. 17세기 프랑스와의 분쟁으로 와인 수입이 막히자, 영국인들은 새로운 와인 산지를 찾아 헤맸는데, 도우루강 상류에서 꽤 좋은 포도밭 후보지를 발견했다시행착오 끝에 질 좋은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영국까지의 운송이었다. 시간이 오래 걸리다보니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주정을 자꾸만 섞게 되었는데, 그러다보니 지금의 달고 독한 포트 와인이 되었다. 포트와인은 일반 와인보다 높은, 20도 이상의 도수를 자랑한다. 소주보다 독하다.

포트와인은 크게 빈티지와 블렌드로 구분하는데, 단일 캐스크에서 숙성된 와인을 그대로 병입한 것이 빈티지, 서로 다른 캐스크의 와인들을 섞어서 병입한 것이 블렌드다.

에티켓의 표기법도 다른데, 빈티지는 에티켓에 병입 연도를 표기하고, 블렌드는 연식을 표기한다. 만약 블렌드 에티켓에 10년이라고 써있다면, 이는 섞은 와인들의 연식을 평균 낸 것이다. 8년 숙성된 것, 12년 숙성된 것, 10년 숙성된 것을 섞어서 만들고 10년이라고 표기하는 것이다. 맛과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기법이다.

투어의 마지막 코스인 시음장에 자리 잡자, 두 종류의 와인이 나왔다.

포트와인은 브랑코, 토니, 루비로 나뉘는데, 각각 색깔도 다르고 특성도 다르다는 설명이었다. 브랑코는 흔히 우리가 아는 화이트와인과 비슷하지만, 옅은 색부터 짙은 호박색을 띄는 것까지 다양한 종류가 있다. 포트와인 답게 달고 독한데, 토닉워터와 얼음, 레몬그라스, 오렌지, 라임, 흑설탕 등을 섞어 칵테일로 만들어 먹는게 일반적이다.

토니와 루비는 겉보기에는 비슷하지만 특성은 다르다. 토니는 대형 나무 캐스크에서 3년 정도 숙성한 뒤 작은 금속 캐스크로 옮겨 7개월 이상 숙성한 것고, 루비는 대형 나무 캐스크에서만 숙성한 것이란다. 토니는 루비에 비해 옅은 붉은색이나 다홍색을 띄고, 맛은 (상대적으로) 드라이하고 니트한 편이다. 루비는 짙은 피를 연상케하는 색깔에 맛이 정렬적이고 고혹적이다. 가장 달면서 짙은 향을 내는 포트와인이다.

시음으로 나온 와인은 토니와 브랑코였다. 설명 만큼이나 매혹적인 향과 맛이어서, 좋아하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 결국 시음장과 이어진 샵에서 브랑코 한 병과 2012년 빈티지를 구입했다.

퍼레이라를 나와 빌라 노바 지 가이아 언덕을 올라 테일러에 도착했다.

1692년 설립된 테일러는 포르투에서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이자, 가장 잘 알려진 곳이다. '올해의 포트와인 상'을 수 차례 수상했고,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최상급 와인으로 인정받는다.

와인투어 프로그램은 퍼레이라와 사뭇 달랐다. 퍼레이라가 가이드를 따라 코스를 도는 식이라면, 테일러는 오디오 가이드를 빌려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형태였다. 투어 코스의 규모도 퍼레이라보다 훨씬 크고, 다양한 자료들과 설명도 풍부해서 꼼꼼히 보려면 서너시간은 걸릴 것 같았다. 와인의 향기가 물씬 나는 오크통 사이를 헤매는 경험은 똑같이 황홀했지만.


오크통으로 가득한 통로를 헤매다가 4만 리터의 와인이 들어있다는 거대한 오크통 앞에 섰다. 참, 뭐랄까 아스트랄한 기분이 들어 한참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투어를 마치고 뒷뜰로 향했다. 두 종류의 와인을 든 소믈리에가 어색한 프랑스어 억양을 섞어가며 열정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시음용으로 받은 빈티지와 칩 드라이가 꽤 맘에 들었다. 한잔을 더 청해 마시고 또 샵에 들렀다.

도우루강변으로 나오자 독특한 디자인의 배들이 눈에 띄었다. 다가가보니 과거 와이너리들이 영국으로 와인을 실어나르던 배를 재현해놓은 것들이었다. 타볼수는 없나 기웃거리다 샌드맨의 라운지로 향했다.


퍼레이라에서도, 또 테일러에서도 브랑코 칵테일을 마셔보라고 했었다. 샌드맨의 라운지에서 주문해보니, 토닉워터와 라임을 더하고 가벼운 스터로 향을 올린 칵테일은 꽤나 맛이 좋았다. 레몬그라스와 설탕을 더해 복잡하게 만들어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평화롭구나. 도우루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향긋한 칵테일 잔을 빙빙 돌렸다.

잠시 쉬다 포르투 크루즈의 와인 전시장으로 향했다.

친구가 어디선가 받아온 시음권을 내밀고 토니를 한 잔 마셨다. 다른 와이너리들이 전통과 품격을 강조한다면, 이곳은 젊고 트렌디한 분위기로 전시장을 채우고 있었다. 포트와인 역시 가볍고 드라이한 풍미가 인상적이었다. 아무래도 젊다는 것은 무겁지 않다는 뜻인가,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여섯잔 째. 상당히 마셔버렸다. 포트와인은 20도가 넘는 도수에 비해 달콤하고 목 걸림이 없다보니 상당히 위험한 술이었다. 방심하다가는 뻗어버리기 딱 좋을 것 같았다.

술도 깰 겸, 골목 사이를 걸어 천천히 언덕 위 공원으로 향했다. 이미 많이 마셨지만, 일몰을 보며 와인을 마시지 않으면 말이 안된다!

골목을 지나다 로얄 오포르투의 전시장을 발견했다. 정말 이 동네는 사방에 와이너리구나, 들를까, 생각했지만 머리를 흔들고  길을 재촉했다. 더 마셨다가는 공원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릴 것 같았다.



해질 무렵 공원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매일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면, 삶을 무척 사랑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많은 욕심을 부리며 살고 있지 않은데, 왜 이런 장면을 보는 것 조차 그렇게 힘든가, 생각에 잠겼다.

퍼레이라의 브랑코를 꺼냈다. 우리돈 칠천원, 가격이 무색할 정도로 훌륭한 와인이었다.

포르투갈에 와보면,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와인으로 얼마나 폭리를 취하는지 알게된다는 말이 납득이 갔다. 이 맛과 순간이 그리워질 것 같았다.

일몰이 시작되고 있었다. 세라 두 필라르 수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도우루강 위로 떨어지는 해가 영원한 항구를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포르투가 잠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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