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의 셋째 날, 아침 일찍 알렉산더 넵스키 묘지로 향했다. 이곳에는 차이코프스키, 루빈스타인, 무소르그스키, 림스키 코르사코프, 글린카,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의 묘가 있다. 아무리 클래식에 문외한이라지만 꼭 가야할 것 같았다.
러시아의 묘지는 찬연한 슬픔을 닮았다. 깊은 침묵이 짙에 드리위있었다.
차이코프스키의 묘를 피처럼 붉은꽃과 악보를 든 천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묘에서는 흉상의 입술을 한참 들여다봤다. 죽음의 순간, 그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문득 비통함에 휩싸여 서민들의 묘가 모여있는 라자루스의 묘지로 향했다.
훨씬 소박한 묘들이 죽음을 기억하라, 말하고 있었다. 편안히 잠들기를.
묘지를 벗어나 알렉산더 넵스키 성당을 잠시 바라보다, 바실섬으로 향했다.
해안도로를 걷다보니 배 한척이 보였다. 뭘까, 가까이 가보니 함선을 개조한 카페였다. 그것참. 순양함 오로라호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1897년 제정러시아 시대에 건조된 후 러일전쟁과 러시아혁명, 제2차 세계대전을 겪었다. 배의 시계는 러시아혁명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던 1917년 10월 25일 오후 9시 45분에 영원히 멈춰있다.
오늘날의 오로라호는 관광지로 전락했다. 함선 내부는 조악한 전시관이 되었고, 정박한 부두는 싸구려 기념품을 파는 노점삼으로 바글거렸다. 대기업 간판들이 자본주의의 승리를 증명하듯 배의 풍경을 둘러싸고 있다.
이런 장면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는데. 흐려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다 자야치섬으로 향했다.
자야치섬은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발원지다. 처음 이곳에 요새가 세워졌고, 그 후 현재의 도시로 발전했다. 여기저기 토끼상이 많은데, 별명이 토끼섬이다. 사진은 대홍수 때를 묘사한 장면이다.
요새의 지붕을 따라 설치된 데크를 걷다보니, 멀리 성 페테르와 바울 성당이 보였다. 1733년 설립된 거대한 첨탑은 123m 높이인데, 스탈린은 꼭대기의 심자가 대신 자신의 흉상을 올리려고 했단다. 당시 수도원장의 재치로 계획은 취소됐다. ("스탈린 동무의 그림자를 네바강에 거꾸로 쳐박겠다는 얘긴가요?")
'위대한' 네바강을 보며 성당으로 향했다.
성당은 멀리서 볼 때보다 훨씬 높았다. 입을 헤에 벌리고 쳐다보다 돌아보니, 주변 사람들도 모두 헤에 벌리고 자꾸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원조 대륙은 러시아라더니, 참 무지막지한 것을 만들어놨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시조, 표트르대제의 조각상을 보러갔다.
러시아는 몇백년간 변방 약소국이자 몽골의 식민지였다. 표트르대제에 이르러서야 유럽 열갈들과 경쟁하고 바이킹을 물리쳤다. 상트 페테르부르크가 '성스러운 표트프의 도시'라는 뜻이다. 그 눈부신 업적에 비해 조각상은 무척 소박한데, 사람들이 자꾸 무릎에 앉아 반질반질해졌단다. 현재는 접근을 막아놔서 올라가 볼 수 없었다. 다시 바실섬으로 향했다.
멀리 성 이사악 성당을 보며 강변을 걷다가, 스핑크스를 발견했다. 설마? 하고 찾아보니, 이집트에서 가져온 진짜 스핑크스 맞단다. 허허. 굉장한 짓을 해놨군.
성 이사악 성당은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크고, 세계적으로는 세번째로 큰 성당이다. 완공은 1858년, 연인원 40만 명이 40년 간 지었다. 황금돔을 만드는데 순금 100kg을 사용했고, 170점의 모자이크와 프레스코벽화로 성당을 장식했다. 성당 앞에서 또 입을 헤 벌리고 올려다봤다.
거대한 외형도 놀라웠지만, 내부는 할말을 잃게 만들었다. 이렇게까지 화려할 수 있는 걸까. 멍하니 쳐다보다 전망대로 향했다.
어스름 사이로 성스러운 표트르의 도시가 잠들어가고 있었다.